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꿈이 정년보장인 나라는 희망이 없다.”
한국 경제에 대해 신랄한 독설을 퍼부어 유명한 서울대 이면우 교수(60)를 만났다. 이야기 중에 그는 최근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꿈에 도전하지 않는 세태를 ‘차체는 커지고 엔진은 작아진 자동차’에 비유한다.
“요즘 학생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곳이 의대, 법대다. 하지만 이는 옛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얼마 뒤면 그 분야는 과열 경쟁으로 별 볼일 없을 것이다. 유망 직업은 계속 바뀐다. 벌써 취업 걱정하는 변호사가 생겼고 의사도 산부인과 등 몇몇 분야는 인기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강조했다. 재능도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 창의성도 발휘하고 보람도 크다. 또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첨단 사업을 발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도 찾아낼 수 있단다. 부모라면 1년 동안 자녀를 유심히 관찰해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분야를 밀어주라고 조언했다.
그가 최근 낸 ‘생존의 W이론’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나온 한 사례. 연탄집 주인이 도시가스를 처음 봤다. 그는 ‘10% 경쟁력을 올리고 구조조정을 하고 온 가족이 합심하면 도시가스를 뿌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도시가스의 거센 물결에 쓸려 연탄집을 접어야 했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변화는 무섭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한국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르치기는커녕 나라를 망치기 위한 무시무시한 ‘음모’가 배후에서 작용하는게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한국 교육은 명문대에 가지 못하는 95%를 탈락시키기 위한 제도다. 예선도 없이 결승선에서 한꺼번에 떨어뜨린다. 사자가 우리 교육제도에 들어왔으면 얼룩말 무늬가 몇 개인지 외우다가 말 것이다. 이쯤 되면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야 되는데 아예 야합을 한다. 바로 사교육 열풍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하도 말을 심하게 하니까 나를 ‘성격 파탄자’라고 하더라. 그러나 현실은 맞지 않느냐”며 웃었다. 특히 이 교수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이공계 기피 대책이 대표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장학금 지급, 병역 혜택이다. 술집 종업원 뽑을 때 전봇대에 붙이는 ‘침식 제공, 선불 가(可)’와 비슷하다. 이공계 고용을 늘리겠다고도 하는데 기업이 수요도 없는데 신입사원만 많이 뽑으면 나중에 남아 있겠나.”
이 교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의 근본 원인은 한국 기업이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거 70, 80년대는 도입 기술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21세기에는 안 된다”며 “이공계 기피는 국민의 존망이 걸려있는 대위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가 기자에게 불쑥 “정부나 대학, 기업이 5년 안에 이 같은 철학을 바꿀 가능성이 얼마겠느냐”고 물었다. 수십 % 언저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10%가 넘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병원에 가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 교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한국 국민에 대한 희망이다.
“에밀레종 소리를 들은 프랑스 박물관장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만든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세계 해군 제독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해군 제독이다. 옛날 종이나 접착제는 수백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의 창의성이 얼마나 우수했나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교수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기업과 함께 제품도 만들고 벤처도 차렸다. 1990년대 올해의 히트상품을 6개나 만들었다. 손빨래 세탁기, 따로따로냉장고가 그의 작품이다. 2001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미래상품에도 그의 제품이 3개나 올랐다.
“정부, 기업, 학교에 기대하지 마라. 젊은이라면 스스로 미래의 사냥 기술을 익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예전에 명문대 들어가면 일생이 보장됐다. 이제 어림도 없는 말이다.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빠른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느린 파문에 주시하라. 그러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