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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비롯한 기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8세기부터였다. 영국의 기체화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공기라고 부르던 것이 실은 순수한 한 가지 성분으로 이뤄져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내면서 다양한 기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아르곤은 질소, 산소 다음으로 공기에 많은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1% 남짓한 미량에다 반응성도 적어 18세기 말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1783년 영국의 헨리 캐번디시는 공기와 산소를 섞어 마찰전기로 스파크를 일으키면 공기가 사라지고 질산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차례 이 실험을 반복한 캐번디시는 대기 중에 산소와 질소 외에 또 다른 성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이를 실험의 오차로 간주했다.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 19세기에 기체화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날씨에 관계없이 대기 중 질소와 산소의 비율이 항상 같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었지 대기 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순물은 관심 밖이었다.

레일리가 아르곤을 발견한 것은 1880년대 초 원자량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의 윌리엄 프라우트가 1815년에 주장한 대로 원소의 원자량은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여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시 알려진 값은 정확히 수소의 정수배가 아니었다. 가령 산소는 수소 원자량의 15.96배였다.

레일리는 이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화학자들이 물질의 밀도와 같은 물리적 특성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량이 정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882년 기체의 밀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실험장치를 고안했다.

레일리는 산소의 밀도를 측정한 다음 질소의 밀도를 측정했다. 질소는 대기에서 가장 많은 성분이므로 대기 중에서 다른 성분들을 제거하면 순수한 질소를 얻어 그 원자량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레일리의 계산이었다.

산소는 달군 구리로 제거하고 수소는 산화구리로 없앨 수 있었다. 7번의 측정 끝에 레일리가 얻은 질소의 밀도는 1만분의 1의 오차범위 내에서 기존 값과 일치했다.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레일리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결과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암모니아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질소를 얻어 밀도를 측정해도 동일한 값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공기를 농축된 암모니아에 통과시킨 다음 뜨거운 구리 위를 지나도록 했다. 그러면 공기에 딸려온 암모니아 속의 수소가 뜨거운 유리관 속에서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수증기가 되면서 질소가 분리되고 산소가 없는 공기에는 질소만 남게 된다.

암모니아에서 생성된 질소와 공기 중의 질소가 섞인 기체를 건조제에 통과시키면 수분까지 제거돼 순수한 질소를 얻을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질소를 얻으면 일부는 암모니아에서 나온 것이고, 일부는 대기 중에 있던 것이 될 것이다.

앞 실험과 마찬가지로 레일리는 7번의 측정 끝에 1만분의 1의 오차범위 내에서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낸 이전 실험에서 얻은 값에 비해 질소가 0.1%, 즉 2.3mg만큼 무거운 것이 아닌가. 그는 몇 차례 더 심혈을 기울여 주의 깊게 실험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868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 상류층이 매주 발간한 잡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에 실린 레일리의 실험 장면. 1899년 12월 21일자에 게재됐다.


레일리는 1892년 9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제안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실었다. 한달 뒤 레일리는 런던대 화학교수인 램지로부터 같은 난관에 봉착했다는 응답을 받았다. 그 때 이미 레일리는 화학적으로 분리시킨 질소의 불순물보다는 대기 중에서 얻은 질소 표본에 비활성 불순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런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레일리는 순수한 산소만 농축된 암모니아에 통과시켜 암모니아에서만 질소를 얻었다. 예상대로 이번에는 대기 중에서 얻은 같은 부피의 질소보다 10mg이나 가벼웠다. 이것은 대기 중의 질소가 0.5%나 무겁다는 것을 의미했다.

레일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자신의 생각을 입증해나갔다. 우선 일산화질소와 이산화질소를 환원시켜 질소를 얻었다. 그랬더니 질소의 밀도는 암모니아를 분해해 얻은 값과 일치했다.

또 불순물 제거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지 모르므로 새롭게 침전시켜 얻은 수산화제일철로 불순물을 제거한 뒤 다시 뜨거운 구리로 질소를 얻는 방법도 썼다.

