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청계천을 뒤져 라디오를 조립하면서 에디슨의 꿈을 키워오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이 미국에서 꿈을 이루고 돌아와 한국을 디지털 TV 강국으로 이끌고 있다. LG전자 기술담당 최고책임자(CTO) 백우현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매년 2조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쓰는 제품 개발의 총지휘자다. 전자업종 같은 첨단기업일수록 기술 분야의 의사결정을 총괄하는 CTO(Chief Technology Officer)의 역할은 막중하다. 한번 제품 개발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회사의 존립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6년 전 미국에서 귀국해 기술 사령탑을 맡은 뒤 LG전자는 디지털TV, 플라스마디스플레이(PDP), 광 스토리지 및 CDMA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의 제품을 잇달아 출시해 기염을 토하고 있다.
최고 테스트 책임자
흥미로운 사실은 그에게 ‘최고 테스트 책임자(Chief Testing Officer)’란 별명도 붙어 다닌다는 점이다. 쏟아져 나오는 주요 신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기기 전에 사무실이나 집에 가져가 직접 써보고 부하 직원들에게 고치라고 꼼꼼하게 지시하기 때문이다.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그의 사무실과 아파트에는 출시를 앞둔 신제품이 가득하다.
엔지니어를 향한 그의 꿈은 만들고 테스트해보기좋아하는 그의 취미와 무관치 않다. 중3때 과학반에 들어가 라디오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경기고 재학시절, 공부는 뒷전이고 밤낮 없이 청계천 전자부품 시장을 뒤져 라디오, 전축 만드는데 매달렸다가 60명 중 52등까지 등수가 떨어져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는 “공부만 하는 것보다 라디오 조립, 아마추어 햄 같은 취미 활동에 빠진 것이 전자공학자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백 사장은 지금도 무선통신을 즐기는 햄(HAM)라디오 애호가다. 아파트의 방 하나를 아예 햄 전용실로 꾸며 요즘도 주말이면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친구들을 전파로 불러낸다.
“휴대전화와 원리는 같지만 내가 직접 전파를 쏘아서 바다 건너 남미, 미국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한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죠.”
대학생 때부터 전리층을 향해 무선단파를 날리기 시작한 게 벌써 31년째다. 그동안 집에 설치한 무선 안테나만 해도 ‘열댓개’는 족히 된다. 아내가 “당신 죽으면 무덤에 안테나는 꼭 설치해 주겠다”고 했을 정도. HAM을 한 덕분에 그는 미국에 유학 갔을 때도 영어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멋진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꿈은 유학을 떠나 미국 최고의 이공계 명문대학인 MIT에서 통신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되려고 귀국했던 대부분의 친구들과 달리 그는 미국의 산업계에 투신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다.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I)와 퀄컴에서 20년 동안 일하면서 그는 디지털TV 신호의 압축과 암호화 기술을 개발했다. 그가 등록한 특허만 해도 30개에 이른다. 미국 디지털TV의 규격을 결정하는 산업계와 학계 연합 표준화기구인 기술대연합에도 핵심 멤버로 참여 했다.
당시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디지털 HDTV 규격을 제안해 일본, 유럽의 아날로그 HDTV기술을 무력화시키고 다기능을 갖는 고화질 디지털TV 탄생의 길을 활짝 열었다. 그가 개발한 디지털TV 신호의 압축과 암호화 방식 ‘디지사이퍼’와 ‘비디오사이퍼’ 시스템이 미국 디지털케이블과 위성방송의 표준이 된것이다.
미국 최대의 신문인 ‘USA투데이’은 1997년 HDTV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그에게 ‘디지털TV의 아버지’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디지털TV의 표준화와 기술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1999년 미국 방송통신 분야 최고 권위상인 클라크 상을 수상했다.
또한 올해 초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소니의 회장등과 함께 ‘리더십과 혁신으로 세계 가전산업을 이끈 11명’에 꼽혀 미국 가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4년에 걸친 긴 외국생활을 마치고 그는 1998년 귀국해 LG전자에서 CTO라는 중책을 맡았다. 당시 LG는 디지털TV를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우수두뇌를 스카웃하는 중이었는데 ‘디지털TV의 아버지’를 모셔왔으니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이었다.
귀국한 그가 세운 가장 큰 공은 디지털TV와 PDP에 연구 역량을 집중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디지털TV 분야에서 LG를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백 사장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답게 세계 각지의 현지규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연구소를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제니스R&D센터와 일본 도쿄연구소, 중국 베이징R&D센터다.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은 러시아, 인도에 설립한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통해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했다.
LG가 디지털TV의 세계적 강자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그가 고심 끝에 내린 2개의 중요한 결정은 기업에서 CTO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한다.
한국은 세계적인 휴대전화 수출국이지만 핵심 칩을 개발 못해 많은 돈을 주고 미국 퀄컴사의 칩을 수입해 쓰고 있다. 휴대전화를 팔아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셈이다. 백 사장은 디지털TV에서는 휴대전화처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TV의 핵심인 디지털TV 전송 및 신호처리 칩을 독자 개발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둘째는 PDP가 디지털TV의 디스플레이로 성공할 것을 확신하고 이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디지털TV 개발 초창기에는 기존 CRT 외에 다양한 디스플레이, 즉 PDP, LCD, PALC, FED등 신기술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회사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선택이었다. 그는 큰 화면을 만들 수 있고, 원가를 고려할 때 PDP가 최선책이라고 판단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동기생인 이상철 전 정통부장관은 “백 사장이 MIT박사이고, 디지털 TV라면 세계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천재라서가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그의 탁월한 선견과 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디지털TV는 1998년 첫방송 서비스 이후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디지털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위성방송에 이어 케이블방송도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이제 한국 전자산업의 총아로 떠오른 디지털TV는 고화질·고음질방송 이외에 양방향서비스·인터넷서비스·홈네트워크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방송·통신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국가적인 성장엔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TV의 핵심기술과 부품인 디지털전송,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 세계수준의 초고속통신망과 함께 국민의 정보화 마인드까지 갖춰져 있어, 기술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선두로 도약하면서 반도체·휴대전화·LCD에 이어 PDP와 함께 디지털TV가 수출의 주역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기업은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일단 개발을 하면 1백만 개 이상 팔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백 사장은 “기술만 안다고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고객의 입장에서 기술을 바라볼 줄 아는 엔지니어가 경영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CTO가 된 또 다른 비결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전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철저한 실험 정신,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백 사장처럼 에디슨을 꿈구는 청소년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백 사장은 주저없이 말한다.
“MIT를 나와도 슈퍼마켓 하는 사람이 있어요. 좋은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는 일에 흥미와 관심을 갖는 게 성공의 열쇠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을 하든 하는 일이 재미있고 만족스럽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