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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육지가 떠오른다?

울릉도서 세계에서 가장 젊은 화강암 발견

 

울릉도에서 세계 최연소 화강암이 나왔다. 화산섬인 울릉도에서 화강암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 울릉도 지하에 대륙지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거, 분명히 화강암이잖아!”

울릉도 저동 지역에 있는 부석(물에 뜨는 돌)층을 조사하다가 그 안에서 작은 화강암 조각을 발견한 필자는 눈을 의심했다. 울릉도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조면암이나 현무암 같은 화산암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나리분지 부근과 석포동, 울릉도 동쪽의 작은 섬 죽도도 샅샅이 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의 부석층에서도 다량의 화강암 조각이 나왔다.

‘화강암은 대륙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이야. 그렇다면 이 화강암이 울릉도 지하 깊은 곳에서 대륙지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만약 실제로 대륙지각이 존재하고, 이것이 먼 훗날 솟아오르면 동해가 사라지고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육지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울릉도 화강암은 어디서,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02년 10월 30일부터 11월 4일까지 필자는 일본 나고야대, 후쿠오카대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한·일 공동연구팀에 참여해 울릉도를 찾았다. 연구팀의 목적은 과거 울릉도의 화산 폭발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암석뿐만 아니라 부석이나 화산재, 화산 분출시 불에 타서 매몰된 탄화목이나 숯가루를 탐색했다. 이들의 나이를 측정하면 화산이 언제 폭발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 있는 키카이-아카호야 화산재층이나 아이라-탄자와 화산재층은 과거 화산활동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과학자들이 화산재, 부석, 탄화목을 찾는데 여념이 없는 동안 부석층 사이에 있던 화강암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화산섬에서 화산암이 아닌 화강암이 발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울릉도는 약 270만년 전을 시작으로 1만년 전후까지 총 5차례 화산분출로 이뤄진 화산섬이다. 따라서 마그마가 땅 위로 나와 갑자기 식어 굳어진 화산암이 많다. 울릉도에서는 화산암 중 특히 조면암이 많이 산출된다. 그 밖에도 조면안산암, 포놀라이트암, 현무암, 조면암질 부석 등이 많다. 포놀라이트암은 두들기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화강암은 마그마가 땅 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식어 굳어진 심성암에 속한다. 그 위에 쌓여있던 다른 암석들이 오랜 세월 동안 비, 바람, 여러 생물들의 풍화작용과 지각변동으로 깎여나가야 비로소 화강암이 지상에 드러난다. 그래서 보통 화강암이 만들어지고 발견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필자는 울릉도에서 발견한 화강암이 과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62만년 전 굳어져 화산 폭발 때 나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덩어리는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지각운동이 반복돼 만들어졌다. 지질학자들은 지층이나 암석을 통해 지각의 변화를 확인한다. 사진은 중국 대련 지방의 지층. 만약 수백만~수억년 후 울릉도 지하에서 지각운동이 일어나 동해에 대륙지각이 떠오르면 어떻게 될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갈 수 있다.


마그마가 언제 식어 굳어져 암석이 됐는지는 암석을 구성하는 광물 속에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비를 측정해 알아낸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속도로 줄어들기 때문에 암석에 동위원소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알면 암석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화강암에서 각섬석과 장석 광물을 분리해 각각을 불산(HF)용액으로 160℃에서 완전히 녹였다. 이 용액에서 방사성 동위원소인 루비듐(Rb)과 스트론튬(Sr)을 분리, 농축한 다음 질량분석기로 각각의 농도와 동위원소비를 측정한다. 이 값(${}^{87}$Sr/${}^{86}$Sr, ${}^{87}$Rb/${}^{86}$Rb)을 x, y축 좌표계의 그래프에 표시하면 직선을 얻을 수 있다. 이 직선의 기울기로부터 암석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얻어진 연령을 ‘아이소크론 연령’이라고 한다.

울릉도 화강암의 아이소크론 연령은 62만년으로 나타났다. 화강암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나이다. 필자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칼륨(K)과 아르곤(Ar) 동위원소 분석법으로도 연대를 측정해봤다. 그 결과는 57만년.

