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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한양대 역사철학부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과학철학센터 연구원, 런던정경대 조고수 등을 지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인문학으로 과학 읽기' 등을 펴냈다.


“철학을 잘 해야 행복한 과학자가 됩니다.”

한양대 이상욱(36) 교수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뚱~맞죠?’라고 말하는 한 인기 개그맨이 떠올랐다. 철학을 잘 해야 행복해 진다니? 연구 잘 하고 돈 잘 벌어야 행복하지 않을까.

이 교수는 2002년부터 한양대에서 ‘과학철학’강의를 시작해 화제가 됐다. 이공계 대학생에게는 무척 낯선 철학을, 그것도 필수 과목으로 가르쳤다. 이 강의는 현재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 모두에게 확대됐다. 주제도 역사와 사회학 등 전반적인 인문학으로 바라본 과학이다. 그는 이것을 ‘넓은 의미의 과학철학’이라고 부른다.

이 교수가 처음부터 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물리 공부를 시작했을 때 실패를 거듭하는 실험에 끈덕지게 매달리고 세세한 것들을 살펴야 하는 물리학자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는 학창시절 내내 이어진 인문학적 호기심을 떠올렸다. 대학에 다닐 때도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대학원에서도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대학원) 강의를 한 학기에 한 과목씩은 들었다.

‘물리를 철학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결론지은 그는 결국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다소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독창성을 강조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한국 과학자들이 만족도가 매우 낮다고 하잖아요. 보수와 사회적 대우가 가장 큰 문제지만 과학에 대한 가치관이 부족한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학이 탐구하는 진리가 과연 무엇이냐, 현대사회에서 과학자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죠. 영국에서는 대학 교수와 대학원생이 그런 문제를 함께 고민합니다.”

그는 이처럼 넓은 시각으로 과학을 보는 능력이 현실적으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명공학, 환경, 원자력 등 연구과정에서 남을 설득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설득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저지른 ‘멍청한짓’으로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예로 들었다. 유럽에서 환경단체가 GMO의 위험성을 지적할 때 ‘GMO에 이런 저런 위험이 있지만 실제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식으로 접근을 해야 했단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했으니 오히려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비전문가가 자신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말을 간섭으로 여기죠.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비는 대부분 국가에서 나옵니다. 과학만 합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인문계라고 예외랴. 인문학자, 특히 경제학자들은 과학을 생산력, 즉 돈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은 돈을 들인 만큼 나오는 생산공장도 아니고 규모의 경제가 통하는 곳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특수성을 이해하면 과학에 대해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과학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과학은 필요하다. 환경주의자 중에는 과학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성경처럼 통하는 책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다. 환경주의자들은 이 책을 내밀며 “봐라, 농약 때문에 개구리와 새가 죽지 않았느냐”고 한다. 심지어 “과학이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며 “카슨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환경 문제를 조사했다”고 강조했다.

강의가 인기도 많겠다고 했더니 이 교수는 손을 저었다. 강의 평가표를 봤더니 20%는 만족, 20%는 불만족, 나머지 60%는 보통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과학자의 길을 고민하는 3,4학년이 들어야 가치를 아는데 이공계 교수들이 3,4학년에 교양과목 듣는 것을 싫어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나중에라도 다시 책을 읽고 “아, 그랬구나”하고 깨닫기를 기대한단다.

“과학철학은 정말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과학의 토대 위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맘껏 발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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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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