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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불청객 감기

그 때 그 때 다른 맞춤형 한방치료

누구든지 감기에 걸리지 않고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성인은 평균 일년에 2~4회, 소아는 6~8회 정도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정상적인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기에 걸린 뒤 열이 나고, 콧물, 재채기, 인후통, 기침으로 며칠 고생하다 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나 노인은 크게 고생할 수 있으며, 평소 건강한 사람에게도 감기는 한동안 신체의 쾌적함을 해치는 겨울철과 환절기의 불청객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국에서 판매하는 드링크제로 된 감기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에 딸린 설명문을 보면, 대략 10개 안팎의 한약재로 구성돼 있다. 쓴맛이 나는 흑갈색 탕약은 어떤 원리로 우리 몸에서 감기를 쫓아내는 것일까?

몸이 허하면 감기약이 독

한의학에서는 증상의 변화와 체질에 따라 치료방법이 달라진다. 감기도 시간이 지난 정도나 사람에 따라 증상이 약간씩 다르기 마련이므로 치료약도 매번 다르다.

일반적으로 감기는 바람이나 추위에 의한 나쁜 기운, 즉 ‘사기’(邪氣)가 환자 피부의 방어기능이 약한 틈을 타서 몸에 침입해 생긴다고 본다.

감기를 일으키는 사기는 피부 표면에서 신체 내부로 들어가는 변화과정을 겪으면서 감기의 여러 증상을 나타낸다. 감기 초기에 사기가 피부 표면에 머물 때는 발열, 두통과 함께 손목의 맥을 짚을 때 맥박이 빨라지고 표면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기가 점차 신체 내부로 들어가면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며 가슴이 답답하고 식욕부진과 변비 같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에 대한 대표적인 한의학 이론은 3세기 전후 중국 후한시대 장중경(張仲景)이 지은 의학서적 ‘상한론’(傷寒論)에 들어있다. 장중경은 사기가 신체 표면에서 내부로 들어갈 때 태양병, 양명병, 소양병, 태음병, 소음병, 궐음병의 여섯 단계를 거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체를 표(表)와 리(裏), 그리고 그 중간부위인 반표반리(半表半裏)로 나눌 때 태양병은 표에 속하고 소양병은 반표반리, 그리고 나머지는 리에 속한다고 설명하면서 그에 따른 증상과 치료법을 상세히 밝혔다.

한방 감기 치료의 원칙적인 개념은 외부에서 침입한 사기가 존재하는 부위에 따라 사기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감기 초기에 사기가 인체의 표면에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땀을 내는 한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쓴다. 한약재로는 마황과 계지가 대표적이다.

마황은 환자가 땀을 흘리지 않을 때 쓰고, 계지는 땀이 나고 있을 때 사용한다. 감기에 들었을 때 매운 것을 먹거나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내면 감기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의학에서 보는 감기 치료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외부에서 온 사기를 제거하기보다는 우리 몸의 병에 대한 저항력을 증강시켜서 저절로 사기가 물러가도록 하는 치료법도 있다.

신체가 원래 허약하거나 감기를 오래 앓아서 몸이 약해졌을 때는 체력을 북돋는 보약을 감기 치료에 사용한다. 조선시대 선조가 50세 때 오랜 감기로 내의원이 처방한 감기약을 계속 복용하다가 원기가 부족해져서 감기약을 중단하고 보약을 복용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감기 증상이 대체로 없어졌지만 계속 기운이 없고 소화가 안 될 때도 보약제를 복용해 허약해진 몸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을 쓴다.
 

콜록 콜록. 한의학에서는 감기에 걸려 기침이 나면 사기(邪氣)가 신체 내부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쌍화탕은 효과가 없다?

일반적으로 한약재를 이용한 치료는 효과가 늦게 나타나며 급성 질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감기 치료의 경우 세균 감염의 가능성과 발열이 심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약은 충분히 빠른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한약을 처방할 때는 한의학 고유의 진찰 방법에 따라 적합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감기에 걸린 뒤 시간에 따른 환자의 증상 변화와 개인의 체질을 고려해 각기 다른 처방을 내린다.

