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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운동계는 근육과 신경의 합작품

최근 많은 스포츠팬들이 TV 중계를 통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의 자로 잰 듯한 패스를 보면서, 또 정교한 컨트롤로 상대 선수에게 삼진 아웃을 잡아내는 박찬호 선수의 활약상을 보면서 열광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도 걷기, 말하기, 글쓰기와 같은 매우 정교한 운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지는 모르고 있다. 일상적인 운동도 대단히 복잡한 중추신경계가 수많은 근육의 작용을 매우 세밀하게 조절해 이뤄지고 있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급변하는 또는 예측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750여개의 근육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세밀하게 활동을 하면서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근육은 운동 수행 기관

운동을 조절하는 신경계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육에 대해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근육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관절을 가로질러 뼈의 한 부분에 부착돼 있다.

우리는 작용근(agonist)이라고 불리는 근육을 이용해 관절을 구부리거나 펼 수 있다. 작용근과 반대 역할을 하는 근육은 대항근이라고 한다. 즉 작용근이 수축할 때 대항근(맞버팀근, antagonist)은 이완된다. 운동을 할 때는 작용근과 대항근 여러 개가 함께 작용한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조직에 작용하는 근육도 있는데, 눈동자나 혀를 움직이는 근육, 얼굴 표정을 조절하는 근육이 이에 해당한다.

각 근육은 근섬유 수천 개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근섬유는 뇌나 척수에서 알파운동신경세포에 의해 조절되는데, 알파운동신경세포 하나는 근섬유를 평균 수백 개 제어할 수 있다. 알파운동신경세포 한 개와 그 지배를 받는 모든 근섬유가 동시에 하나의 단위가 돼 근육의 작용을 제어하므로 이를 ‘운동단위’라고 한다.

자세를 유지하는데 관여하는 항중력근이나 다리 근육처럼 움직이는 범위가 넓은 근육은 운동단위가 커 하나의 알파운동신경세포가 1000개 이상의 근섬유를 지배한다. 그러나 손가락이나 눈 주변의 근육과 같이 세밀한 운동을 담당하는 근육은 하나의 알파운동신경세포가 수개의 근섬유만 지배하므로, 많은 수의 작은 운동단위를 가져 중추신경계의 정교한 조절을 받는다.

이처럼 운동신경세포는 중추신경계와 근육 사이에서 중요한 연결 작용을 하므로, 이 신경세포가 죽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척수의 알파운동신경세포들이 점점 파괴되는 병으로, 끝내는 호흡근육이 마비돼 죽는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루게릭(Lou Gehrig) 선수가 걸렸던 병으로 일명 ‘루게릭병’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은 반사작용이다. 이는 특정 자극에 대해 근육이 항상 고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근육 안에는 근수축을 직접 담당하는 근섬유 이외에 ‘근방추’(muscle spindle)라는 작고 특수한 구조물이 있다. 근방추는 근육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을 감지하는 감각수용기로 근육에 대한 정보를 직접 알파운동신경세포로 전달한다.

가장 간단한 운동은 반사

예를 들어 근육이 갑자기 늘어나면 근방추의 감각신경섬유를 따라서 연속적인 전기신호가 척수로 전달되며, 이는 늘어난 근육을 지배하는 운동신경세포를 직접 활성화시켜 해당 근육이 반대로 수축되도록 유도한다. 이 현상을 ‘신장반사’(stretch reflex)라고 한다.

이와 같은 반사작용은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다쳤을 때 척수나 척수신경의 손상 여부를 알기 위한 진단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사가 척수반사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 무릎을 진단용 망치로 두드리는 것이 좋은 예다.

뇌는 감마운동신경세포라는 별도의 운동신경세포를 통해 근방추의 감수성을 조절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운동 형태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이외에 근육의 힘을 감지하는 감각기관도 있는데, 이는 척수신경 다발을 통해 전달돼 운동신경에 영향을 준다. 결국 중추신경계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운동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중추신경계는 커피가 가득 찬 찻잔을 들고 있을 때처럼 정확한 위치 조절이 필요한 경우, 공을 던질 때처럼 빠르고 강한 움직임이 필요한 경우 등 운동 형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불이 켜진 계단을 걸어 내려갈 때와 어둠 속에서 걸어 내려갈 때의 차이점을 비교해 본다면 뇌가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공부를 하다 피곤을 이기지 못해 의자에 기대어 깜박 잠이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지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그다지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지만 가끔은 침까지 흘리는 친구도 있다). 이는 잠이 들면 뇌가 운동신경세포를 감시하고 조정하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의식이 있을 때와 달리 입을 다물게 하는 근육이 이완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회피반사는 우리의 구세주

