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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이해 지름길, 침팬지게놈프로젝트

게놈 정보 99% 동일해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인간의 유전정보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생물의 게놈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연구 대상은‘침팬지’의 게놈이다. 침팬지의 게놈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살펴보자.

 

인간 이해 지름길, 침팬지게놈프로젝트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해독해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 진단,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데 있다. 그런데 인간게놈연구 국제컨소시엄의 리더인 프란시스 콜린스를 비롯한 전세계 게놈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간게놈의 완벽한 이해와 활용을 위해서는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의 게놈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대표주자로 최근 관심이 집중된 동물이 바로 인간과 같은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다.


인간게놈의 살아 있는 화석

침팬지는 지구에 살고 있는 1백50만종 이상의 생물 가운데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생물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두종류의 침팬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침팬지이고, 다른 하나는 피그미 침팬지로 보노보가 여기에 속한다. 사실 보노보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침팬지보다 직립보행이 더 자연스럽고, 생식적인 본능뿐만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성행위를 하는 등 형태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인간과 더욱 유사한 점이 많다.

겉모습부터 비슷한 인간과 침팬지가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지는 과학자나 비과학자나 할 것 없이 모두 관심을 가질만한 흥미로운 주제다. 화석 증거나 몇몇 유전자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내용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가 약 5-7백만년 전 갈라졌고, 침팬지가 약 2백50만년 전에 두 종류로 분리됐다.

게놈 과학기술의 발달은 지금까지의 접근 방법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게놈정보를 알아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수십억년 동안 자신의 유전자를 적절하게 재구성하거나 또는 새로운 유전자를 획득함으로써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 왔다. 이런 흔적들은 그들의 게놈 속에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게놈정보를 알아낸 후, 이를 인간의 게놈과 체계적으로 비교해 그 정보를 활용하는 연구가 매우 효과적인 인간게놈연구방법이 된다. 특히 침팬지의 게놈은 인간게놈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수 있다. 5-7백만년 전 사이에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 형태적, 생리학적으로 지금의 차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팬지 게놈연구에서는 인간과 구별되는 단서를 찾고 있다.


98.5% 쓰레기 DNA 의미 밝힌다

지난해 2월 인간게놈지도 초안이 나왔으며, 내년 6월이면 완성본이 미국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마침 2003년은 왓슨과 클릭이 생명의 근본물질인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지 정확히 50주년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간게놈지도 초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대표적인 내용은, 아직 논란 중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 수가 3-4만개에 불과하고, 인간게놈 중 1.5%만이 유전자이고 나머지 98.5%의 염기배열은 유전자의 기능과 관계가 없는 소위 ‘정크 DNA’(junk DNA, junk는 쓰레기란 의미)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인간의 DNA를 쓰레기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유전자의 기능만을 중요시하는 지금까지의 분자생물학적 방법에 기초한 것이다.

사실 엄청난 수의 정크 DNA의 존재는 진화의 메커니즘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다. 즉 인간이 필요하지도 않는 DNA를 수십억년 동안 소중히 보관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인간보다 정크 DNA가 없는 미생물이 진화적으로 우수하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전문가들은 정크 DNA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유력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인간의 선조였던 생물이 인간으로 진화되는 동안 게놈은 수없이 많은 유전자의 재조합, 복제, 상실 등이 일어났다. 지금도 인간은 다운증훈군(21번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못해 염색체 수가 하나 많아 생기는 지능장애), 디조지증후군(22번 염색체 일부의 유전자 결손으로 인한 선천성 심장질환), 프래더윌리증후군(15번 염색체 일부의 결손이 원인인 정신장애, 신체 저발육, 비만), 그리고 스미스마제니스증후군(17번 염색체 일부의 결손이 원인으로 나타나는 단두증, 발육부전, 심장과 근육이상증) 등 이와 같은 과정의 결과 나타나는 여러 질병들로 시달리고 있다.

