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나선이 지그재그를 만날 때

26년 만에 밝혀진 DNA의 비밀

깊은 밤 깊은 곳에서 DNA 분자들이 회의를 열었다. 안건은 ‘변신’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뭘로 변신해야 한다는 거야?”
“섹시녀를 근육남으로 바꾸래.”
“성전환 수술이라도 하라는 거야?” “글쎄.”

의장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원래 DNA는 두 가닥이 오른쪽 손가락을 감았을 때 돌아가는 방향으로 매끄럽게 나선을 그리며 맞물려 있는 모습(B-DNA)이었다. 매년 가장 아름답게 나선을 그린 DNA를 뽑는 대회까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가닥이 왼쪽 방향으로 지그재그를 걷듯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야 된다는 거였다(Z-DNA).

“갑자기 왜?”
“단백질 만드는데 필요하대.”

밤새 DNA들이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방법이 없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던 놈들을 갑자기 왼쪽으로 돌리라니, 그것도 곡선에서 직선으로. 두 가닥을 안에서 붙들고 있는 수많은 팔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밤샘 회의에 지친 DNA들은 모두 자신의 세포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루가 한 달이 됐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모두 죽을 판이었다. 생명의 종말 소리가 초침이 울리듯 커져만 갔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가 멋진 아이디어를 갖고 나왔다.

“팔을 밖으로 뻗으면 돼.”
“어떻게?”

“DNA 두 가닥을 붙들고 있는 팔 중에 하나를 풀고 서로 몸통 바깥으로 뻗어.”
“그러면?”

“바깥에서 팔을 뒤집어서 다시 안으로 넣어 잡으면 아래부터 자동으로 유선형 몸통이 지그재그가 돼.”
“정말?”

“다시 유선형 몸통이 되려면 다시 팔을 풀고 바깥으로 내놓으면 돼.”
“신기하다.”

그렇게 DNA의 위기는 지나갔다. ‘동화처럼’ DNA들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유선형인 B-DNA와 지그재그형 Z-DNA가 붙어 있는 모습. DNA는 평소에는 주로 B형이지만 특정 부위에서 단백질을 만들 때 Z형으로 변하곤 한다. 이중나선을 붙들고 있는 팔(염기)이 하나 풀어지면서 밖으로 돌출하면 B형이 Z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생체 안에서 보통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다. 나선의 등뼈는 인산과 당이고, 나선 안쪽으로 4가지 염기(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가 달려 있다. 염기의 순서가 바로 생명체의 유전 정보다. 한쪽 가닥에 달린 염기가 다른 쪽 가닥에서 나온 염기와 수소결합을 통해 손을 잡듯 결합한다. 이것을 염기쌍이라고 한다.
 

김양균, 김명규 교수의 연구가 표지로 실린 '네이처'지.


26년 동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왓슨과 크릭이 1953년 발견한 DNA는 오른쪽으로 꼬여 있는 이중나선이다. 이것을 B-DNA라고 한다. 이 발견은 분자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또 DNA가 어떻게 형태를 유지하고 다른 생명반응에 참여하는지 이해하는 바탕이 됐다. 이 구조가 너무나 유명해 사람들은 DNA 하면 이중나선을 떠올린다. 실제로 DNA는 대부분 이중나선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다른 형태도 있다. 예를 들어 삼중나선(triplex), 사중나선(quadruplex), 십자형(cruciform) DNA 등이다.

그러나 DNA의 가장 놀라운 변신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알렉산더 리치 교수가 1979년 처음 발견한 왼쪽 나선의 Z-DNA 구조라고 할 수 있다. Z-DNA란 이름은 DNA 이중나선이 지그재그(zigzag)로 이어진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Z-DNA는 B형과 이중나선이 서로 꼬이는 방향이 정반대이다. 그렇지만 거울에 비치는 대칭 이미지는 아니고 구조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나선을 이루는 당이나 염기의 방향도 다르다. 또 Z형은 B형보다 열역학적으로 에너지가 높아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사람의 염색체에 들어있는 B-DNA는 상황에 따라 일부가 불안정한 Z형을 이룬다. 모두 Z형을 만들 수는 없고 특정 염기서열에서만 나타난다. DNA가 변신할 때 분자 수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리고 어떻게 꼬이는 방향이 반대인 두 DNA가 서로 만나는지는 Z-DNA가 밝혀진지 26년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최근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발표한 연구가 바로 B형과 Z형 DNA가 만나는 접합구조를 밝혀낸 것이다.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린시스 크릭 박사.


단백질과 DNA의 진한 포옹

B-DNA 일부가 Z형으로 바뀌면 전체 DNA에는 두 가지 다른 구조가 만나는 곳, 즉 B-Z 결합부위(B-Z junction)가 나타난다. DNA의 구조를 알려면 결정으로 만들어 X선으로 사진(회절무늬)을 찍어야 한다. 그러나 생성 조건이 다른 B와 Z형을 한 DNA 분자에서 동시에 존재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특히 불안정한 Z형이 문제였다. 홀리데이 결합부위(holiday junction)나 네가닥 DNA, 나선이 풀린 DNA 등 다른 DNA의 3차원 구조가 이미 밝혀진 데 비해 B-Z 결합부위가 이제서야 밝혀진 것은 그런 어려움 때문이었다.

