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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1백년 전설 돈스코이호

독자적 탐사기술로 수심 4백m 침몰선체 발견

“더이상은 항해가 불가능하다. 한명의 병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일단 울릉도에 상륙한다. 그리고 이 배는 …. 절대로 일본에 빼앗길 수 없으니 침몰시키기로 한다.”

함장 레베데프 대령은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1905년 5월 29일 아침 6시 46분. 함장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해군중령 블로클린과 몇명의 청년장교들은 군함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시켰다.

그로부터 약 98년이 지난 2003년 5월 20일. 한국해양연구원 유해수 박사가 이끄는 탐사팀은 울릉도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백m 해저에서 침몰된 선체를 발견했다. 조사결과 이 선체는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제작된 돈스코이호의 모형과 일치했다.

길이 90.4m, 폭 15.8m, 높이 7m의 돈스코이호는 약 3천3백마일을 항해할 수 있으며 5백명이 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는 규모였다. 울릉도에서 발견된 이 침몰선은 정말 돈스코이호일까.

해저로 사라진 발틱함대 명예의 전사


각종 탐사장비를 장착한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선 온누 리호.


1904년 2월 9일 새벽 일본은 중국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그리고 동시에 인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군함을 기습해 격침시켰다. 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주도권 싸움인 러·일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1904년 10월 일본원정의 임무를 띠고 출항했다. 다음해 5월 27일 오랜 항해로 인해 최악의 상태였던 발틱함대는 동해상에서 일본함대와 맞닥뜨렸다. 최상의 전투력을 갖춘 일본함대에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전세는 일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자국 군함 승무원 2백70명을 구한 군함이 있었다. 바로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러시아를 해방시킨 전쟁영웅의 이름을 딴 돈스코이호. 이 군함에 탄 병사들은 자국함대 사령관이 항복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전해 명예를 지켰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함 12척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3척을 침몰시키고 1척을 대파하는 놀랄만한 전과를 올렸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얻은 전과는 돈스코이호 한대가 올린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고군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틱함대는 일본함대에게 패전하고 말았다. 발틱함대 소속 전함 38척 중 19척이 침몰해 수천명의 병사가 전사하거나 일본군의 포로가 됐다. 돈스코이호도 더이상 항해가 곤란할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일본 함대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살아남은 돈스코이호의 병사들은 울릉도 앞바다에 상륙했다. 그리고 돈스코이호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침몰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수심 약 2백m 되는 곳에서 돈스코이호 선체의 배수판을 열고 물을 채웠다. 거대한 군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돈스코이호의 함장 레베데프 대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일본 현지에서 곧 사망했다. 그후 러시아와 일본은 1905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선에 의해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반도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

러시아 해군 역사상 가장 명예로운 전과를 올린 돈스코이호와 그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역사박물관에는 이 군함의 대형 모형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시 병사의 후손들이 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초음파 원리로 해저 지형도 제작

러·일전쟁의 기록에 따르면 돈스코이호는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했다. 이를 근거로 한국해양연구원에서는 1999년 10월부터 돈스코이호를 찾아내기 위한 탐사를 시작했다.

깊은 바닷속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탐사할 구역부터 설정해야 한다. 먼저 연구원내 각 분야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하고 열띤 토의를 거쳐 탐사할 구역과 방법을 결정했다. 러·일전쟁의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좁은 범위의 탐사구역이 1차로 결정됐다. 다음에는 해류의 영향 등을 고려해 좀더 넓은 범위의 2차 탐사구역을 확정했다. 이는 타이타닉호가 침몰됐던 곳으로부터 약 3km 벗어난 지점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현장을 직접 탐사하기 전에 관측장비들의 정확도를 검증하기 위해 관측자료의 오차를 보정했다.