이런 질병은 보통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게놈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데, 생식세포 즉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분열과정에서 대량의 게놈이 결실(deletion)되거나 그 위치가 변화(translocation)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러므로 다운신드롬과 같은 질병은 유전자가 관여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게놈 내의 어딘가에서 게놈 결실과 같은 변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게놈연구자들은 의미없이 반복돼 있는 정크 DNA가 바로 이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정크 DNA는 개인마다 심각히 다르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비해 침팬지는 게놈의 변이현상이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어 정크 DNA의 염기서열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정크 DNA 구조를 갖고 있는 침팬지의 게놈연구가 훌륭한 대안이 된다.


인종보다도 적은 유전적 차이

왜 인간은 다른 생물에 비해 지적, 감성적인 능력이 우수할까. 인간에게는 왜 치매가 오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질환은 왜 인간에게는 심각한 증후를 보일까. 고도의 복잡한 사회구조에서 오는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의 극복방법은 무엇일까. 침팬지 게놈연구는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두뇌활동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의 두뇌와 관련된 연구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실험동물인 마우스나 랫트 등으로부터는 결코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이런 연구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게놈의 구조와 특성을 갖고 있는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의 연구가 없이는 그 해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두뇌의 발달과 관련된 침팬지의 게놈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두뇌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면, 알츠하이머 질환과 같은 질환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침팬지는 새로운 실험동물방법을 제공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다양한 생물의 게놈정보를 이용해 인간의 질환 원인유전자를 발견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해 신약이나 치료제를 개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우스다. 마우스는 인간의 다양한 질환을 연구하는 임상적인 실험동물로 사용되면서 유전학적, 계통적으로도 많이 연구돼왔다.

그러나 마우스는 인간과 약 80%정도의 유사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면역이나 발생학적인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신약이나 장기이식 등과 같은 실험에는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침팬지의 게놈은 인간과 거의 동일하며, 그 다양성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보다도 작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므로 침팬지는 AIDS, 암, 말라리아처럼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을 연구하고, 인간의 발생과정과 면역계 질환의 메커니즘 규명하는데 가장 유용한 실험동물이다.

물론 침팬지를 실험목적으로 활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동물 보호규제의 높은 턱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침팬지를 이용한 의학실험은 인간과 거의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동물이다.



국제컨소시엄에 주도적으로 참여

2001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인간의 뇌 기능, 그 중에서도 인간의 감성을 결정하는 본질을 게놈수준에서 규명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 세계 20개국 이상의 뇌와 게놈 연구전문가들은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 게놈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리고 한국(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일본(이화학연구소와 게놈과학종합연구센타), 독일(막스프랑크연구소), 중국(상하이게놈센터), 대만(양밍게놈센타)을 중심으로 ‘침팬지게놈연구 국제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컨소시엄은 2001년에는 침팬지 게놈 전체의 물리지도를 완성하고, 2002년에 다양한 질병과 관련되는 인간의 21번 염색체에 해당하는 침팬지의 22번 염색체의 게놈을 완전 해독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2003년부터는 밝혀진 게놈 정보를 활용해 인간의 질환 또는 특성과 관련된 유전자 영역을 집중적으로 해독해 인간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2002년 1월 4일 예정대로 컨소시엄에서는 침팬지 BAC 클론 10만개의 말단염기서열을 해독하고, 이를 인간게놈정보와 비교 분석하는 방법으로 침팬지의 게놈 물리지도를 구축해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약 40Mb(4천만개)의 염기서열을 인간의 게놈정보와 비교한 결과 98.77%의 염기서열이 상동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침팬지의 게놈정보는 인간의 질환과 관련된 SNP 정보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즉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정보를 비교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이적인 SNP 정보를 알아내면, 인간의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 모르지만, 올해 컨소시엄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침팬지의 22번 염색체의 염기서열 약 35Mb(3천5백만개)가 완전 해독되면, 이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지난 5월, 미 국립보건원(NIH)은 2003년부터 침팬지의 게놈 연구를 위한 예산을 확정했다. 앞으로 침팬지게놈연구 국제컨소시엄은 미국과 공동으로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해 향후 3년 이내에 침팬지 게놈지도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침팬지게놈연구는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전세계적으로 가장 관심을 받고있는 국제공동 게놈연구프로젝트다. 일찍이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침팬지 게놈프로젝트에 선두주자로 참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 과학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확보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획득한 자주적인 생물 정보 생산능력은 우리나라 생명공학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200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홍석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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