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인간을 중력의 속박에서 해방시켰던 것은 '기구(氣球)의 발명'이었다.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주머니에 채워넣어 그 부력으로 떠오르게 만든 물체가 기구이다.
기록에 남은 제일 오래된 기구는 프랑스 '몽골피에'형제가 1783년 '리용'시에서 실험한 것. 지름이 약 10 5m가 되는 기낭에 짚을 태워 더워진 공기(熱空氣)를 가득 채운 것으로 약 3백m의 고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는 기구의 연구와 제작이 활발해졌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샤를르'가 최초의 수소가스 기구를 파리에서 5백m 이상을 띄워 올렸다. 또한 1785년1월에는 프랑스인 '블랑샤'가 도버에서 '칼레'까지의 영국해협을 횡단하였다. 이후 1백년간 모험과 탐험의 대명사는 기구였다.
1903년 동력비행선 즉 비행기의 발명으로 '기구에의 열정'은 어느 정도 감소했으나, 변화무쌍한 대기를 직접 접촉하면서 이를 정복해나가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기구여행은 많은 모험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해협 횡단 이후 그 다음차례는 당연히 대서양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의외로 길었다. 블랑샤의 성공 이후 2백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도전이 이루어졌다. 14회에 걸쳐 도전이 시도되었고 이중 5명의 모험가가 사망했는데, 이는 모두 197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경쟁은 치열했다. 그 경합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1976년의 미국인 '에드 요스트'였다. 헬륨기구, '실버 포커스'호에 탔던 그는 항속기간과 항속거리에서 신기록을 수립했으나 유럽의 해안에서 약 1천㎞ 못미치는 지점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부정기화물선을 만나 목숨은 구했다.
'요스트'의 기사를 보고 새로운 도전의 결심을 굳힌 것은 42세의 실업가 '맥스 앤더슨'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의 기구 경기에서 우승경력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극한 상황에서 시험하고자 했던것이다. 맥스 앤더슨은 모든 성공한 모험가에게는 공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냉정한 분석정신이 적당히 가미된 로맨틱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주리 육군사관학교출신으로 파일럿 면허를 취득하고 있었고 석유와 광산분야에 뛰어들어 기업경영에서도 성공을 거둔 야심찬 경영자였다.
그는 스키를 통해 15년 동안 친구관계를 유지했던 '벤 아블쇼'를 대서양 횡단 기구여행에 끌어들였다. 벤은 맥스보다 훨씬 더한 모험광으로서 스키, 행글라이더, 경비행기 등을 매우 즐겼다. 벤 역시 백만장자였지만 그들은 성격적으로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있다. 벤은 빠른 판단에 동작도 민첩했다.
그들은 1977년 9월9일 '더블 이글호'라 명명된 기구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올랐으나 비행시간 65시간 30분을 기록하고 아이슬랜드에 불시착했다. 그러나 1년 후 재도전에 나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