여름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걷다가 무심코 날카로운 물체를 밟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발을 재빨리 들어올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인체의 손상을 방지하는 ‘회피반사’의 대표적인 예다. 이때 자극을 받은 다리는 즉시 들어올리지만 다른 쪽 다리는 반대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지탱한다. 이 현상을 ‘교차신장반사’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반사활동은 척수신경계에서 바로 일으키므로 주의를 집중하지 않더라도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 이 덕분에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뜨거운 주전자 같은 위험한 물체에 닿았을 때 회피반사로 신체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통증을 느끼는 감각과 회피반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전략이다.

척수운동신경계는 걷기운동에도 관여한다. 걸을 때 우리는 두 다리를 굽히고 펴기를 반복한다. 이때 타이밍이 정교하게 조절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걷기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육 활성의 기본 패턴은 네발 달린 동물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기본적인 근육의 활성은 척수 자체에서 처리된다. 척수신경의 이런 메커니즘은 아마도 원시 척수동물의 것이 아직 인간의 척수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를 통해 걷기나 씹기와 같이 율동적이면서 반복적인 운동을 조화롭게 수행하기 위한 신경회로망이 척수나 뇌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부위를 ‘중앙패턴발생영역’(central pattern generators)이라고 부른다.
 

교차신장반사가 일어나는 과정^길을 걷가가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밟으면 이 정보가 감각신경을 거쳐 척수로 전달된다. 척수신경계는 질린 다리를 재빨리 들어올리도록 운동신경에 통해 근육을 조절한다. 다른 쪽 다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땅을 딛고 지탱하도록 조절한다. 이런 반사작용은 인간이 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이자 기본 생존전략이다.


뇌는 운동을 조절하는 사령부

우리가 하는 운동은 결국 척수운동신경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수의적 운동과 같이 복잡한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뇌가 척수운동신경계를 조절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정교한 동물연구를 통해서 수의적인 운동을 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이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뇌 영역 가운데 하나가 대뇌피질의 일부분인 운동피질(motor cortex)이다. 운동피질은 원숭이와 사람에서 척수 운동신경세포의 활동을 강력하게 조절하고 있다. 운동피질의 어떤 신경세포는 동시에 많은 근육이 필요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조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특정 위치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대뇌피질 외에도 기저핵, 시상, 소뇌, 중뇌, 뇌간(대뇌피질과 척수를 연결하는 중간 부분) 등 뇌의 다른 영역들도 운동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과학자들은 기저핵과 시상이 대뇌 반구의 감각영역과 운동영역에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기저핵이 조절기능을 상실하면 운동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질환의 한 예가 바로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기저핵과 연결된 중뇌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서 발생하는데,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이유는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기저핵에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를 이식하거나 줄기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이 질환을 치료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소뇌는 숙련이 필요한 모든 운동을 조절하는데 중요하게 관련돼 있다. 소뇌가 기능을 상실하면 운동할 때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거나, 여러 근육이 협동하면서 운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소뇌는 근육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각수용기, 머리의 위치와 운동을 감지하는 속귀의 감각수용기로부터 직접 감각정보를 받는다. 또한 대뇌 반구도 소뇌로 신호를 직접 보낸다. 소뇌는 이와 같은 모든 정보를 통합해 근육운동을 유연하게 조절함으로써 우리가 숙련된 운동을 다소 자동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악기 연주를 배울 때 처음에는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고도 서툴지만, 점차 숙련됨에 따라 연주하는 동작이 점점 매끄러워지고 마침내 거의 무의적으로도 해당 운동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뇌에 새로운 운동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운동 관련 정보가 소뇌에 저장됐다가 필요한 경우 대뇌가 명령을 보내면 다시 불려나와 행동이 이뤄진다는 과학적인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행동의 원천, 운동신경계

운동신경계는 우리의 행동을 직접 실행하는 일을 담당한다. 걷기, 말하기, 글쓰기와 같은 일상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숙련을 요구하는 스포츠나 악기 연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운동신경계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최근 운동신경계에 발생하는 여러 질환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운동신경계 질환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은 인간이 질 높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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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오석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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