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탤런트 이덕화씨의 새로운 모습이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됐다. 제5공화국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촬영하는데 ‘과감하게’ 가발을 벗고 전두환 대통령 역할을 한 것.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자라고 빠진다. 과학자들이 이 메커니즘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지는 불과 십수년에 불과하다. 머리카락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자라고 빠질까. 또 대머리, 흰머리, 곱슬머리, 금발머리 등 사람마다 머리카락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이유는 뭘까. 머리카락에 관한 궁금증들이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알아보자.
두피 밖에서도 자란다
머리카락의 성장 과정을 연구하려면 두피 밖에서도 머리카락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지난 2월 프랑스의 세계적인 화장품기업 로레알은 15년간의 연구 끝에 시험관에서 머리카락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머리카락은 ‘모간’과 ‘모낭’으로 구성돼 있다. 머리카락 중 만질 수 있는 부분이 모간이며, 모낭은 모간을 만들어내는 부분으로 두피에서 약 4mm 깊이에 박혀있다.
로레알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성형외과 의사에게서 사람의 두피조직을 확보해 모낭세포를 조금 떼어냈다. 이를 시험관에 넣고 당과 비타민 같은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배양하는데 성공했다. 시험관 속 모낭에서 자란 머리카락의 수명은 적게는 15일, 최대 45일을 기록했다.
로레알 연구소는 시험관 모낭배양 시스템을 이용해 특정 성분이 머리카락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둘러싸서 보호하는 큐티클층은 수많은 각질세포가 기왓장처럼 배열돼 있는 구조다. 각질세포의 주성분은 세라마이드. 머릿결의 윤기나 촉감은 바로 이 세라마이드가 결정한다. 즉 세라마이드가 손상되면 머릿결이 나빠지는 것.
연구소는 SP94라는 물질을 개발해 시험관에서 자라고 있는 모낭에 공급해봤다. 그 결과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SP94가 세라마이드로 변형되는 것을 확인했다. SP94가 손상된 머릿결을 회복시키고 머리카락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 현재 이 물질은 특허를 받아 약국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연구소는 또한 아프리카인의 머리카락도 시험관에 배양해봤다. 그 결과 머리카락의 곱슬곱슬한 특성이 모낭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유전적으로 입력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제레미 네이선스 박사팀은 ‘프리즐드6’이라는 유전자가 곱슬머리와 관계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쥐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했더니 머리와 뒷발에서 털이 소용돌이치는 모양으로 자라났다는 것. 네이선스 박사는 “사람도 프리즐드6 유전자를 갖고 있다”며 “이 유전자가 없으면 머리카락이 소용돌이 모양의 곱슬머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리카락의 일생
머리카락의 생애는 생장, 퇴행, 탈모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식물이 줄기 끝부분에서 자라는 것과 달리 머리카락은 뿌리 부분, 즉 모낭 가장 안쪽의 모구에서 자란다. 모구에는 케라티노사이트와 멜라노사이트의 두 가지 세포가 30:1 비율로 들어있다. 머리카락의 생장에 관여하는 세포는 케라티노사이트.
모낭이 생장단계일 때 케라티노사이트는 머리카락의 주성분인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케라티노사이트가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생장엔진’ 역할을 하는 셈. 두피에 있는 모낭은 자그마치 10만개나 된다.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케라티노사이트가 만들어내는 머리카락 길이는 놀랍게도 한 달에 1.3km, 1년이면 16km에 달한다.
생장단계의 머리카락은 하루에 0.3~0.5mm씩 자란다. 생장기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평균 3년 정도.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려면 모구에 들어있는 케라티노사이트가 매우 빨리 증식해야 한다. 실제로 인체 세포 중 증식이 가장 빠르다. 항암치료 때 머리카락이 빠지는 부작용이 먼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 항암치료제에는 세포 증식을 막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로 인해 분열 속도가 빠른 모낭세포가 큰 타격을 받는 것이다.
퇴행단계로 들어서면 케라티노사이트가 점차 죽으면서 더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 퇴행단계는 약 3주간 지속되며 그 동안 모낭 전체가 두피 표면을 향해 조금씩 상승한다. 탈모단계에 이르면 상승하던 모낭이 두피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머리카락이 자연적으로 빠진다. 약 3개월간 이 단계가 지속되며,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머리를 감거나 빗질을 할 때 빠진다.
