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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풍기는 자동차 감성공학

미래는 속도가 아니라 느낌이다.

올해는 현대식 자동차 경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그랑프리(Grand Prix)대회가 열린지 꼭 100년 되는 해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포뮬러원 자동차가 직선과 곡선 구간을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모습은 박진감을 넘어 아찔하기까지 하다. 사람 허리보다 낮고 1t이 채 안되는 작은 차체에서 폭발해 나오는 엄청난 스피드와 굉음에 누구나 할 말을 잃게 마련이지만 극한으로 치닫는 승부 속에서 과학기술의 진보를 체감한다.

첫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 프랑스의 르노는 그 뒤 자동차 명가의 지위를 누렸고 푸조, 부가티, 독일의 메르세데스, 이탈리아의 피아트 역시 명성을 쌓게 됐다. 속도감은 차량의 성능은 물론 품격을 가늠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엔진의 기계적인 성능 대신 인체공학적인 자동차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벤츠나 혼다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인간공학’ ‘감성공학’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얼마전 열린 대한인간공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도 바로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졌다.
 

'달리는 휴식공간.' 현대인들이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인간중심'의 설계를 강조한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얻고 있다. 첨단스런 외관 만큼이나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일본 스즈키 자동차의 4륜구동 컨셉트카.


운전하면 피로한 이유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건수는 모두 22만755건으로 35만명 이상이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사고는 대부분 운전 미숙과 실수 때문에 발생하고 있지만 차량 자체의 인체공학적 측면을 고려하면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고려대 공동연구팀은 운전자 수가 가장 많은 30대 남성 운전자의 실제 체형과 수출과 내수용 일반 자동차 설계에 적용하는 표준 체형의 앉는 위치를 비교했다. 여기엔 한국인 표준체형을 수립하기 위해 2002년 시작된 사이즈코리아(Size Korea) 연구 결과를 사용했다.

실험 결과 한국인은 비교적 앞으로 당겨 앉으며 운전자 눈 위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키가 같더라도 상대적으로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한국인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다. 30대 한국 남성의 표준 허리둘레는 1030mm로 종전 916mm보다 굵고 앉은키도 981mm로 929mm에 비해 크다. 이 정도 차이가 뭐 큰 문제가 있겠냐 싶지만 좁은 차안에서는 인지능력에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초래한다.

문제는 현재 운전좌석이 운전자의 실제 운전 자세와 맞지 않다는데 있다. 고려대 연구팀이 최근 운전자 126명을 대상으로 운전 자세를 측정한 결과 모두 72가지 운전자세가 나왔다. 특히 이 가운데 같은 운전 자세를 취하는 운전자가 가장 많은 경우도 불과 4명에 불과해 대다수 운전자들은 불편한 자세로 운전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운전 자세를 고려하지 않는 차는 운전자에게 큰 피로감을 준다. 자동차 페달을 밟는 동안 앞정강근과 장딴지, 무릎과 엉덩이를 굽히거나 펼 때 작용하는 넙다리곧은근에는 피로가 누적된다. 특히 자세가 좋지 않을 경우 그 정도는 더 커진다. 오랫동안 차량운전을 하는 기사들이 무릎관절과 발목 통증을 호소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최근 다리 근육의 피로감을 줄이는 한 방안으로 페달 아래 보조페달을 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보조페달을 사용할 경우 넙다리곧은근과 술굴곡근 등 활동하는 근육이 줄면서 피로감도 30%가량 내려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보조페달이 제동시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한편 신체 여러 부분을 사용하는 기계적인 운전방식 대신 전기신호로 자동차를 조종하는 ‘와이어드 드라이빙’ 방식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을 하듯 스틱을 손으로 쥐거나 운전대에 팔을 걸쳐 운전하는 이 방식은 차세대 차량에 적용될 예정이다.
손목이나 팔만 움직여 속도를 내거나 멈추고, 방향을 틀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차를 몰 수 있다.
 

