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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다

뇌와 기계 연결하는 BMI기술

뇌 안에 운동보조 칩을 삽입하시겠습니까?” 담당의사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지난 2025년 암벽을 등반하다가 추락해 목 아래가 마비됐다. 이런 경우 운동중추에 미세전극이 집적된 칩을 이식하는 수술이 이미 일반화돼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어떤 옵션을 택하시겠습니까?” 의사가 다시 물었다. 옵션으로는 칩을 고성능 휠체어에 연결해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과 칩을 몸의 근육에 연결해 휠체어 없이 직접 움직이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둘째 옵션의 경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좋지만 아직 감각반응까지 복원하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어색하고 쉽게 피로해지는 단점이 있다. 잠시 고민 후 그는 말했다. “둘째 옵션으로 해주세요.”

의사 앞에 놓인 명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뇌-기계 접속 클리닉 과장 홍길동.’

신경세포 신호전달은 디지털 방식

이 가상 이야기에서와 같이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을 뇌-기계 접속(Brain-Machine Interface) 또는 뇌-컴퓨터 접속(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뇌-기계 접속 기술을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서 아마 한번쯤은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뇌-기계 접속 기술이 실제로 가능할까? 답은 ‘물론’이다.

우리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신경세포들은 쉴 새 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 신경세포의 신호전달은 기본적으로 전기현상이다. 외부 감각정보는 감각수용기를 통해 전기신호로 바뀌며 감각신경을 통해 뇌의 감각중추로 간다. 반면 자발적인 운동을 할 때는 운동중추로부터 근육까지 이어지는 운동신경 경로를 통해 전기신호가 전해지고, 특정 근육을 수축·이완시켜 우리가 원하는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컴퓨터 같은 정밀기계 역시 전기신호를 이용해 제어하므로, 뇌와 기계는 원리적으로 상호접속이 가능하다.

신경계의 신호 전달은 대개 디지털 방식이다. 신경세포는 크기와 형태가 일정한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로 상호 교신한다. 모스부호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즉 동일한 신호로도 시간에 따른 신호의 패턴 변화에 의해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미세전극을 특정 신경세포 가까이에 놓고 전기신호를 잡아내면 신경세포의 신호를 정확하게 도청하는 것이 가능하며, 외부 기계를 제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거꾸로 전극에 전류를 흘려 인접한 신경세포를 흥분시킬 수 있으며, 이미 수행하고 있는 정보처리 과정을 변환시킬 수 있다.

사실 이런 작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이는 신경과학 중에서도 ‘신경생리학’ 또는 ‘시스템신경과학’으로 불리는 분야다. 대부분 동물을 대상으로 하며, 응용기술 개발보다는 뇌의 작동원리를 밝히는 연구 위주다. 이런 성과가 축적된 결과 응용을 위한 뇌-기계 접속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뇌-기계 접속은 현재도 이미 쓰이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공와우다. 인공와우는 중이가 손상돼 청각을 잃어버린 사람의 청각을 되찾게 해주는 장치다. 사람은 외이(外耳)를 통해 전달된 소리(음파)를 중이(中耳)의 와우(달팽이관)에서 신경신호로 변환해 소리를 듣는데, 와우가 손상되면 음파에너지를 신경신호로 변환하지 못해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인공와우다. 작은 마이크로 소리가 입력되면 이를 언어합성기를 통해 코드로 바꿔 발신기에서 신호를 발신한다. 이런 장치들은 모두 몸의 외부에 장착된다. 다음으로 피부에 삽입된 수화기가 발신기에서 보내준 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꾸고, 전기신호는 인공와우에 이식된 전극으로 전달돼 청신경을 직접 자극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된다.

눈과 귀를 돕는다

“심부 뇌 자극술은 우울증이나 파킨슨병 환자를 위해 사용되는 뇌-기계 접속 기술이다. 파킨슨병은 중뇌 흑질 부위의 도파민성 신경세포들이 죽어가는 것이 원인으로, 기저핵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 결국 운동실조로 이어진다. 잘 알려진 환자로는 전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있다. 파킨슨병이 중증으로 진행되면 약물로 제어가 불가능하다. 심부 뇌 자극술은 환자의 기저핵에 삽입된 전극을 통해 자극을 가해 운동실조를 극복하는 방법인데, 현재 어떤 수술보다 중증 파킨슨병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다만 고가의 비용을 감수해야 하며 피부에 삽입된 건전지를 수년마다 교체해야 한다.