탈모단계 후 2~5개월이 지나면 새로운 모낭이 다시 생장단계로 접어든다. 이때 모낭이 어떤 자극을 받아 다시 생장, 퇴행, 탈모단계의 성장주기를 반복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가을에 머리 많이 빠지는 이유
모낭은 자신만의 고유한 성장주기를 갖고 있다. 즉 다른 모낭의 성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란다.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나거나 한꺼번에 빠지지 않고 전체 밀도가 항상 비슷하게 유지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모낭 전체의 85~90%는 생장단계, 10~15%는 탈모단계에 있다. 탈모단계인 모낭이 많을수록 대머리가 되는 것.
모낭의 성장 단계별 머리카락 비율은 유전자, 계절, 성(sex), 나이, 두피 부위, 건강상태 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여름에 탈모단계로 접어드는 머리카락이 가장 많아진다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강한 햇빛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래서 탈모단계 직후인 가을에 머리카락이 가장 많이 빠진다고 한다.
탈모의 진행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는 탈모증은 유전자, 호르몬, 인종, 심리상태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대머리라면 아들이 대머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어떤 유전적 메커니즘이 비정상적인 탈모를 일으키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탈모와 관련 있는 호르몬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다. 테스토스테론 중 일부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의 형태로 바뀌면서 탈모가 일어난다는 것.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테스토스테론이 적으므로 하루에 생기는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1/6 정도에 불과하다. 남성보다 여성이 대머리가 적은 이유를 이 사실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모낭이 탈모단계로 진행하는 것을 방해한다. 여성이 출산 후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임신 중에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됐다가 출산 후 호르몬이 다시 정상적인 양으로 되돌아와 많은 모낭들이 동시에 탈모단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아시아인은 코카서스인이나 아프리카인보다 탈모증이 덜 생긴다고 한다. 유전자 외에도 음식이나 환경 같은 외부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되고 있다.
최근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가 탈모증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왔다. 지난해 미국 록펠러대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팀은 피부 줄기세포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보통 쥐의 피부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했다. 이를 시험관에서 배양한 다음 털이 없는 혈통의 쥐에게 이식했다. 그 결과 털이 없는 쥐에서 보통 쥐와 비슷한 정도로 털이 났다고.
로레알 연구소는 모낭에서 줄기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여기서 모낭 줄기세포를 추출해 이식한 다음 케라티노사이트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면 대머리 치료가 가능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이 배우자감으로 가장 기피하는 외모 조건 중 하나가 대머리라는데,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는 이마를 걱정하고 있는 남성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순식간에 백발 될 일 없다
모구에 들어있는 멜라노사이트는 멜라닌이라는 색소를 합성한다. 멜라닌은 케라티노사이트로 전달된다. 멜라닌을 함유한 채 자라 머리카락이 고유한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멜라닌은 머리카락을 둘러싸고 있는 큐티클층 바로 안쪽의 피질세포에 들어있다.
멜라닌은 외멜라닌과 페오멜라닌의 두 종류가 있다. 새까만 머리나 금발머리 등 머리카락의 다양한 색은 외멜라닌과 페오멜라닌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인처럼 검은 머리카락에는 외멜라닌이, 아일랜드인처럼 붉은 머리카락에는 페오멜라닌이 많이 들어있다.
멜라노사이트가 멜라닌 합성을 중단하면 머리카락은 흰색으로 자란다. 노화나 스트레스, 질병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흰머리가 생길 때는 처음엔 한두개 보이다가 차츰 많아진다. 순식간에 백발이 되지 않고 점차적으로 흰머리가 생기는 것은 모낭이 다른 모낭과 독립적인 성장주기를 갖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샐’ 일은 없다는 얘기.
지난해 12월 미국 하버드대 나시무라 에미 교수팀은 백발이 되는데 Bc12와 Mitf라는 두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이들 유전자가 멜라노사이트로 분화하는 줄기세포의 생존을 돕는다는 것. 연구팀이 쥐에서 Bc12와 Mitf 유전자를 제거했더니 흰 털이 났다. 또한 사람 모낭에서 멜라노사이트 줄기세포의 양을 조사한 결과 40~60대는 20``~30대의 50%, 70대 이상은 10%에 불과했다고.
최근 로레알 연구소는 멜라노사이트 내부에 있는 다이하이드로옥시인돌이라는 물질이 멜라닌을 연속적으로 생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물질을 합성해 모발용 약품을 만들어 흰머리에 처리하면 원래 색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연구소는 “현재 이 방법은 외멜라닌의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페오멜라닌이 많은 사람도 흰머리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