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롭해즈 200일간의 작전기록

최초로 해외 파병된 국산지능로봇

자이툰 부대와 함께 이라크 아르빌에 파견됐던 국산로봇 롭해즈의 귀국신고식이 지난 3월 9일 열렸다. 지난해 8월 자이툰 부대를 따라 나선지 꼭 217일만의 일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유진로보틱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공동 개발한 롭해즈는 사람을 대신해 폭발물 탐지와 제거 등 위험임무를 수행하는 ‘위험처리로봇’.

평균기온 40℃를 넘나드는 열사의 땅 이라크에서 롭해즈는 차량 폭발물 탐지와 야간정찰임무 등 실전에 가까운 테스트를 받았다. 당초 예정된 6개월의 임대계약을 끝낸 롭해즈는 귀국길에 수많은 자료를 안고 돌아왔다. KIST가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처음 공개한 활동 당시 실험자료와 폭발물처리팀(EOD)의 관리일지를 토대로 롭해즈의 활약을 재구성했다.

2004년 8월 23일 10시 아침에 맑던 날씨가 정오에 가까워지면서 모래폭풍과 함께 사나워졌다. 한여름을 관통하고 있는 이곳 쿠웨이트 캠프 버지니아에는 한낮 평균 57℃를 넘어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8월 5일 KIST에서 롭해즈 2대를 인수해 이곳으로 공수해온지 2주째. 12여단 소속 폭발물처리전담부대인 우리팀은 주둔한 천막에서 롭해즈의 작동상태를 점검했다.

작동 시간 30분. 롭해즈의 전진과 후진 상태는 모두 양호했다. 2단 변속되는 롭해즈는 별무리 없이 시속 10km까지 속도를 냈다.

30분 뒤 배터리를 다시 충전해야 했다. 한번 충전으로 1시간30분까지 움직였던 원본 모델과 달리 자이툰 롭해즈는 1시간 정도면 배터리 수명이 다한다. 파병을 위해 새로운 장치들을 설치하면서 그만큼 전원이 빨리 소모됐다.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사막 기후에 적합한 수준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원격조종장치의 모든 계기판이 정상숫자를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작동을 멈췄다.
 

이라크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이툰 사단과 롭해즈는 먼저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과 뜨거운 열기에 맞서 싸워야 했다. 현지 적응을 위해 몇 주간 머문 쿠웨이트 미군 기지에서 롭해즈가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


2004년 9월 1일 14시 늦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기온은 좀 떨어졌지만 모래폭풍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파병 1개월째를 눈앞에 두고 롭해즈 상태를 확인했다.

며칠 뒤면 이곳 캠프 버지니아를 떠나 부대 주둔 예정지인 아르빌로 이동하는 대규모 군수작전(RSO)이 시작된다. 이동로 곳곳에 도사린 위험과 맞서 싸우며 목표한 곳까지 안전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힘들고 고된 여정이다. 물론 롭해즈에게는 자신의 기량을 처음으로 발휘할 기회이기도 하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사막의 작은 먼지는 불과 며칠새 롭해즈를 뿌옇게 뒤덮었다. 롭해즈 전원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지자 불안했던 마음은 깨끗이 가셨다.

롭해즈는 이곳에 오기 전 사막 작전에 꼭 필요한 두 가지 장치를 달았다. 그 중 하나가 차체로 들어온 먼지를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장치다.
서울에 있는 KIST 김문상·강성철 박사팀은 롭해즈를 떠나보내기 전 몇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차체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미세 먼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었다. 먼지 차단을 위한 어떤 노력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팀은 차라리 일단 들어온 먼지에 대해서는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내부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다시 밖으로 방출하는 방법을 찾았다. 가파른 언덕과 높은 장애물 돌파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더블트랙은 이런 연구팀의 고민을 한번에 해결했다.

