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성취시킨 첫 결과물이다. 얼핏 단순하게만 보이는 이 '장난감'을 자세히 살펴보면….
겨울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연 날리기를 즐겼다. 연 날리기는 날리는 이나 보는 이 모두를 무아지경에 몰아 넣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연은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 구름 위로 날기도 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다 갑자기 곤두박질치며 내리박히다 다시 떠오른다. 연 실이 끊어진 듯 너풀너풀 춤추다 다시 전후좌우로 하늘을 누비며 재주를 부린다. 새 나비 짐승 등 동물 모양이나 갖가지 그림과 형태를 가진 연은 하늘에 올라 날리는 이의 솜씨를 겨루기도 한다. 연 날리기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준다. 또 어른들에게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멋을 느끼게 해 최근에는 레포츠의 한 분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기능과 형태를 중심으로 세계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분류법에 따르면 보통 평면연, 곱사연, 입체연, 바람주머니연, 삼격연, 복합연 등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여러 개의 연을 연결한 줄연이 있고, 줄을 두 줄 이상 매어 조종할 수 있도록 고안된 스턴트연이 레저의 하나로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연 애호가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는 국제대회에서는 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미연 겨루기, 연싸움, 높이 날리기, 연조종기술 겨루기, 연크기 겨루기, 줄연 많이 겨루기, 연꼬리 길이 겨루기, 무거운 물체 달아 올리기, 지면에 낮게 멀리 보내기 등의 경연을 벌인다.
2천년 전 하늘을 난 사람
사람들은 언제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했을까. 인류의 지혜가 발전하면서 창공을 날기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연을 만들었다. 연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비행물체다. 즉 연은 발마에 과학적인 원리를 적용해 고안해낸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한(漢)나라 장군인 한신은 초(楚)나라와 싸울 때 큰 연에 사람을 태워 적의 상공에서 피리를 불게 해 초나라 군사들의 향수(鄕愁)를 자극해 전의를 잃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기원전 2백여년 전이었으니 약 2천2백년 전 인간이 연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기록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고려 말기 최영 장군이 탐라도(지금의 제주도)에서 목호의 반란을 평정할 때 연에 사람을 태워 상륙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약 6백년 전).
그러나 연이 처음 출현한 것은 이보다 앞서서였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4백년 경 그리스의 아키타스(Archytas)가 새연(鳥鳶)을 만들어 띄웠다는 기록이 있고 동양에서도 묵자가 나무로 새연을 만들었다고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기의 연은 새연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연을 만들어 이를 다방면에 이용한 기록이 많다. 거리를 측정하는 데도 이용했고 군사적으로도 이용했으며 통신용으로도 썼다. 당(唐)대에는 민간에서도 연날리기가 널리 성행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중국 연의 형태로는 용연 새연 나비연 등 동물연이 꼽힌다. 동남아 각국에서도 연 날리기가 성행하고 있어, 태국의 코브라연 말레이시아의 가오리연 인도네시아의 달연 파키스탄과 인도의 쌍무연 등이 있다. 서양의 대표적 연으로는 그리스연(육각연)과 로마의 바람주머니연이 꼽히고 있는데, 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연을 적극 이용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는 듯 싶다.
15세기 동양과의 새로운 해상 수송로가 개척되면서 동양의 연이 소개됐고, 연으로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관심이 높아지게 됐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연을 이용해 천둥 번개가 전기현상임을 실험해 피뢰침을 발명했고 윌리엄 에디는 1890년에 연을 기상 관측용으로 썼다. 연은 다시 글라이더로 발전하는가 하면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연과 글라이더를 바탕으로 비행기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연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됐으며 요즘도 새로운 연들이 계속 고안되고 있다.
겨울철이 되면 연 날리기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찬 바람 속에서도 추위를 잊게 했다. 정초에는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쓴 후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서 높이 날린 후 소원을 함께 빌며 실을 끊어 날려보냈다. 이를 '연을 시집보낸다'고 하며 멀리 날아갈수록 액운이 없어지고 복을 받는다고 여겼다. 액막이 연을 날려보내면 한 해 연날리기를 끝내고 연 놀이를 하지 않았다 .이는 농경사회 내에서 연으로 인해 농사 일에 소홀하게 됨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연을 날렸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의 연 이야기가 실린 것으로 보아 그 이전으로 짐작된다. 신라 진덕여왕 즉위년(647년) 반란이 일어나자 김유신 장군은 연에 횃불을 매달아 띄워올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 민심을 수습하고 반란을 평정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지만 어떤 형태의 연을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여러 형태의 연중 가장 대표적인 연은 방패연이다. 방패연은 장방형의 모양으로 방패를 닮았다고 해서 이같이 이름이 붙여졌는데, 일명 꼭지연 또는 방구연이라고도 한다. 몽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도 사각 형태의 방패연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방패연은 가운데 방구멍이 뚷린 것으로 다른 나라의 연과 구별된다. 방패연은 날리는 사람의 기술에 따라 상하 좌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연싸운(연실 끊기)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바람의 변화에 잘 적응해 높이 올리기에도 유리하고 기동성이 뛰어나다. 방패연의 가로와 세로 비는 2:3으로, 구조적 안정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고 있다. 방패연은 연살을 휘어 붙임으로 가운데가 부르도록 고안됐다. 또 머릿살도 휘어주는데, 이는 연의 안정성을 높여 꼬리 없이도 자유자재로 날 수 있게 한다. 특히 가운데에 난 방구멍은 연이 풍압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렇듯 풍속의 적응 범위가 넓고 동시에 기동성을 크게 향상시킨 방패연에는 우리 조상들의 독창력과 과학적 슬기가 숨어 있다.