다음은 탐사할 전체 해역의 개략적인 지형을 3차원으로 확인할 차례다.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선 온누리호에 장착된 다중빔 탐사장비를 이용해 해저면 영상조사를 수행했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약 1만m 깊이까지 탐사가 가능하다. 수백개의 음파를 동시에 발사하면 수백m 해저면에서 반사된다. 이렇게 돌아오는 반사파를 받아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지형도를 만드는 것이다. 인체내부를 보는 초음파 진단기와 같은 원리다.

또한 탐사할 해역의 해류 속도나 방향과 같은 기초해양환경을 확인해야 한다. 탐사팀은 동시에 여러대의 해류계를 각각 다른 깊이에 띄워 수개월 동안 해류의 속도와 방향, 크기 등을 측정했다. 울릉도 동쪽 해역은 조석차이가 30cm 내외로 작고 해류의 속도와 방향이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해류의 최대 속도는 초당 약 68cm다. 그러나 8백m 심해에서의 해류속도는 1-2cm로 매우 느리다. 해류측정장비(ADCP)를 이용하면 수심 약 3백m 해류의 방향과 속도까지도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

또한 수중음파탐지기로 침몰선이 퇴적물에 얼마나 묻혀있는가를 확인했다. 음속측정기를 이용해 수심별로 해수의 변화에 따라 수중음파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측정했다.

침몰선보다 작고 철 함유한 물체 선정

이렇게 해서 탐사팀은 개략적인 지형도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지형도를 기초로 해 다시 세부적인 탐사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좀더 정밀한 3차원 해저면 영상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탐사팀은 3백50t급 연구선 이어도호에 장착된 다중빔 음향측심기(Multibeam Echo Sounder)를 사용했다. 1백개 이상의 단일빔을 동시에 쏘는 이 장비를 이용하면 수심 약 10-1천2백m의 3차원 해저면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그림).
 

(그림) 단일빔과 다중빔 음향측심기 탐사 방법^1백개 이상의 단일빔을 동시에 쏘는 다중빔 탐사장비는 한번에 넓은 지역을 조사한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해저 1천2백m의 영상까지 볼 수 있다.
 

탐사 도중 이상 물체가 발견되면 그 크기와 형체를 판별했다. 그리고 침몰선과 크기가 같거나 작은 형태의 이상 물체를 선별했다. 1912년 4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면서 두동강이 났다는 점을 감안해 돈스코이호도 침몰할 때 해저 암반과의 충돌로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침몰선이 실제 크기보다 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 속에서는 어떤 것이 침몰선인지 정확히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탐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력계(Magnetometer)를 이용했다. 수면 밑에 강한 자성을 띠고 있는 물체가 있으면 자력계에서 신호가 감지된다. 탐사팀은 침몰선이 대부분 철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별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철 성분을 함유하고 침몰선 이하 크기를 가진 이상 물체로 탐사 대상이 좁혀졌다.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 넓은 해저면을 높은 해상도로 영상화시키는 해저면 영상탐사기(Side Scan Sonar)와 심해전용 다중빔을 이용해 침몰선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이상 물체 2-3개를 선정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거쳐 얻어진 자료를 상호 비교하고 검증한 탐사팀은 이상 물체를 심해용 디지털카메라, 무인잠수정, 유인잠수정으로 집중 조사했다.

심해용 디지털카메라는 높은 수압에도 견딜 수 있는 쇠로 만든 원통에 넣어 촬영한다. 유인잠수정은 사람이 탑승하기 때문에 비교적 위험이 적은 곳을 조사한다. 또 산소가 공급될 수 있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조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사람이 접근하기 곤란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해역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무인잠수정이 적합하다. 연구선이나 무인잠수정, 유인잠수정의 위치는 인공위성 자동항법시스템(DGPS)과 해저 위치추적시스템을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

촛대바위 동쪽 해저 절벽에서 발견


이상 물체들을 직접 탐사하는 유인잠수정.