한낮 평균 60℃가 넘어서는 사막 작전을 위해 롭해즈에게 필요한 방패막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냉각 장치였다. 그러나 롭해즈는 아직 군수품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상태다. 군 기준에 따르면 군용로봇은 100℃에서도 동작해야 한다. 하지만 롭해즈는 아직 60℃까지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2004년 10월 20일 14시 날씨가 화창하다. 이곳 아르빌은 중동지역 치고는 상대적으로 덜 더워 생활에 큰 지장은 없는 정도다. 낮 최고 기온은 36℃에서 40℃를 오르내려 우리나라 여름날씨보다는 조금 더 더운 편이지만 일교차가 커서 밤과 새벽에는 제법 추위가 느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친 흙먼지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상당히 잦아들었다. 지금까지 ‘실전’을 대비해온 롭해즈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폈다.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먼저 자동차 아래에 설치된 사제폭발물을 찾는 훈련에 들어갔다. 중형 병력수송차인 닷지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면서 조종간으로 롭해즈를 모의 폭발물이 설치된 트럭 아래로 들여보냈다. 무릎 높이 정도인 롭해즈는 1.5t 군용 트럭 아래를 천천히 훑으며 차에 설치된 모의폭탄을 찾기 시작했다. 시속 4km로 차량 사이와 직경 1m가 채 안되는 송수관 속을 자유자재로 누볐다.

하지만 물포총을 이용해 폭발물을 제거하는 훈련은 하지 못했다. 물포총은 강한 압력으로 물을 발사해 폭발물 회로를 때려 부수는 장치로 롭해즈 자이툰 모델에 처음 설치됐다. 그런데 워낙 고압이다 보니 발사소리가 거의 총성에 가깝게 들린다. 총성 하나에도 민감한 아르빌의 정치 여건상 ‘발포실험’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폭발물 탐지와 처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거 훈련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편 거의 실전과 같은 상황에서 운영된 탓인지 이날 롭해즈는 약간의 문제를 일으켰다. 모뎀 배터리가 너무 빨리 소모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롭해즈는 무선으로 원격 조정된다. 운영자들은 최대 1km거리에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조정간을 움직여 롭해즈의 일거수일투족을 결정한다. 데이터 수집은 물론 운영자의 명령도 모두 무선을 통해 내린다. 이를 위해 롭해즈는 2.4GHz 주파수를 사용하는 데이터모뎀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국에 있는 원인을 찾아달라며 개발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대형 트레일러 사이를 조심스레 비집고 들어가 모의 사제폭탄을 찾고 있는 롭해즈. 최고 시속 10km로 달리며 1km 떨어진 지역을 수색할 수 있다.


2004년 10월 30일 14시 10월 들어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보다 기온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이곳 아르빌의 기온은 여전히 높다. 45℃. 한국에서는 한여름 기온을 훨씬 웃도는 온도다.

오늘 롭해즈에게 정찰임무가 하달됐다. 일명 가디언이란 정찰작전에 투입된 것이다. 롭해즈는 이번 작전에서 인근 마을의 건물에 들어가 내부 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았다. 목표한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롭해즈를 투입했다. 롭해즈는 시속 4km 속도로 조심스럽게 목표건물에 다가갔다.

10, 20, 30,…, 50m. 롭해즈가 점점 멀어지면서 갑자기 화면이 떨리기 시작했다. 화면이 떨리는 것을 막는 기능이 카메라에 있지만 오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자갈과 비포장 도로 위를 움직이는 로봇을 조종하기 위해 화면 떨림 방지장치는 꼭 필요하다. 작전 투입 후 약 1시간이 흐르자 배터리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싣고 있는 장비가 많아 배터리도 빨리 닳았다.

2004년 11월 1일 14시 가을로 들어와 기온도, 날씨도 큰 변화가 없다. 오늘 롭해즈는 도로 옆에 설치된 모의 사제폭발물 탐색에 나섰다. 2003년 이라크전 개전 이후 도로에 설치된 사제폭발물은 다국적군에게 큰 손실을 입혀왔다.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로 이동하는 파발마 작전 중에도 수차례 사제폭발물의 위협이 있었다.