연은 바람을 이용해 띄우는 기구다. 연을 날릴 때는 기류의 흐름, 바람과 강약과 방향을 알아야 한다. 특히 바람의 강약, 즉 풍속은 연을 날리는데 절대적인 조건이다. 바람이 약하면 상대적으로 연체의 무게가 무거우므로 날기 어렵고 또 바람이 너무 강하면 연이 망가지거나 실이 끊어지기 쉽다. 연의 종류와 재질에 따라 연을 날릴 수 있는 풍력의 범위가 있다. 일반적으로 종이연의 경우 초속 2-6m의 풍속이 적당하며 천과 플라스틱에 합성수지의 대를 사용하더라도 천둥 치는 장마철이나 초속 14m 이상의 강풍에서는 날리면 안된다. 연을 날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늘에 새가 날지 않으면 연을 날리지 말라 는 격언이 안전 수칙처럼 지켜지고 있다.
새가 없으면 날리지 말라
연을 날릴 때는 바람을 등지고 올려야 띄워야 하는데, 깃발이 날리는 방향이나 애드벌룬이 떠 있는 상태를 보면 풍향을 알 수 있다. 바람은 지역에 따라 변화가 무쌍할 뿐만 아니라 지형에 따라 풍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산세가 복잡하거나 나무가 많은 곳에서 연을 날리면 실패 하기 십상이다. 연 날리기에 좋은 장소는 공기의 흐름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넓은 들판, 낮은 언덕, 강가 또는 바닷가 등이다. 그렇다면 바람에 의해 연이 뜨는 원리는 무엇일까. 연은 바람을 받아 비스듬히 올라간다. 이것은 바람을 받아 연을 미는 힘(D)과 연체의 중력(G), 그리고 연줄을 당기는 힘(T)이 합해져 양력(L)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양력보다 중력이 크면 연은 날 수 없다. 또 연체가 누워 있으면 양력이 작용하지 못하므로 연은 떨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연체와 발마의 각도를 생각해 목줄을 조절한다. 대체로 발마이 강하면 중심을 윗쪽으로, 약하면 그보다 아래로 중심을 이동해준다.
연 재료와 도구 날로 첨단화
연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로 나누어 연의 재료와 도구를 살펴보자. 첫째 연감. 우리나라의 전통연인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은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로 된 종이연이 대부분이다. 엣날에는 나무나 가죽 천으로 연을 만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비단을 연감으로 많이 사용하며 남태평양 사모아섬에서는 나뭇잎을 이용해 연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연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질기고 가벼우며 늘어나지 않고 내수성이 강해야 한다. 약한 바람에도 날 수 있으려면 당연히 가벼울수록 좋다. 오늘날에는 포장용 비닐같은 특수 합성지와 코팅처리된 나일론 섬유 등이 많이 이용된다.
둘째 연살(대살). 연에 따라서는 연살이 없어도 바람주머니를 만들어 띄울 수 있는 연도 있지만 대부분 연들은 연살이 있어야 한다. 연살은 연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알맞은 굵기와 무게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는 대나무를 깎아서 연살을 썼고, 연이 크면 통대를 엮어서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가 보강된 합성수지 제품(그라파이트, 유리섬유 등)가 같은 첨단 소재가 쓰이고 있다.
셋째 연실의 굵기와 무게도 연을 날리는데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다 .가볍고 질긴 것이 최적. 물론 연의 크기와 풍속(연에 받는 바람의 압력)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코팅처리를 한 실이 연실의 꼬임을 방지할 수 있어 좋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연실로 상백사나 당백사와 같은 명주실을 많이 썼다. 연싸움을 주로 하는 방패연 실에는 유리가루나 사기가루를 부레 풀로 먹여 사용했다. 참고로 연의 면적에 따라 풍압을 견딜 수 있는 연실의 인장 강도는 1㎡당 20.83kg이다.
넷째는 연실을 감는 실패인 얼레다. 얼레는 풍압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하며 실이 엉키지 않고 감거나 풀기에 편해야 한다. 방패연에는 나무로 만든 4모 6모 8모 얼레 등을 쓰고 일반연에는 납작 얼레도 사용한다. 밧줄을 연실로 사용하는 초대형 연에는 크레인을 쓰기도 한다.
연은 이제 전 세계인이 즐기는 레포츠로 정착하게 됐다. 게다가 연의 쓰임도 놀이뿐만 아니라 산업적 활용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예로 우주선을 회수한다든지 조난구조용으로, 또 광고나 행사 홍보용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카메라를 부착해 공중촬영에도 쓴다. 연을 이용한 공중촬영은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화산활동, 생태계 조사, 조감도를 위한 사진 등을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연은 항공 과학의 기초분야다. 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을 알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의 미래는 창공을 누비는 연처럼 희망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