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최고의 자랑이다. 그것도 전국 수석이라면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다. 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수석을 차지한데 이어 서울대 수석합격이라는 영예를 거푸 거머쥔 제주 대기고 3학년 서준호군은 가정과 학교, 지역주민에게 환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국수석이라는 생각없이 단지 그날 그날의 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며 주위의 찬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2남 1녀 중 장남인 서군은 자율적인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준 공무원 부부인 부모와, 밤잠을 설쳐가며 도시락과 식사를 일일이 챙겨주신 할머니에게 영광을 돌렸다.
수능에서 4백점 만점에 3백73.3점을 얻은 서군은 언뜻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연약해보이지만 눈매에서는 영특함이 뿜어져나온다. 고교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으며, 지난 93년 전국 과학경시대회 금상 수상과 96년 제주지역 과학경시 및 외국어(영어) 경시대회를 휩쓴 경력도 갖고 있다.
서군의 장기는 차분함과 집중력. 시간에 쫓겨 서두르거나 덜렁대는 일이 없다. 한 번 책상머리에 앉으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열정을 쏟아붓는다. 오랜 시간 동안 책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1시간반-2시간 정도 공부하다 잠깐 쉬는 것이 몸에 익었다.
“3-4시간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기 보다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자기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 키포인트라는 뜻이다. 수면시간도 마찬가지. 그의 수면시간은 6시간.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그는 믿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수면시간을 3년동안 유지해야 학습시간에 졸리거나 체력이 달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공부 잘하는 비결이요? 특별한 게 없어요. 교과서 중심으로 토론학습을 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서군은 과외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단지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에서 자정까지 시간을 보내는 생활로 3년간을 보냈다. 고1 때부터 심화반에 편성돼 문제풀이 토론과정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는 노력을 반복하고, 특히 일반 수학을 탄탄히 다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귀뜸이다.
수능 전국수석 발표 뒤에는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는 등 유명세를 치르느라 논술시험준비는 친구집을 전전하며 했다고 한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조정래의 장편소설 ‘아리랑’을 순식간에 읽는 등 왕성한 독서와 함께, 그동안 손을 놓았던 컴퓨터에 푹 빠졌다.
이제 그의 꿈은 화학이나 물리 등 순수과학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는 최고 권위자가 되는 것이다. 꿈을 실현하는 도전의 장으로 서울대를 선택했다.
“다른 대학의 입학권유도 있었지만, 국내 최고의 학부로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를 공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순수과학’ 쪽으로 마음을 굳히긴 했지만, 일단은 다양한 분야를 접한 뒤 적성에 맞는 전공을 확정지을 생각이다. 존경하는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꼽을 정도로 그의 순수과학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순수과학은 사람의 머리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과학에 대한 그의 동경이 싹튼 것은 부모를 졸라 ‘과학동아’를 구독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과학동아를 읽으면서 과학에 대한 일반 지식을 쌓았고, 이에 따라 그의 호기심이 계속 자극받은 것이다.
그는 "우주의 신비를 한꺼풀씩 벗겨내기 위해 메스를 잡을 준비를 마쳤다"는 당찬 태도를 내비쳤다. 기숙사 생활을 희망하는 서군은 다양한 경험을 위해 대학에 지학하면 동아리활동에도 빠지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