인공와우처럼 실용화되지는 않았으나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가 뇌-기계 접속에 의한 시력회복으로, 인공망막, 시신경 자극술, 시각피질 자극술이 있다. 정상인의 경우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은 망막의 광수용기를 통해 전기신호로 변환된다. 질병으로 망막이 손상된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인공망막이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주고, 바뀐 신호를 시각신경에 전달해주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소형카메라에 잡힌 시각정보를 망막에 장착된 전기자극칩에 무선으로 전달해 시신경을 자극하는 방법, 망막에 삽입된 광다이오드칩이 직접 빛을 받아들여 전기신호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임상시험에서 두 경우 모두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 큰 글씨를 알아보고 상이한 물체를 분간했다. 그러나 시각계가 처리하는 정보량이 청각계의 정보량보다 워낙 방대하고, 뇌에서 시각에 관여하는 부위가 청각 부위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시각을 정상인과 비슷한 정도로 되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인공망막 칩의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등 상당한 기술발전이 있어야 또렷한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뇌-기계 접속 기술은 운동신경보장구로, 잃어버린 운동기능을 부분적으로 회복시켜주는 기술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운동신경에 이상이 생긴 사람의 경우 운동중추의 신호를 포착해 외부기계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운동신경보장구다. 연구방법은 뇌파와 개별 신경세포 신호를 이용하는 두 가지로 나뉜다.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누구나 쉽게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데 반해 개별 신경세포 신호를 측정하려면 두개골을 뚫고 전극을 삽입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뇌파 측정법이 훨씬 우월하다. 반면 뇌파 측정법의 결정적인 단점은 뇌신경망이 처리하는 정보를 해독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뇌파는 측정전극 아래에 있는 수많은 뇌신경세포 신호의 합이기 때문이다. 뇌파 측정법 연구자들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뇌파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추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현재 이 기술은 1분에 영어단어 1~2개를 생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편 신경세포 신호 측정법은 정보의 해상도에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미국 회사 사이버네틱스는 사지마비 환자에게 미세전극 칩을 삽입해 환자가 생각만으로 e메일을 송수신하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기술 발전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매우 정교한 움직임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뇌 속에 전극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안전성과 생체적합성이 검증돼야 한다.
 

인공와우가 작동하는 원리^와우(달팽이관)가 손상된 사람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인공와우는 대표적인 뇌-기계 접속기술이다. 마이크(01)로 소리가 들어오면 언어합성기로 전달해(02) 코드신호로 바꾼 다음(03) 발신기로 보낸다(04). 발신기가 이 신호를 피부에 삽입된 수화기로 보내면(05) 수화기가 전기신호로 바꿔(06) 인공와우로 전달한다(07). 인공와우의 전극이 전기신호를 받아 청신경을 자극해(08) 소리를 듣게 된다.


쥐 + 로봇 = 랫봇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뇌 활동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측정한 뒤 이 신호를 이용해 두 피험자가 실시간으로 컴퓨터 탁구게임을 하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뇌영상 기술이 발전해 고속, 고해상도, 저가의 휴대용 뇌영상 기기가 나오면 뇌파보다 훨씬 우수하면서도 칩을 삽입하지 않는 뇌-기계 접속 기술이 가능할 것이다. 단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가 에니악에서 노트북으로 발전한 것과 같은 기술적 진보가 있어야 한다.

뇌신경계를 직접 자극하는 뇌자극술은 뇌신경망의 정보처리를 조절하거나 손상된 신경계를 재생시키는 등 응용 가능성이 많은 분야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는 쥐의 양쪽 감각중추와 쾌감중추에 전극을 이식한 뒤, 감각중추의 자극에 쥐가 반응하면 쾌감중추를 자극해 쥐의 움직임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자극은 모두 원격제어로 이뤄졌으며, 쥐(rat)와 로봇(robot)이 결합됐단 의미에서 이 시스템에 ‘랫봇’(ratbo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랫봇이 발전하면 여러모로 응용이 가능하다. 카메라를 장착시켜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 보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물론 위험한 곳에 사용될 수도 있다. 랫봇에 폭탄을 장착해 원하는 곳에서 터뜨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무릇 과학기술의 발전은 양날의 칼을 담금질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뇌-기계 접속 기술의 쓰임새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는 인공해마를 뇌와 접속시키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해마는 측두엽 깊숙이 위치하는 부위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최근 기억을 유지하는데 필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해마가 특히 손상을 받으므로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알츠하이머병이나 뇌졸중으로 해마가 손상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인간 생활 도울 뇌-컴퓨터 접속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권위 있는 여러 기관에서 21세기의 주요 신기술 중 하나로 뇌-기계 접속 기술을 꼽은 바 있다. 왜 최근에 와서야 뇌-기계 접속 기술 연구가 활성화됐을까? 그 이유로 우선 신경신호 측정기술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고집적 다중채널 신경신호 측정기술이 발전해 한번에 100개 이상의 단일신경신호 측정이 가능해졌다.

또 컴퓨터의 발달과 신호처리 기술의 발전으로 측정한 신경신호를 실시간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뇌신경과학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거듭해왔다. 뇌-기계 접속 기술은 기존의 뇌신경과학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 근거한 응용기술인 것이다.

뇌-기계 접속 기술의 미래는 어떨까?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기술 개발은 장기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뇌-기계 접속 기술은 기존 치료법과는 전혀 다른 치료 가능성을 열어주며, IT와 로봇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작고 효율적인 접속기기들이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뇌-기계 접속 기술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과연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기술이 개발될 것인가다.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그러나 뇌파 또는 뇌영상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정상인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미세전극 시술법이 간편하고 안전하게 개선돼 라식수술 하듯 전극을 이식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저명한 물리학자인 호킹 박사의 말을 인용해본다. “인공뇌가 사람의 지능에 반하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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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민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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