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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쌀을 빻는 방앗간 지기 - (주)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황.철.주.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아십니까?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로 시작하는 가수 박재홍의 노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고향으로 돌아가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꼬면서’ 사는 한가로운 시골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에게 물레방아는 ‘그 때 그 시절’의 한 자락을 상상하는 낭만 또는 추억의 공간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사장에게 물레방아는 찢어지게 가난해 제대로 먹지조차 못한 어린 시절의 한(恨)이 덜컥거리며 굶주림의 기억을 돌려내는 장치다. 경북 고령의 시골에서 2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물레방아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로 여겨졌다. 작은 키에 마른 몸, 그리고 구부정해 보이는 모습은 어릴 때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주)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황철주'


편하고 신나게 논 어린 시절

물레방아는 그에게 인생의 동력을 제공했다. 아버지가 물레방아로 돌아가는 정미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바로 눈 앞에서 작동하는 기계를 보면서 자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물레방아가 물 대신 발동기로 돌아가면서 전기의 혜택을 맛보았다. 어린 시절에 그가 본 우주는 수차(물레), 굴대, 방아채, 톱니바퀴, 그리고 벨트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그 때는 정말 편하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돌리고, 썰매도 만들어 탈 때가 좋았죠. 팽이는 관솔로 만든 것이 제일 좋습니다. 심을 박을 때 팽이가 쪼개지기 쉬운데, 관솔은 심이 잘 박히거든요.” 관솔을 찾아 숲을 쏘다닌 기억을 되새기며 팽이심을 박는 비법을 은근히 자랑한다.

황철주 사장의 어린 시절을 사진첩으로 비유하면, 두텁고 빛바랜 ‘가난의 표지’ 뒤에 정말 ‘편하고 신나게’ 놀아본 자연의 경험과, 곡식이 가루로 변하는 오묘한 공정을 지켜본 기계의 경험이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제 성공의 비결이라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겁니다. 제가 가진 게 뭐 있습니까? 가난한 시골 출신에 공고 나오고, 대학도 간신히 졸업하고,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별명이 ‘샌님’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공부 잘 하는 것보다 친구 잘 만나는 것이

남보다 잘 난 것도 잘 한 것도 없던 그는 물레방아가 돌리는 가난의 물살에 떠밀려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졸업한 뒤 울산에 있는 작은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친구가 서울서 찾아왔다. 대학에 같이 가자고 그렇게도 권하고 조르던 친구다. 정말 서울서 울산까지 ‘도시락 싸 들고’ 찾아와서 말리는 것이다. 도저히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하자 친구는 “그러면 전문대라도 가라”고 고집을 부렸다.

어렵사리 전문대로 진학한 뒤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방위산업체에서 조용하게 근무하던 황철주 사장에게 또다른 ‘좋은 사람’이 등장했다. 전문대 친구가 찾아와서 “너는 꼭 대학에 가야 된다”며 또 ‘권학문’(勸學文)을 노래하는 것 아닌가. 손사래 치는 황사장에게 친구는 책까지 사다 떠안기면서 대학에 갈 것을 강권했다. 결국 ‘마음 약한’ 황사장은 인하대 전자공학과 편입을 결심했다.

이렇게 학업과 취업을 반복하며 간신히 대학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친구의 꾐(?)에 잘 넘어가는 마음 약한 ‘샌님’이 아니었다. 현대전자에 입사했다가 8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ASM이라는 네덜란드계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그것도 영업 직원으로…. 말 주변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노래나 춤은 오히려 고객을 실망시키는 ‘샌님’이 영업에 도전한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신이었다.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불쌍해 보여서 봐주는 거죠. ㅎㅎㅎ···.” 황사장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영업 노하우를 숨기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출세의 동아줄인 학연, 지연, 혈연 그 어느 것도 보잘 것 없던 그가 다른 사람에게 ‘불쌍하게 보이는’ 전략으로 젊은 나이에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지와 의욕을 갖고 있으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십시오. ‘똑똑하다’는 느낌보다는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십시오. 기회는 모든 사람을 스쳐가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뿐입니다.”


망가뜨려 봐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인은 핵심장비를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하던 바람에 외국인 기술자를 뒷바라지 하는 업무만 하던 그는 ‘이게 아니다’ 싶어 외국인 기술자가 쉬는 틈을 타 일부러 장비에 사소한 고장을 일으켰다. 반도체 공장에 난리가 났는데,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자 그가 보란 듯이 나서 문제를 거뜬히 처리했다. 이 때부터 그는 신뢰를 얻어 장비를 만질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기계는 자주 망가뜨려 봐야 그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라디오나 시계 같은 장치를 워낙 많이 망가뜨려 봤기 때문에 기계를 망가뜨리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인터뷰 하는 동안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겸손을 떨던 황철주 사장은 주제가 ‘기계’로 바뀌자 어느 새 자신만만한 장군처럼 입담 좋게 기계를 망가뜨린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

“지난 1987년이었죠, 아마. 제가 한 반도체공장에서 증착장비를 개량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서 장비에 손을 댔다가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그 장비가 당시 시가로 4억원 정도 했으니, 지금 한 20억원 정도 할 겁니다. 그렇게 비싼 장비를 자기 회사도 아닌 납품회사의 신출내기 영업직원이 망가뜨려 버렸으니….”

당시 공장의 연구원들은 ‘정말 고맙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때 값비싼 장비를 기꺼이 빌려 주었다. 이 때의 경험이 황사장이 주성엔지니어링을 세계적인 반도체장비회사로 발전시키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나는 지금도 신제품을 2개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하나는 개발용이고 다른 하나는 혁신용입니다. 망가뜨려 봐야 혁신을 할 수 있습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7년 동안 살다시피 하면서 삼성전자 직원처럼 근무했다. 고객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면서 현장의 경험을 착실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바꾸어 나갔다. 현재 주성엔지니어링이 보유하고 있는 570건 가량의 특허 가운데 그가 관여하지 않은 게 거의 없을 정도.
 

황철주 사장은 최근 사재 50억원을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하나라도 확실하게' 할 줄 아는 젊은 인재를 찾아 장학금을 주는 기쁨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을 즐겨 부른다.


물레방앗간에서 만든 첨단 반도체장비

그 결과 지난 93년 설립한 주성엔지니어링은 1999년 사상 최고의 액면가(64배)로 코스닥에 등록하고, 황철주 사장은 포브스코리아가 최근 선정한 국내 벤처 부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세계 반도체 및 LCD용 장비 시장에서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오는 2009년까지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업체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물레방앗간에서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를 만들어낸 황철주 사장. 아버지는 방앗간에서 쌀을 빻았지만, 아들은 가업을 이어 ‘산업의 쌀’(반도체)을 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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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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