우리 팀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바로 Z형을 붙들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단백질을 이용했다. 이 단백질의 이름은 ‘지알파’(Zα)이다. 우리 팀은 DNA의 한 쪽 부분에 단백질을 가득 붙여 Z형을 만들었다. 불안정해 금방 변하기 쉬운 Z형을 ‘단백질 본드’로 고정시킨 셈이다. 다른 쪽 DNA는 Z형을 만들지 못하는 염기서열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B형이 되게 했다. 즉 자연스럽게 B-Z 결합부위가 생기도록 DNA를 디자인한 것이다. 포항 방사광가속기와 일본 스프링8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이 결정을 찍어 결합부위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알 수 있었다.

자연은 B-DNA를 Z형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는데 꽤 고생했을 것이다. 앞서 들었던 가상의 이야기는 그런 고민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밝혀낸 구조를 보면 자연은 반대 방향으로 꼬인 B와 Z형을 서로 연결하는데 아주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가장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말처럼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지금까지 결합 부위는 일부 염기결합이 깨지면서 긴 고리(루프)와 같은 구조를 이뤘거나 느슨한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으리라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촘촘한 구조였다. 염기결합도 거의 깨지지 않았다. 오직 하나의 염기쌍만 풀어지고 염기가 이중나선 밖으로 돌출되면서 오른쪽으로 돌던 나선형 DNA가 왼쪽으로 도는 지그재그 DNA가 된다.

우리의 예측은 이렇다. DNA 이중나선 안의 염기쌍이 풀어지면서 염기들이 밖으로 돌출하고, 거기서 Z형에 맞도록 구조가 변한 뒤, 다시 이중나선 안으로 들어와 염기쌍을 맺으면 Z-DNA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연속적으로 이뤄져 지퍼를 채우듯 Z형이 긴 B-DNA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더 이상 Z형이 되지 않는 부위(염기서열)를 만나면 다시 B-Z 결합부위가 만들어지고 반응이 끝난다. Z형이 다시 B형으로 돌아가는 것도 같은 방법이다.

나노 센서 개발에 이용

DNA의 염기를 변형시키는 효소들이 활동을 할 때 이중나선 속에 숨어 있는 염기를 밖으로 돌출시킨 후 변형한다고 알려져 있다. B-Z 결합부위에서 돌출된 염기도 이런 효소의 기질(재료)로 이용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는 Z-DNA가 전체 DNA의 변형에도 기여한다는 가설로 이어진다. 현재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 Z-DNA의 역할은 무엇일까. 리치 교수는 “Z-DNA가 생체내에서 만들어진다면 생물체가 이를 이용할 용도를 진화과정에서 분명히 찾아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밝혀진 Z형의 역할은 유전자의 발현과정(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전사 과정, 즉 DNA에서 RNA가 만들어질 때 ‘네가티브 슈퍼코일링’이라는 높은 에너지 상태가 나타나고 Z형을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Z-DNA는 염색체에서 전사과정이 일어날 때 네가티브 슈퍼코일링이 일어나는 부위에 가장 많이 있다. Z-DNA는 암 유발 유전자의 하나인 ‘c-myc’ 등 특정 유전자의 발현에 필수적이다. 여러 과학자들이 생물정보학을 이용해 Z-DNA가 유전자의 발현 조절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특히 Z-DNA는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신약을 개발하는데 중요하다. 천연두 바이러스에는 Z-DNA에 결합하는 단백질이 있다. 천연두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병을 일으킬 때 결합 단백질과 Z-DNA의 결합이 꼭 필요하다. 이 결합을 막는 물질을 개발하면 항바이러스제로 쓸 수 있을 것이다.

DNA나 단백질을 이용해 나노 크기의 기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특히 DNA를 이용한 나노 소자 개발은 뉴욕대의 나드리안 씨만 박사가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씨만 박사는 DNA로 만든 나노구조물에서 B형과 Z형 DNA 사이의 전환이 일어날 때 생기는 변화를 이용해 나노소자를 만들었다.

우리 팀이 밝힌 B-Z 결합부위의 구조를 이용하면 B와 Z-DNA로 이뤄진 나노장치를 디자인 할 수 있다. 결합부위에서 돌출된 염기를 아미노퓨린(aminopurine) 같은 형광 염기로 바꾸면 구조 변화를 빛으로 알려 주는 스위치로 이용할 수 있어 나노센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네가티브 슈퍼코일링(negative supercoiling)

차곡차곡 염기결합을 하고 있는 DNA가 RNA를 만들기 위해 이중나선을 푼다. 이 때문에 DNA의 다른 쪽에는 거꾸로 염기결합의 밀도가 높아지며 만원버스처럼 빽빽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을 네가티브 슈퍼코일링이라고 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양균 교수
  • 김경규 교수
  • 진행

    김상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