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필코 민소매 티셔츠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말리라. 해마다 이맘때쯤 젊은 여성들의 공통 화두는 여름을 대비한 살빼기 작전이다. 하지만 풋풋한 봄나물 내음과 함께 식욕을 돋우는 식탁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중 30%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 및 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성인 3명 중 2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다. 영국 BBC 온라인판은 중앙아시아는 4명 중 1명, 영국은 5명 중 1명꼴로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일본 남성들 사이에서도 비만이 현격히 증가하고 있고, 심지어 남아프리카의 비만 인구도 미국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한다. 비만이 세계인의 ‘공공의 적’이 된 셈.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은 수명을 5~20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 심장질환, 당뇨, 암, 신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뭘 먹어야 살이 찌지 않을까. 과학동아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 중 비만을 억제하는 식품을 소개한다. 이들은 지방을 줄이거나, 에너지 소비를 늘리거나, 포만감을 느끼게 해 체중을 조절한다.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비만 억제 식품 드림팀’을 만나보자.
체중조절 드림팀 대표선수
국내외 여러 연구결과와 비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체중조절에 도움이 되는 5색 식품을 선정했다. 독자들의 체중조절에 과학동아가 한몫 단단히 하리라 다짐하면서.
01_체지방의 천적 녹차
녹차의 비만 억제 효과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일등 공신은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 카테킨은 체내에서 지방이 효율적으로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도록 돕기 때문이다 일본 화학회사 가오 코퍼레이션의 무라세 박사팀은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고지방 먹이만, 다른 한 그룹에는 고지방 먹이와 녹차의 카테킨 성분을 함께 먹였다. 11개월이 지난 후 쥐들의 몸무게를 측정해본 결과 카테킨을 함께 먹인 쥐가 고지방 먹이만을 먹인 쥐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갔다.
또한 쥐들의 간을 분석해봤더니 카테킨을 함께 먹은 쥐의 경우 축적된 지방의 양이 더 적었고, 지방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의 유전자 발현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활발히 이용해 체내에 축적되지 않게 한다는 얘기. 연구팀은 “장기간 녹차를 마시면 음식으로 인한 비만이 억제돼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3월 ‘국제비만저널’에도 이와 유사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독일 인간영양연구소 에너지대사그룹의 클라우스 박사팀이 고지방 먹이와 카테킨을 함께 먹인 쥐에서 지방대사가 촉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02_저인슐린 다이어트 선두주자 콩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은 1g 당 열량이 각각 4kcal, 4kcal, 9kcal다. 그런데 단백질의 경우 열량의 10% 이상이 소화과정에 쓰인다. 탄수화물은 소화시키는데 5% 이내의 열량을 쓴다. 지방은 자체 열량도 높은데다 소화될 때 쓰이는 열량이 1~2%에 불과하다. 결국 단백질은 소화될 때 에너지를 많이 써 몸의 기초대사량을 높이므로 같은 양을 먹더라도 실제 인체에 흡수되는 열량이 가장 낮은 것이다.
대표적인 고단백 식품이 바로 콩. 두부, 된장, 청국장 같은 콩으로 만든 식품이 이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는 “콩은 당지수가 낮은 대표적인 식품”이며 “특히 청국장 속의 레시틴 성분은 변비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당지수란 같은 양을 섭취했을 때 혈액 속의 당 농도를 높이는 정도를 의미한다. 당지수가 높으면, 즉 혈당이 많아지면 체지방을 더 잘 저장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많이 나온다. 따라서 당지수가 낮은 식품을 섭취하는 게 체중조절에 유리하다. 이것이 바로 ‘저인슐린 다이어트’다.
콩 중에서도 특히 검은콩은 검은깨, 검은쌀과 함께 최근 ‘블랙푸드 3총사’로 불리며 대표적인 저인슐린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흰 쌀밥, 흰 밀가루로 만든 빵 같은 화이트푸드보다 잡곡밥, 호밀빵 같은 블랙푸드가 같은 양을 먹더라도 체지방이 덜 쌓인다.
03_지방아 매운 맛 좀 봐라 고추
요즘 일본에서는 종종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산 고춧가루가 작은 용기에 담겨 상점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팔리고 있는 것.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 캅사이신은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고, 지방을 태워 열을 내는 체내 메커니즘을 돕는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열이 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군산대 식품영양학과 주종재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캅사이신이 크진 않지만 체중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인간생물학과 플란텐가 교수팀은 20대 남녀를 대상으로 식사 30분 전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주스와 캅사이신을 넣은 주스를 마시게 한 다음 동일한 식단으로 식사 후 배고픔과 포만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캅사이신을 넣은 주스를 마신 그룹이 단시간 내에 포만감이 증가하고 지방을 섭취하는 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손숙미 교수는 “매운 음식은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어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입맛이 없다고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이’ 먹고 있지 않던가.
04_조금 먹어도 많이 먹은 듯 양파
지난 3월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 기능성연구팀은 양파에 들어있는 식물화합물의 일종인 플라보노이드가 체내에서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춰 비만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양파를 비롯한 채소류가 체중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열량이 낮고 섬유질이 많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일반적으로 고섬유질 식품이 체중조절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예방의학과 헤 교수팀은 건강한 여성 약 7만4000명의 식사 패턴과 체중 변화를 12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지난해 12월 ‘국제비만저널’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채소를 많이 먹은 여성일수록 비만이 된 비율이 24%나 낮았다.
