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적으로 저녁 모임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어느 정도 공식적인 대화가 오고 가고 나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남은 시간을 잡담으로 보내게 된다는 점이다. 공적인 모임은 그래도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사회적 거리와 예의가 있어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사적인 모임에서 잡담은 때때로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처음에는 대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가벼운 험담 정도로 출발하지만 누군가의 스캔들이라도 캐기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달콤한 잡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사실 남에 대한 소문만큼 사람들과 편안하게 얘기할 이야깃거리도 없다. 정치 얘기는 싸움으로 번지게 될 확률이 높고 종교 얘기는 더욱 그렇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과는 영화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내 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잘난 척 한다고 여길 것이다. 결국 만만한 게 남의 얘기 아니면 잡담이다.
잡담이라도 소외되는 사람 없이 각자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또 그 얘기를 서로 들어주면 괜찮다. 아예 각자 혼자 떠들고 아무도 그 얘기를 안 들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젠가 열 명 정도가 있는 모임에서 열 명 각각이 동시 다발적으로 얘기를 쏟아놓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가만히 보니 각자 자기 얘기를 하느라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런 사실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러니 잡담이라도 제대로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1/08/10590839234e5b731f3692d.jpg)
사실 남에 대한 소문만큼 사람들과 편안하게 얘기할 이야깃거리도 없다. 정치 얘기는 싸움으로 번지게 될 확률이 높고 종교 얘기는 더욱 그렇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과는 영화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내 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잘난 척 한다고 여길 것이다. 결국 만만한 게 남의 얘기 아니면 잡담이다.
잡담이라도 소외되는 사람 없이 각자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또 그 얘기를 서로 들어주면 괜찮다. 아예 각자 혼자 떠들고 아무도 그 얘기를 안 들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젠가 열 명 정도가 있는 모임에서 열 명 각각이 동시 다발적으로 얘기를 쏟아놓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가만히 보니 각자 자기 얘기를 하느라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런 사실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러니 잡담이라도 제대로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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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 80~90%는 잡담
서로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만 한다면 잡담을 나누는 것은 인간에게 꽤 도움이 되는 행위다. 미국의 유명한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의 저서 ‘왜 인간인가?’를 보면 잡담에 관한 흥미로운 글이 나온다. 그는 잡담은 보통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일뿐 아니라 사회적 방식을 배워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간이 깨어 있는 시간의 80%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하루 6~8시간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대화 중 80~90%가 잡담이라는 것이다.
가자니가는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식당에서 거창한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양자역학이나 발자크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대신 누가 새로 산 자동차 모델이 뭐고, 새로 온 비서가 어떠냐는 식의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눈다.
그렇다고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잡담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가자니가는 잡담이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또 가끔은 잡담을 통해 정보를 이끌어 내며, 평판을 쌓거나 사회규범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잡담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평가할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자니가의 표현은 지나치게 점잖은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잡담,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의 험담이나 소문을 입에 올릴 때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마치 자극적인 음식처럼 씹을수록 맛이 더해지는 것이 남의 험담이고 가십이다. 도덕군자나 성인이 아닌 바에야 그런 쾌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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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사람들이 잡담을 통해 사회적인 방식을 배워나가고 자신을 객관화시킨다고 말했다.]
기세등등 겉모습 속에 감춘 열등감
문제는 이 세상 모든 유혹이 다 그러하듯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 있냐에 달려 있다.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평범한 사람은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가시가 되는 험담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끝까지 가면 고약하고 심술궂은 인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남의 상처에 쉽게 흥분하고 몰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세등등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 두려움과 불안, 적개심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정적인 정신기제를 잊으려고 더욱 필사적으로 남의 험담에 매달린다. 남의 험담에 열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문제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의 험담이든 잡담이든 적당한 수준에 머무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독일작가 마르틴 발저는 “거짓말은 매일 먹는 빵에 바르는 버터와 같다. 그게 없다면 빵은 맛이 없어지리라”고 말했다. 그 말은 잡담에도 해당되지 않나 싶다. 잡담 역시 우리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빵에 바르는 버터와 같은 것은 아닐는지. 버터를 바르지 않은 맨 빵은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 그런 것처럼 잡담이 빠진 인간관계 역시 지나치게 심심하지 않을까.
약간의 잡담은 마음의 환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 먼지와 앙금이 쌓일 때가 많다. 때때로 마음의 문을 열고 그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공기를 갈아 넣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린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의 속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럴 때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면서 한참 수다를 떨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의 앙금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일종의 마음의 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잡담은 우리에게 빵에 바르는 버터 같은 존재이다.
서로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만 한다면 잡담을 나누는 것은 인간에게 꽤 도움이 되는 행위다. 미국의 유명한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의 저서 ‘왜 인간인가?’를 보면 잡담에 관한 흥미로운 글이 나온다. 그는 잡담은 보통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일뿐 아니라 사회적 방식을 배워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간이 깨어 있는 시간의 80%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하루 6~8시간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대화 중 80~90%가 잡담이라는 것이다.
가자니가는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식당에서 거창한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양자역학이나 발자크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대신 누가 새로 산 자동차 모델이 뭐고, 새로 온 비서가 어떠냐는 식의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눈다.
그렇다고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잡담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가자니가는 잡담이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또 가끔은 잡담을 통해 정보를 이끌어 내며, 평판을 쌓거나 사회규범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잡담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평가할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자니가의 표현은 지나치게 점잖은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잡담,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의 험담이나 소문을 입에 올릴 때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마치 자극적인 음식처럼 씹을수록 맛이 더해지는 것이 남의 험담이고 가십이다. 도덕군자나 성인이 아닌 바에야 그런 쾌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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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사람들이 잡담을 통해 사회적인 방식을 배워나가고 자신을 객관화시킨다고 말했다.]
기세등등 겉모습 속에 감춘 열등감
문제는 이 세상 모든 유혹이 다 그러하듯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 있냐에 달려 있다.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평범한 사람은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가시가 되는 험담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끝까지 가면 고약하고 심술궂은 인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남의 상처에 쉽게 흥분하고 몰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세등등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 두려움과 불안, 적개심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정적인 정신기제를 잊으려고 더욱 필사적으로 남의 험담에 매달린다. 남의 험담에 열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문제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의 험담이든 잡담이든 적당한 수준에 머무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독일작가 마르틴 발저는 “거짓말은 매일 먹는 빵에 바르는 버터와 같다. 그게 없다면 빵은 맛이 없어지리라”고 말했다. 그 말은 잡담에도 해당되지 않나 싶다. 잡담 역시 우리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빵에 바르는 버터와 같은 것은 아닐는지. 버터를 바르지 않은 맨 빵은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 그런 것처럼 잡담이 빠진 인간관계 역시 지나치게 심심하지 않을까.
약간의 잡담은 마음의 환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 먼지와 앙금이 쌓일 때가 많다. 때때로 마음의 문을 열고 그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공기를 갈아 넣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린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의 속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럴 때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면서 한참 수다를 떨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의 앙금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일종의 마음의 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잡담은 우리에게 빵에 바르는 버터 같은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