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익숙해진 가을밤, 달의 일부가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시작된다. 달의 가림이 매우 약해 그리 기대할 수준은 아니지만 여유가 있다면 하늘을 한번 쳐다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월식
어린시절 읽었던 ‘솔로몬의 동굴’이란 동화를 기억해보면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위협을 당하는 주인공 일행이 곧 하늘의 달이 가려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후 하늘에 떠있던 보름달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면 원주민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하늘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고 그 틈을 타 주인공들은 위험에서 빠져 나온다.
오늘날 월식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현상은 과학지식이 없던 옛날 사람이나 원주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가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일식이나 월식에 대한 미개인들의 두려움이 잘 표현돼 있다. 고대에는 신 가운데서도 최고의 위치를 점했던 태양이나 달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오래전 백성을 다스리던 왕들에게는 하늘의 징표라 할 일식이나 월식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를 위해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으로 삼았고 이를 연구하는 관직을 둬 특정 사람들만 연구하게 했다.
지구와 달의 운행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고, 또 계산할 수 있는 요즘에는 일식이나 월식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에는 일식과 월식의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 잘못 예측한 경우가 발생하면 왕은 그 관리를 죽음으로 다스리곤 했다.
18년 10일의 사로스주기
그렇다면 과거에는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해 월식을 예측했던 것일까? 인류가 일식이나 월식에 관심을 갖고 예측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기원전 수천 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기법도 점차 발전해 중국에선 기원전 600년경인 춘추시대, 그리스에선 기원전 400년경에 이미 일식과 월식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에선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천동설로는 행성의 운동이나 일식, 월식의 예측이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일식이나 월식이 일정한 기간의 주기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한 주기를 중국에서는 ‘장’(章)이라고 불렀고, 그리스에선 ‘메톤주기’라고 불렀다. 일식과 월식의 주기성이야말로 예측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기초 지식이었다.
천구상에서 달의 운동을 살펴보면, 달은 천구상의 특정 지점에서 출발해 6585일이 지나면 다시 그 지점에 위치한다. 즉 6585일마다 달은 하늘의 동일한 지점에 위치한다. 또 태양과 떨어져 보이는 각도인 이각도 동일해 우리가 보기에 똑같은 별자리에서 똑같은 모양(월령)과 상태가 된다. 즉 달과 연관된 모든 현상은 6585일을 주기로 똑같이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사로스주기’라 한다.
사로스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주기는 18년 10일 가량 된다. 1사로스주기 동안 월식은 29회, 일식은 41회 일어난다.
54년 31일마다 같은 식 반복
사로스주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년, 삭망월(삭에서 다음 삭까지 걸리는 시간, 2953만589일), 근점월(달이 근지점에 있었을 때부터 다음 근지점에 오는데 걸리는 시간, 2755만4551일), 교점월(달의 궤도면과 황도면이 교차하는 교점으로부터 한바퀴 돌아서 같은 교점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27만2122일)의 최소공배수를 구해보면 사로스주기에 거의 일치한다(19식년=6585.78일, 223삭망월=6585.32일, 239근점월=6585.54일, 242교점월=6585.36일). 즉 공교롭게도 6585일이 이들 모든 주기가 일치하는 때이기 때문에 달과 관련된 모든 현상은 사로스주기인 6585일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식년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식년이란 황도와 백도의 교점을 통과해 다시 교점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평균 식년은 34만6620일이다.
만일 사로스주기가 정확히 6585일이라면 이 일수가 경과한 후에는 지표상의 동일 위치에서 전과 같은 시각에 똑같은 월식을 반복해서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삭망월이 6585일에 비해 0.32일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 양에 해당하는 약 8시간만큼 모든 현상이 늦게 일어난다. 즉 월식이 일어난 후 6585일하고 8시간 후에 동일한 월식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지구는 8시간 동안 약 120도 자전하므로 식이 관측되는 지역도 120도 동쪽으로 옮겨진다. 그러므로 3사로스주기가 지나면 원래 지점에서 동일한 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옛날 사람들은 3사로스주기인 54년 31일마다 일식이나 월식이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래서 3사로스주기 이전의 기록을 살펴보고 월식이나 일식이 있었는지 알아보면 앞으로의 일식이나 월식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월 17일 밤 9시 하이라이트
오는 10월 17일 밤에 부분월식이 일어난다. 그럼 이번 2005년 10월 17일 월식의 1사로스주기 이전이었던 지난 월식은 언제였을까? 바로 1987년 10월 7일이다. 이날 과연 월식이 있었을까?
1987년 10월 7일에는 달이 지구의 반그림자에 들어가는 반영(半影)식만이 일어났다. 또 대낮인 13시(식심시각)에 대서양 부근에서 일어났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120도 회전과 8시간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맞아떨어진다는 신기한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미약한 부분월식이고 당시에는 부분식이 아닌 반영식에 불과했을까? 세차운동 등의 영향으로 달의 위치에 대한 미세한 차이가 1사로스주기 전에는 반영식이었던 현상을 이번에는 미약한 부분월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아마 과거의 예언가들은 이번 월식을 반영식으로 예측하지 않았을까.
10월 17일 일어나는 부분월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번 월식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지구상에서 볼 수 있다.
이날 반영식이 시작되는 시각은 18시 51분이다.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식이 시작되는 순간은 20시 34분이다. 식이 가장 많이 진행된 시점은 저녁 21시 3분으로 이때 식분은 0.068이다. 즉 달 지름의 약 1/20 정도만이 가려지는 매우 미세한 월식이다. 이때 달은 동남쪽하늘 고도 약 40도 지점에 위치하므로 관측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식이 끝나는 시각은 21시 32분이며, 반영식까지 완전히 끝나는 시점은 23시 15분이다.
반영식은 달이 가려진 형태가 나타나지 않고 단지 달의 한쪽 부분이 미세하게 어두워지는 모습으로 보인다. 꽤 관측이 어려울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반영식을 맨눈으로도 쉽게 볼 수 있다.
월식은 일식과 달라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번처럼 아주 일부분만 가려지는 부분월식은 식이 시작됐는지 알아채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최대시점이 언제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맨눈으로도 달의 일부가 가려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으므로 관측하기엔 꽤 재미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월식이 18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월식을 접하면 또다른 느낌으로 흥미있게 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식분 | 월식 또는 일식에서 천체가 가려지는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 값. 일식은 태양의 지름, 월식은 달의 지름을 단위로 해서 지름이 가려진 부분의 비를 뜻한다. 개기일식이나 개기월식 때는 식분 값이 1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