폭발물처리팀의 트럭에서 내린 롭해즈는 도로 주변을 살폈다. 곧이어 모래와 자갈로 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낮은 높이의 언덕을 서서히 오르던 롭해즈가 길이 30cm, 경사 40도인 장애물을 만나자 갑자기 허둥대기 시작한다. 안간힘을 쓰며 오르는가 싶다가도 다시 뒤로 미끄러지기를 몇차례. 궤도로 된 캐터필러는 아스팔트 도로와 달리 모래지형에선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2004년 11월 24일 14시 겨울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이곳 날씨도 10℃ 이상 떨어졌다. 오랜만에 부대 안에서 실시된 장비 점검. 롭해즈도 정비에 들어갔다. 막사 주변에서 롭해즈를 시험 주행했다. 그러던 중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던 롭해즈의 화면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운영자로부터 약 50m 떨어진 거리. 물론 자갈밭을 지나는 상황도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방해전파 때문이었다. 롭해즈가 사용하는 2.4GHz는 국제적인 합의를 거쳐 휴대전화나 이동통신장치용으로 이미 배정된 주파수 영역이었다. 방해전파를 쏴 상대방의 전자장비를 ‘멍텅구리’로 만드는 현대 전자전에서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2004년 12월 20일 22시 겨울이 돼서야 한국의 여름 날씨를 만끽하게 됐다. 성탄절을 닷새 앞두고는 있지만 이라크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곳 아르빌도 여전히 침묵과 긴장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미 파병 기간의 3분의 2가 지났다.

오늘은 롭해즈의 야간정찰 능력을 시험했다. 방위산업체인 삼성탈레스가 개발한 야간투시카메라가 처음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카메라를 켜니 컴컴한 어둠 속에 서있는 막사가 모니터 화면에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물체에서 나온 약한 빛을 증폭시켜 보여주는 이 장치는 최대 1~2km 떨어져있는 물체까지도 식별해낸다. 롭해즈가 야간정찰임무를 수행하려면 꼭 필요한 장비인 셈이다.

그동안 수차례 시험 운용을 통해 롭해즈는 안정을 찾아갔다. 막사 주변과 자갈길을 지나면서도 큰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로부터 공수된 새 배터리 덕분에 배터리 충전시간도 크게 줄었다.
 

밤에 펼쳐진 모의 정찰작전에서 조종장치 화면을 보며 롭해즈를 조종하고 있는 폭발물처리팀 부사관. 관내 방산업체인 삼성탈레스가 개발한 야간투시경은 야간 작전에 꼭 필요한 장비다.


2005년 1월 18일 22시 해가 바뀌었다. 한국이면 한겨울이겠지만 이곳 아르빌은 23℃을 넘나드는 봄날씨다. 배터리를 충전하다 전원을 잘못 연결해 롭해즈에 들어있는 영상보드가 고장나고 말았다. 다행히 롭해즈는 정상적으로 동작했지만 모니터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파병에서 가장 큰 문제에 봉착했다.

총선을 앞둔 이라크의 정세는 더욱 혼미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재건목적으로 파견된 자이툰 부대마저도 안전 때문에 외부 활동을 더욱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시제품으로 처녀 파병된 롭해즈의 활동 역시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다.

롭해즈의 파병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롭해즈는 제한적이지만 야간정찰과 모의 폭발물 탐색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롭해즈 파병이 남긴 것

이라크 현지 운영에서 롭해즈가 받은 평가는 일단 ‘합격점’. 평균 40℃를 넘나드는 혹독한 기온과 먼지바람을 이겨내며 어렵게 얻은 결과다. 자이툰 사단 폭발물처리팀(EOD) 김정환 상사는 “기후와 지형 조건상 몇가지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롭해즈 운영에 큰 무리는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롭해즈 개발을 이끈 KIST 강성철 박사는 이번 파병이 ‘성공반 아쉬움반’이라고 토로했다. 원래부터 계획됐던 폭발물 처리 훈련이 현지의 민감한 상황으로 취소된 것. 가장 중요한 실전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번 파병에는 롭해즈 외에도 미국 리모텍사가 개발한 안드로스도 포함됐다. 안드로스는 이미 수년전 군과 경찰에서 사용하고 있는 상용화된 정식 군수품. 이에 반해 롭해즈는 아직 시제품이라는 차이가 있다. 파병 기간 동안 롭해즈는 자이툰 부대 내 육군 EOD에, 안드로스는 공군 EOD에 각각 배치됐다.

현재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에서는 롭해즈 파병 결과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다. 강 박사는 “분석 결과 소음과 화면 떨림, 배터리 수명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를 군수품 규격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해전파에 취약하다는 점과 통신거리가 너무 짧다는 것도 과제로 남았다. 연구팀은 차세대 롭해즈의 전원으로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 중이다. 아직 국방부는 롭해즈의 추가 파병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연구팀은 파병 결과를 정밀 분석해 문제점을 개선한 뒤 방위산업체와 공동으로 정식 군수용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200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 진로 추천

  • 전기공학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