탐사팀은 돈스코이호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상 물체를 모두 비디오로 촬영하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암반으로 확인됐다. 기대가 무너졌다. 탐사팀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실패 요인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탐사팀은 울릉도가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울릉도의 해저 지형은 일부 평탄하다가 경사가 31-50。나 되는 급격한 절벽이 나타난다. 최대수심은 약 2천2백m에 이른다. 2백m의 낮은 해저에는 모래나 자갈이 주로 분포하고 급경사지역은 퇴적물이 약간 덮인 상태의 화산암반으로 이뤄져 있다.

이렇게 암석으로 이뤄진 지대에서는 암반과 침몰선의 구별이 매우 어렵다. 특히 화산암에는 철 성분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자력계로 측정한 자기분포도만으로는 암반과 침몰선을 잘 구별할 수 없다.

이상 물체의 크기에 대한 정보는 수중음파탐사로 얻는다. 그런데 반사도가 비슷하다면 수중음파탐사로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암반이 침몰선과 비슷한 정도로 음파를 반사시키기 때문에 역시 실패를 거듭했던 것이다.

처음에 탐사팀은 침몰선의 실제 크기보다 큰 이상 물체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동안 울릉도 해저 지형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이상 물체를 선정했던 것이다. 탐사팀은 긴 암반과 침몰선이 나란히 있을 경우를 예상했다. 그리고 큰 이상 물체들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울릉도 저동 촛대바위 동쪽 방향 2km 해역의 약 4백m 수심. 이곳에는 50。 정도의 경사가 진 절벽이 있다. 주변 해역은 주로 암반으로 이뤄져 있다. 이 절벽 중턱에서 탐사팀은 드디어 뻘질 퇴적물로 약간 덮여 있는 침몰선을 발견했다. 침몰선의 뱃머리는 계곡 쪽을 향해 놓여 있다.

침몰선에 장착돼 있는 함포와 계곡 쪽에 널려 있는 잔해들이 여객선이 아닌 군함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근방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군함은 침몰한 기록이 없다. 따라서 탐사팀은 이 침몰선이 돈스코이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탐사 중 녹화한 사진기록이 사실기록을 근거로 제작된 돈스코이호의 모형과 일치한다.

제2의 타이타닉 돈스코이호

경사가 급한 심해 계곡 중턱에서 침몰선을 발견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첫 사례다. 1985년 9월 깊지만 평탄한 지형에서 발견됐던 타이타닉호의 탐사에 비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타이타닉호의 경우 비교적 정확한 침몰좌표를 알고 있었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와 프랑스 국립해양연구소가 기술협력을 했고 미해군에서 유인잠수정을 지원하는 등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투자한 결과였다.

반면 돈스코이호의 경우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침몰 위치에 대한 기록이 불확실했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1백년전 상황에 대한 회고담에 의존해 탐사를 시작해야 했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탐사에 성공했던 것은 해양선진국의 탐사방법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 지형에 맞게 전환했기 때문이다. 또 탐사요원의 분석력과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일전쟁의 전투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침몰선의 항로를 파악한 것도 성공의 열쇠였다.

침몰선은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그 안에는 당시 쓰였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이 침몰선을 인양하면 육상박물관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인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검토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끌어올리려면 침몰선이 적절한 강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끌어올리는 도중에 파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체가 부식 또는 손상된 정도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바닷속에서는 온도, 산소와 염분의 농도, 해류의 변화, 유기생물체와 같은 여러가지 요인이 선체의 부식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런 환경 요인들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침몰돼 있던 선체에서는 대단히 복잡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계산하면 1백년 된 침몰선은 초기에 비해 2/5 정도로 강도가 감소한다고 한다.

침몰선의 강도를 정확히 예측해야함은 물론 침몰선 주변에 널려 있는 어망, 로프, 각종 구조물과 같은 위험요소도 제거해야 한다. 또한 침몰선 둘레와 주변지형을 좀더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기술검토 결과 인양이 어렵다고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수중박물관을 만들어 유인잠수정을 통해 관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러시아 발틱함대 명예의 전사 돈스코이호와 관련된 수많은 전쟁 기록과 이야기들을 소재로 제2의 타이타닉과 같은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된다.

200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유해수 해저유물자원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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