인간공학형 운전석^여러 연구 결과 운전대, 페달, 텔레매틱스 장치의 형태의 기능뿐 아ㅣㄴ라 차안 인테리어의 재질도 운전자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독증을 해결하라


‘1가구 1차’시대를 넘어 ‘1인 1차’시대로 넘어 가면서 현대인의 운전시간도 대폭 늘어났다. 특히 첨단 정보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자동차는 교통수단을 넘어 정보검색과 업무처리,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다수 운전자에게 정보검색이란 먼 나라 얘기. 느린 통신 속도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다. 최근 아주대 산업공학과 연구팀 조사결과 우리나라 무선인터넷 사용자의 46% 이상은 수신한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면과 글자 크기가 작고 색상도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단말기 디자인 때문.

현대모비스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글자크기가 정보를 파악하는 시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연구팀은 5가지 텔레매틱스 단말기에 사용하는 글씨체를 16~24포인트로 점차 크기를 늘리면서 피실험자의 인지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글씨체는 인지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은 반면 크기가 20포인트(5.95mm) 이상 커져야 인지시간이 가장 적게 걸리는 것으로 측정됐다. 멀티미디어 단말기 글씨 크기도 눈에 띄기 쉽게 조정돼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이는 안전문제와 직결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운전 중 TV시청은 휴대전화 통화나 흡연보다 사고 발생율이 더 높다.

차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e메일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입력방식의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객체기술정보사와 아주대 공동연구팀이 휴대전화와 차량오디오와 통합한 두 종류의 단말기 사용자의 행동을 비교 분석한 결과는 이를 잘 설명한다.

통합단말기를 사용한 실험자들은 대부분 버튼이 작거나 조작방법이 복잡해 사용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의 경우 화면이 작아 전달하는 정보량이 적어 사용자에게 불안감을 줬다. 연구팀은 또 운전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α파와 β파, θ파를 측정한 결과 손으로 입력하는 방식과 음성조작 방식이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때문에 최근 차 안에서 빠르게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복잡한 한글을 입력하기 위해서 두 손으로 타자를 쳐야 하는 기존 키보드는 운전 중 상황에 적합하지 않고 크기도 커서 차 안에 설치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SK텔레콤, 포항공대 연구팀은 자음과 모음의 사용 빈도와 상호관계, 조어법 등을 고려한 한글 문자 입력방식을 새로 개발했다. 조이스틱을 이용해 글자를 입력하는 이 방식은 향후 휴대전화나 PDA 등 문자를 입력하기 힘든 휴대형단말기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MW와 아우디,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도 차량에 독자적인 문자입력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2003년 대한인간공학회 주최 인간공학 전시회에서 국민대 차량제어 실험실이 제작한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운전자의 운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감성 넘치는 ‘U 카’로

자동차에서 고속 무선인터넷이 가능해지면서 운전자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의 필요성도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아주대 산업공학과 연구팀이 지난 2004년 무선인터넷 사용 경험이 있는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차량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조사한 결과 64.7%가 지리와 교통정보를, 다음으로 14.7%가 e메일 확인을 꼽았다. 날씨정보, 뉴스와 정보검색, 여행정보 제공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개인정보와 스케줄 관리기능, 무선팩스, 문서편집 업무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답변도 나왔다.

한편 운전자가 직접 조작하지 않고도 자동차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정보를 수신하는 유비쿼터스 차도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에서 첫 글자를 따온 ‘U카’는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달리는 사무실 ‘E카’ 개념에서 한 발짝 더 나간다. U카란 차 안에서도 무선 통신을 이용해 집안 관리나 건강 관리, 오락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스스로 자기 관리까지 하는 ‘똑똑한’ 차량을 뜻한다. 이들 차량의 몸에는 타이어 온도와 압력을 확인해 위험을 알려주거나 결제기능이 들어있는 무선태그가 달려있다. 미국 온스타와 유럽 티트래픽, 일본 지북 등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텔레매틱스 서비스들도 변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자동차의 미래는 속도가 아니라 '어라만 편리한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일본 아이치에서 열린 엑스포에서 도요토가 선보인 미래형 1인승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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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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