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술집에 ‘바’(bar)라는 것이 있다. 원래 바는 가로지른 막대를 뜻하는 말이다. 옛날 유럽의 선술집에는 손님의 말을 매어 놓기 위해 건물 옆에 말뚝을 박고 가로 막대를 달아놓았다고 한다. 이런 데서 유래한 술집이 바다.
지난 1월 10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천문학회에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포착한 멋진 은하 사진이 공개됐다. NGC1300이란 이름의 이 은하는 언뜻 보면 바람개비 모양을 한 나선은하와 비슷하지만 잘 보면 다르다. 특이하게도 거대한 막대(bar) 구조가 은하 중심을 통과하고 있다. 이런 은하를 막대나선은하라고 한다.
학회에 모인 일부 천문학자들은 NGC1300을 ‘마티니 은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막대를 뜻하는 영어 단어 ‘bar’ 때문에 술집 바에서 자주 마시는 칵테일 ‘마티니’를 떠올린 것이다. 은하와 칵테일은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은하에 칵테일의 주성분인 에틸 알코올이 있기 때문이다.
은하에는 상당량의 먼지와 가스가 뭉쳐 있는 ‘성간구름’이란 존재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성간구름에서 물, 에틸 알코올 등 100여 종의 분자를 찾아냈다. 에틸 알코올은 빽빽한 성간구름에 1m3 당 분자 하나 꼴로 존재한다고 한다. 폭이 수백광년인 거대한 성간구름 속에는 에틸 알코올이 리터로 2 다음에 0이 27개나 오는 엄청난 양이 들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먼 미래에 우주를 항해할 누군가가 알코올 중독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주선이 지름 1km의 거대한 깔때기를 매단 채, 성간구름 속을 빛의 속도로 질주하더라도 칵테일 한잔 분량의 알코올을 모으는데는 1000년의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간구름 안에는 알코올보다 물이 더 많기 때문에 우주선의 깔때기에 알코올보다 물이 많이 들어와 전체적으로 무척 순한 술이 될 것이다. 재미 삼아 어느 천문학자가 성간구름의 술 도수를 계산해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술의 도수는 전체가 100일때 함유된 알코올의 용량이다. 계산 결과 ‘우주 술’의 도수는 겨우 0.2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에서 69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마티니 은하’에 있는 술도 취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또 4만6000 광년이나 뻗어 있는 ‘바’(막대)에는 알코올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은하의 ‘바’에 알코올이 들어있는 성간구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주로 불그스레한 늙은 별들이 많고 먼지 띠가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티니 은하의 ‘바’에서 나선형으로 뻗어나간 팔에는 성간구름이 많이 분포한다. 성간구름에는 알코올도 많겠지만 금방 탄생한 별이 많다. 실제 나선 팔 곳곳에 보이는 파란빛은 젊은 별들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천문학자들이 마티니 은하를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목적은 술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은하에서 막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혀내 우리은하의 탄생 비밀을 벗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은하도 마티니은하처럼 막대나선은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