고섬유질 식품은 먹은 음식이 빨리 흡수되는 것을 방해해 포만감을 주므로 과식을 하지 않게 한다. 여러 비만클리닉에서 환자들에게 식이요법으로 배추, 샐러리, 양파 같은 고섬유질 채소를 많이 섭취하도록 권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호박이나 당근 같은 부드러운 채소는 상대적으로 섬유소가 적다. 섬유질은 대장운동을 도와 변비를 막고, 콜레스테롤 흡수를 방해하는 역할도 한다. 보름날 식탁에 많이 오르는 고사리, 취나물, 시래기 등 약간 거친 듯한 나물에도 섬유질이 풍부하다.
05_저칼로리 고영양 해조류와 버섯
부경대 식품생명공학부 남택정 교수팀은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에서 폴리만뉴론산이라는 성분을 분리했다. 연구팀은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콜레스테롤이 들어있는 먹이만을, 다른 한 그룹에는 콜레스테롤과 폴리만뉴론산을 함께 첨가한 먹이를 4주 동안 줬다. 그리고 쥐의 혈액에서 지방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인 ‘렙틴’의 양을 측정했다. 콜레스테롤 먹이만 먹은 쥐는 폴리만뉴론산을 함께 먹은 쥐보다 렙틴 농도가 약 2배 높았다고.
해조류에는 무기질 영양소가 풍부하다. 그 중 요오드가 체내 신진대사에 관여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역이나 다시마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것이 특정 성분의 효과라는데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서울백병원 비만체형관리센터 강재헌 교수는 “미역과 다시마는 열량이 매우 낮고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먹었을 때 포만감을 줘 과식을 막는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바다 속 말고 지상에도 열량은 낮고 영양소는 많아 체중조절에 제격인 식품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버섯. 버섯은 질감이 고기와 비슷하고 섬유소도 많아 쉽게 포만감을 준다고.
체중조절 드림팀 후보선수
비만을 억제한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 효과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식품들을 모았다. 이 식품들에 대한 향후 연구결과를 좀더 지켜볼 일이다.
과일은 후식보다 전채?
경상대 응용생물과학부 윤대진 교수팀은 포도를 비롯한 과일에 들어있는 오스모틴이 지방대사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올해 초 생물학저널 ‘몰레큘러 셀’에 발표했다. 동물세포에 오스모틴을 투여했더니 지방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들이 활성화된 것. 연구팀은 오스모틴의 화학구조가 당 흡수를 방해하는 아디포넥틴과 비슷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렇다고 과일만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일에는 당분이 많아 채소보다 당지수가 일반적으로 더 높기 때문. 손숙미 교수는 “과일은 식후보다 식전에 먹는 게 체중조절에 더 좋다. 식후에는 인슐린이 많이 분비된 상태인데, 과일을 먹으면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오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
지방이 복부비만 줄인다?
최근 육류나 유제품에 들어있는 지방산이 복부비만을 개선시킨다는 보고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이 ‘고마운’ 지방은 유제품, 소고기, 돼지고기, 계란에 많은 복합리놀레산(CLA). 스웨덴 웁살라대 공중보건학과 리세루스 교수팀은 복부비만인 남성 25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만 4주 동안 매일 일정량의 복합리놀레산을 먹였다. 그랬더니 복합리놀레산을 먹은 그룹에서 복부둘레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좀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럼 밥은 최소로, 주로 고기만 먹는 ‘황제다이어트’가 효과가 있다는 얘기? 이에 대해 강재헌 교수는 “삶거나 구운 고기 중 기름이 없는 부위를 골라 먹으면 체중조절에 도움이 되지만, 갈비나 삼겹살을 주로 먹으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유로 다이어트 한다?
올해 초 미국 테네시대 지멜 박사는 우유를 많이 마시는 사람이 적게 마시는 사람보다 살이 찔 확률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칼슘이 불필요한 체지방을 몸밖으로 배출해주고 레시틴 단백질이 혈관에 축적된 지방을 녹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우유에는 유지방도 많이 들어있다. 우유는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위해 마시지 살을 빼기 위해 마시는 식품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우유에 식초를 타 마시며 다이어트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이른바 ‘식초우유’다. 강재헌 교수는 “식초는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위장질환이나 변비를 악화시킬수 있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새우 껍질이 지방 배출?
게, 새우, 가재 같은 갑각류의 껍질에 들어있는 키토산이 장에서 지방을 흡착해 배출함으로써 체중을 줄인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대해 강북삼성병원 비만체형관리클리닉 박용우 교수는 “대부분 동물실험에서 얻은 결과”라며 “사람에서도 같은 효과가 있는지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실제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임상시험연구단이 지난해 9월 ‘국제비만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는 이를 반영한다.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성인 남녀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만 24주 동안 매일 키토산을 먹게 한 결과 몸무게나 혈중 콜레스테롤 또는 당 농도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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