몸살로 머리와 온몸이 아프고 열과 오한이 난다면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을, 비슷한 몸살이라도 평소 위장이 약하거나 설사를 하는 경우에는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사용한다. 개인마다 다른 증상을 참고해 몇 가지 한약재를 더하거나 빼기 때문에 한방 감기 치료는 매우 가변적이다. 따라서 ‘일반 종합감기약’이라고 정해진 한약 처방은 원칙적으로 없다.

그런데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서 흔히 ‘쌍화탕’으로 불리는 드링크제 한방 감기약을 마신다. 원래 쌍화탕은 감기약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쌍화탕은 ‘음과 양을 조화한다’는 처방으로 오히려 감기를 예방하거나 오래 앓은 뒤 체력이 약해진 데 도움이 된다. 약국에서 파는 한방 감기약의 성분도 본래 쌍화탕의 약재 구성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환자를 개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일반 한방 감기약은 효과가 없는 것일까? 실제로는 효과가 있는 한방 처방들이 있다. 1996년 일본에서 감기 환자 171명을 대상으로 마황부자세신탕(麻黃附子細辛湯)과 일반 종합감기약의 효과를 비교 실험했다. 그 결과 마황부자세신탕이 증상을 호전시키는 속도가 더 빨랐다고 한다.

마황부자세신탕은 발한, 항알레르기 작용을 하는 마황과 순환 촉진, 대사 항진, 진통 작용을 하는 부자, 진통 작용을 하는 세신의 3가지 약재로 이뤄진 처방이다.

원래 장중경의 ‘상한론’에 수록된 마황부자세신탕은 체력이 약하고 오한을 느끼는 소음병에 사용되는 처방이지만, 이 실험은 마황부자세신탕이 일반 감기 치료에도 폭넓게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열은 열로 다스려보자. 열이 38.5℃를 넘지 않느다면 은근히 땀을 내는 것이 감기 치료에 좋다.


사우나 땀 빼기는 소용없어

한의학에서는 감기를 치료할 때 땀을 내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땀은 은근히 나오게 하라는 것이지 사우나에 있을 때처럼 땀을 비 오듯이 내라는 말은 아니다. 아직 그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임상에서는 열이 있을 때 땀이 촉촉히 나면서 열이 내리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오히려 고열이 날 때는 피부가 바싹 메말라 있다.

그런데 한약재 중 강력한 해열 효과를 가진 성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 서서히 땀을 내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열을 내린다.

현대의학에서는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복용하거나 몸을 일부러 차게 하는 강제적인 해열 방법을 사용한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오히려 몸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땀이 나게 만들어 자연스런 해열 효과를 얻는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은 이유 있는 생체 반응의 하나다. 무분별하게 해열제를 복용하면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내 발열 시간이 길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38.5℃ 이상을 넘지 않는다면 인위적인 대증 요법을 써서 열을 내리는 것은 치료에 좋지 못하다고 본다.

따라서 감기를 치료할 때 약해진 체력을 보약제로 회복하는 방법 외에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는 몸을 오래 동안 차갑게 한다든지 찬 음식을 자주 먹으면 폐가 상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따뜻한 탕약으로 만든 감기약을 먹은 뒤 다시 따뜻한 죽을 먹고 땀을 약간씩 내면서 몸을 춥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한방 감기 치료법이다.

생활약탕기

감기를 앓으면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차가운 물을 마시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도록 한다.

몸살 기운이 드는 감기 초기에는 파가 좋다. 특히 파의 밑동 부분은 ‘총백’(蔥白)이라고 해서 오싹오싹한 감기 초기에 땀을 내 치료하는 한약재로 이용돼 왔다. 파에 들어있는 휘발성 성분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땀을 내 열을 내리며, 위를 튼튼하게 만들면서 가래를 없앤다고 한다.

찌개나 국에는 파가 들어가기 마련이므로 이런 음식을 먹을 때 파의 흰 뿌리부분을 많이 섭취하면 좋다.

기침과 가래가 심하다면 도라지를 먹어 보자. 도라지의 한약명은 길경(桔梗)으로 예전부터 감기 치료에 자주 이용됐다. 도라지는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없애며 항염증, 진정, 진통, 해열, 면역 기능 항진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감기가 오래가 목이 계속 불편하다면 도라지를 썰어서 꿀에 재어 먹거나 도라지 나물을 식탁에 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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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선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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