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일주일은 돼야하지 않을까요? 3박 4일은 너무 짧아요.’ ‘MP3플레이어 꼭 챙기세요. 강연은 녹음이 필수입니다.’ 내년 ‘3M 사이언스 캠프’에 참가할 생각이라면 올해 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이 좋겠다. 지난 8월 11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제4회 3M 사이언스캠프에 참가한 중학생 108명의 과학 체험 72시간을 들여다보자.
강당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한 학생들 사이에 어색함이 흐른다. 옆 동네 친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과학을 좋아하는 또래라는 동질감과 학교도 사는 곳도 다르다는 이질감이 섞여 묘한 긴장감까지 감돈다.
명강사에 명질문
이번에는 캠프 선발 기준이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학교장 추천서, 과학 관련 대회 시상 내역서, 과학성적 평가서, 과학 심화학습 계획서, 지원 동기서까지 서류만도 5가지를 제출했다. 과학에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접수하기도 전에 포기하기 쉬울 법한 지원과정이었다.
“개미 같은 곤충도 복제가 가능한가요?” “다음에 어떤 동물을 복제하실 거예요?”
첫 타자로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가 강연을 마치자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이 교수는 최근 황우석 교수와 함께 세계 최초로 복제 개 ‘스너피’를 탄생시킨 주역. 한국 생명공학계의 스타를 직접 만났다는 설렘에 질문은 끝이 없다.
이번엔 우주에 마음을 뺏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원장은 14세기 최무선에서 21세기 인공위성 아리랑2호까지 한국의 수백 년 우주기술을 줄줄 쏟아낸다.
“우주인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2007년 탄생한다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궁금한 모양이다. 채 원장이 ‘비법’을 알려준다.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만 확실하면 됩니다.”
지금은 14살, 15살이라 2년 뒤 최초의 우주인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2, 제3의 우주인은 충분히 꿈꿀 수 있다.
오감 만족 체험, 흥미는 백배
실내가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지금은 부스활동 중. 부스를 옮겨 다니며 이것저것 만지고, 듣느라 분주하다. “처음에는 양말 신고 올라가고, 두 번째는 맨발로 올라가고, 세 번째는 앉았어요.” 김수인(서울 목일중 1년)양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린다. 그래도 목소리는 밝다. 나무판에 잔뜩 박힌 못 위에 올라서서 힘의 분산을 체험한 것.
한쪽에서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퀴의 운동에너지로 자석을 움직여 전기에너지를 만들어야 물 펌프에서 분수가 나온다. 옆에서는 연신 “더 빨리”를 외친다. 페달을 빨리 밟을수록 전기에너지가 커지고, 그만큼 물의 위치에너지가 증가해 물줄기가 높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한낮의 콘서트가 시작된 걸까. 색색의 야광봉을 하나씩 들고 있다. 화학반응을 이용해 직접 제작한 것. 과산화수소와 디페닐옥살레이트를 반응시켜 발광시킨 뒤 비닐관에 넣었다.
아쉬움에 ‘아~’ 소리가 절로 새어나온다. 한창 TV 만화 ‘명탐정 코난’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코난이 열차 밖으로 폭탄을 차내는 클라이맥스에서 김종헌(대전 둔산여고) 교사가 화면을 멈췄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과학적 오류가 있나요?”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할 틈도 없이 질문이 날아온다. 김 교사는 숨은 과학 법칙을 찾기 위해 코난을 무려 500편이나 봤다. 그것도 두 번씩.
발가락 보호하고 개미 없애는 방법은?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그까이거 뭐 대~충’ 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캠프의 백미인 발명과 논문 시간. 본인이 선택한 프로그램에 따라 캠프 마지막 날 자신의 실용신안을 내든가 과학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3M 사이언스 캠프에서는 올해 처음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쓰리엠 최혜정 홍보실장은 “누가 캠프에 와서 특허를 출원하고 논문을 완성할 것이라고 생각하겠느냐”며 “재미도 있지만 내실 있는 캠프를 만들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발명반을 맡은 오기영(대전 대신고) 교사는 ‘보따리’부터 푼다. 큰 여행용 가방에는 때밀이 수건, 빗, 부메랑 등 갖가지 물건이 가득하다. 그는 “아이디어 하나만 바꿔도 새로운 물건이 된다”며 때밀이 수건부터 꺼내 한 손에 낀다. 엄지손가락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것, 손가락장갑 모양, 길쭉한 등밀이용 등 때밀이 수건 하나만 해도 변형된 형태가 수십 가지다. 발명이란 거창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최연규(서울 경원중 2년) 군은 양말에서 발가락이 닿는 부분에 스펀지 패드를 덧대 발가락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인다는 실용신안을 냈다. 손혜령(경기 발산중 1년)양은 건조대에서 빨래를 하나씩 걷느니 건조대에서 날개살을 분리해 한번에 빨래를 아래로 떨어뜨리자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효심이 과학 논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가끔 집안을 돌아다니는 개미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떻게 하면 개미를 퇴치할 수 있을까 연구한 것. 김지훈(서울 역삼중 1년), 이신우(서울 한영중 1년), 이하정(서울 하계중 1년) 팀은 실험을 통해 고춧가루, 소금, 고무줄을 사용하는 민간요법과 시중에 판매되는 화학약품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민간요법을 제대로 활용하면 화학약품보다 안전하고 효과도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논문반을 지도한 이희권(충남 과학고)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안 쉬고, 새벽 2시까지 잠을 안자며 몰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아이디어도 있지만 논문을 통해 과학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라퓨타 : 과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한다.
이번 캠프에서 과학에 ‘한 몸 던진’ 것은 비단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만이 아니다. 과학 동아리 ‘라퓨타’(LAFUTA) 소속 대학생 26명이 24시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캠프 활동을 도왔다. 세계 최초 손가락 마우스 개발자(김진산, 충남대 전기정보통신공학부 1년), 세계 최초 3차원 레이저 시스템 개발자(서순명, 충남대 기계설계메카트로닉스공학부 1년), 제1회 대통령과학장학생, 특허 및 실용신안 수십 개 보유. 이력만 들어도 화려하다. 이들이 캠프에 참가한 이유는 뭘까.
라퓨타 회장을 맡고 있는 전상웅(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3년)씨는 “우리 역시 그 나이 때 과학을 좋아했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갖고 봉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씨는 3M 사이언스 캠프 1회부터 지금까지 ‘개근’한 ‘모범생’.
이밖에도 라퓨타는 인텔에서 주최하는 ‘국제과학기술박람회’(ISEF)의 예선 대회인 ‘한국과학기술박람회’(KSEF)에서 진행을 도왔고, 매주 보육원에 찾아가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과학 영재 교육 캠프’를 직접 기획해 두 차례나 진행한 경험도 있다.
라퓨타 회원들에게 이공계 기피는 딴 세상 얘기다. 박청하(KAIST 1년)씨는 “과학을 많이 접할수록 과학의 매력을 알게 된다”며 “이공계 기피는 이공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