요소를 분해해 질소를 얻고 뜨거운 철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아질산암모늄을 분해하고 불순물 제거 과정 없이 질소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레일리가 다양한 질소의 원천과 다양한 불순물 제거 방법을 동원해서 얻은 결과는 한결 같았다. 화학적으로 분해해 얻은 질소가 대기 중의 질소보다 일정 비율만큼 가벼웠다.

2년의 노력 끝에 1894년 여름이 되자 레일리는 대기 중에 미지의 비활성 성분이 있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캐번디시의 실험을 들은 레일리는 캐번디시보다 좀 더 정교한 장치를 써서 미지의 기체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램지 역시 뜨거운 마그네슘을 대기 중에서 모은 질소와 반응시켜 질소 속에 들어있던 미지의 성분을 분리해냈다. 이후 두 사람은 공조를 통해 이 성분의 물리적 성질은 레일리가, 화학적 성질은 램지가 연구하기로 했다.

램지는 많은 실험을 통해 이 기체를 다른 물질과 결합시키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이 기체는 ‘게으르다’는 의미의 그리스어로부터 ‘아르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1895년 1월 31일 두 연구자는 ‘아르곤, 새로운 대기의 성분’이라는 제목으로 왕립학회에서 공동 논문을 발표했고 이로써 아르곤은 불순물이라는 오명을 벗고 질소, 산소와 함께 당당히 대기의 구성성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램지는 단독으로 헬륨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트래버스와 함께 네온, 크립톤, 제논 등 비활성 기체를 잇달아 발견하면서 아르곤은 이들과 함께 주기율표에서 희귀 기체 0족으로 자리 잡게 됐다. 0족 기체의 발견으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완성됐고, 왜 원소의 반응성이 족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레일리는 아르곤을 발견하고 그 성질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4년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레일리의 아르곤 발견 실험^공기에서 구리를 가열해 산소를 제거하고 산화구리로 수소까지 제거한 뒤 얻은 질소(a)와 암모니아(NH₃)의 수소를 산소와 결합시켜 수증기로 만든 뒤 얻은 질소(b)에서 (b)가 (a)보다 2.3mg 무거웠다. 레일리는 이 차이가 미지의 기체 아르곤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레일리는

레일리는 1842년 영국 에식스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윌리엄 스트럿인데 1873년 아버지가 죽자 조부 때부터 이어온 귀족의 작위를 받아 레일리 남작 3세가 됐다. 칠삭둥이였던 탓에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 또래 아이들보다 말을 늦게 배웠지만 어려서부터 과학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861년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한 뒤 수학우등졸업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이후 자신의 집에 실험실을 차리고 연구를 하며 귀족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1879년 맥스웰이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의 2대 소장으로 취임해 전기 표준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84년 캐번디시연구소를 떠난 뒤에는 집에서 음향학, 광학, 전자기학, 수력학, 열역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과학연구를 계속했다. 왕립학회 서기와 회장을 지냈고, 왕립연구소 자연철학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재·현·실·험

레일리와 램지가 아르곤을 발견했지만 그 결과는 바로 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르곤의 밀도가 당시 알려진 기체의 밀도보다 상당히 컸기 때문에 화학자들은 그렇게 무거운 기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1894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의에서 예비발표를 했을 때도 학계에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레일리와 램지가 발견한 새로운 기체는 실험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화합물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었다.

예를 들어 산소에 전기 충격을 가하면 오존(O3)이 되고, 질소는 N3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크룩스와 아서 슈스터는 아르곤의 스펙트럼이 다른 원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비활성 기체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아르곤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현재 아르곤은 액화된 공기를 분별증류해 생산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는데, 대기 중에 존재하는 아르곤을 분리한다는 점에서는 레일리의 방법과 동일하다.

아르곤은 백열전구에 기체로 널리 쓰인다.
 

램지는 레일리와 함께 아르곤의 존재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190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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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구자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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