울릉도 화강암이 실제로 62만년 전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진 것이다.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나이가 젊은 화강암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연소’ 화강암은 1993년 보고된 엘쥬타 화강암(Eldjurta granite)으로, 남부 러시아 북동 중앙 코카스 산맥의 칼데라 지역에서 산출됐다. 엘쥬타 화강암의 나이가 280만~100만년이니, 울릉도 화강암은 이보다도 훨씬 젊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울릉도 화강암이 이렇게 빨리 지상에 나왔을까.

과거 울릉도에서 일어났던 화산 폭발 중 4번째 때는 특히 마그마가 격렬하게 분출돼 나왔다. 이 같은 폭발적인 분출 형태를 화산학에서는 ‘프리니형 분출’이라고 한다. 이때 다량의 부석과 화산재가 함께 나왔다. 당시 일본 오사카, 서남 일본해, 북부 긴키지역 부근과 오키섬 부근 해저까지 날아간 이들 부석과 화산재가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 화산재는 일본 화산재보다 산화나트륨(Na₂O)과 산화칼륨(K₂O) 같은 알칼리 성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발견된 화산재가 울릉도 화산재와 동일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일 공동연구팀은 화강암이 발견된 부석층과 화산재를 탄소(${}^{14}$C)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나이를 측정해본 결과 이 부석층이 프리니형 분출이 일어난 시기와 비슷한 시기인 6만5000년~12만1600년경에 퇴적됐음을 확인했다. 또 과거 화산 폭발 때 생긴 것으로 알려진 현무암 중 울릉도 화강암과 유사한 나이인 것도 있다. 따라서 울릉도 지하 깊은 곳에 굳어져 있던 화강암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깨져 부석이나 화산재와 함께 지표 밖으로 튀어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동해 정말 사라지나
 

동해 바닥 돌출부위는 한반도에서 일본열도가 떨어져 나가면서 가라앉은 대륙조각이다.


이번 발견은 동해에서의 화산활동과 해저지각 구성 암석들을 연구하는데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줬다. 지금까지는 동해와 관련된 지질학 연구가 화산암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지만 이제 화강암 같은 심성암 연구의 중요성이 확인된 것이다. 울릉도뿐만 아니라 주변 해저에도 젊은 화강암을 주성분으로 하는 기반암이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일본열도가 유라시아대륙에 붙어있었다. 약 1700만년 전 지각운동으로 대륙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일본열도가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면서 일본열도와 한반도 사이에 있던 대륙이 가라앉아 그곳에 동해가 생긴 것이다. 현재 동해 바닥 곳곳에서 발견되는 돌출부위는 동해가 만들어질 때 가라앉은 대륙 조각들로 밝혀졌다. 이 대륙 조각들 중 일부는 현재 한반도에 분포하는 중생대 쥬라기의 대보화강암과 백악기의 불국사화강암과 같은 종류다.

일본열도가 떨어져 나간 후 동해 밑에는 해양지각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으나 아직 학계에서는 논란이 많다. 울릉도에서 나이가 젊은 화강암이 발견됐다는 사실로 울릉도 지하 깊은 곳에서 규모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젊은 대륙지각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해양지각이 반려암과 현무암으로 주로 구성돼 있는 반면 대륙지각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암석은 화강암이기 때문이다. 단 큰 규모의 화강암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조각들이 발견됐기 때문에 울릉도 해저에 거대한 대륙지각이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만약 실제로 동해 해저에 대륙지각이 만들어지고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오랜 지질시대가 지난 후에 지하 깊은 곳에서 판구조운동이나 지구조운동이 일어나 현무암질 해양지각보다 밀도가 낮은 화강암질 대륙지각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울릉도 부근 동해 해저기반이 융기해 동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과거와 같이 다시 육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발견을 계기로 앞으로 동해의 형성과정과 지각운동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젊은 화강암이 발견된 울릉도 석포동이나 죽도 부근은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가치도 있으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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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규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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