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이가 고작 0.2-10mm인 진드기가 사람의 몸에서 피를 빠는 모습은 얼마나 끔찍할까? 우리 몸을 70%나 차지하는 물이 생명 유지 위해 세포 안팎을 어떻게 이동할까? 이런 궁금증이 있다면 올해 최고의 과학기술 시각화 작품을 보면 된다.
지난 9월 24일 미 과학재단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공동 개최한 ‘2004년 국제 과학기술 시각화 대회’ 의 선정작품을 발표했다.
‘열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는 우리말 속담도 있듯 이미지는 의사소통의 효율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눈에 보이도록 하는데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기관은 “과학기술의 시각화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가 첫대회였고 올해가 두번째다. 올해는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정보성그래픽, 그리고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non-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로 총 5개 부문에 걸쳐 시상됐다. 과학자, 공학자, 시각 전문가, 그리고 예술가가 참여했으며 총 출품작이 1백편이었다. 이 가운데에서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정보성 그래픽부문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수상작도 덧붙여 소개한다.
사진부문 1등 포유류 숙주를 공격하는 진드기
마나 에릭슨, 미네소타대, 피부병리학
진드기가 햄스터의 귀에서 배불리 피를 빨아먹고 있는 모습. 심사평에 따르면 이제까지 진드기가 숙주의 몸에서 피를 빠는 모습이 이처럼 잘 포착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레이저주사공초점현미경으로 찍었다.
진드기가 피를 빨아먹을 때 숙주에게 박테리아를 옮긴다. 이로 인해 사람은 수많은 다양한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제2의 에이즈로 불리는 라임병도 진드기가 옮기는 병 중 하나다. 에릭슨의 연구팀은 어떻게 이 전파가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고자 진드기에 있는 박테리아에 형광을 입혔다.
연구팀은 박테리아에 쓰인 형광색을 진드기와 햄스터가 발산하는 자연 형광색과 구분하느라 상당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에릭슨은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이 일이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진드기의 입에서 나오는 빛이 에머랄드빛의 녹색에서부터 보라, 그리고 화산처럼 붉은색 그리고 연어 살이 갖는 오렌지색까지 매우 다양했던 것이다. 햄스터의 귀 조직은 옅은 황갈색의 빛을 냈다.
사진부문 가작 남극에 사는 규조류
디 브레거, 필라델피아 소재 드렉셀대, 해양학
다리가 길고 몸이 여러 마디로 나뉜 곤충 같은 이것은 과연 뭘까? 건드리면 움직일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식물이다. 단세포식물인 규조류 여러개가 줄다리기를 하려는 듯 한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은 남극바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미세 플랑크톤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찍은 다음 색을 입힌 것이다. 여기에 쓰인 미세 플랑크톤은 2002년 해양학자들이 규조류의 성장과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에서 철(Fe)의 역할을 조사하기 위해 수집한 것이다. 바다에 이산화탄소를 고정시키기 위해 규조류의 성장을 촉진시키려는 연구가 있다. 규조류가 호흡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인데, 철을 바다에 뿌리면 규조류가 번성한다고 한다.
사진부문 가작 불안정 목초지
싱 수, 매사추세츠대, 폴리머 전공 대학원생
벌판 앞으로 가로수가 쭉 늘어서 있고 그 뒤로 하늘이 보인다. 현대화가의 기묘한 풍경화 같은 이 모습은 풍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플라스틱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플라스틱은 적절한 환경 조건에서 이처럼 환상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이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폴리머를 전공한 대학원생 싱 수는 얇은 막의 폴리스티렌에 전기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자 얇은 막의 표면에 불규칙한 모양이 증폭되면서 이런 형상이 나타났다. 광학현미경으로 찍었다. 이 사진은 미 과학재단이 지원하는, 과학을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활동 프로그램인 VISUAL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일러스트레이션부문 1등 세포막의 물통로를 따라 세포 속으로 침투하는 물
에마드 타초시드·클라우스 츌텐, 일리노이드대 이론&전산 생물리 그룹
우리 인체의 약 70%는 물이 차지하고 있다. 이 중 40%는 세포 내부에, 30%는 세포 외부에 존재한다. 우리 몸이 세포 내·외부에 이렇게 일정한 양의 물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물이 세포막을 어떻게 자유롭개 통과하는 것일까. 이 물음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200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 존스홉킨스의대 피터 아그레 교수가 1988년 이 문제를 풀었다. 아쿠아포린이란 단백질이 다른 분자는 통과시키지 않고 오직 물분자만을 통과시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일러스트레이션은 아쿠아포린 단백질(금색) 사이로 물분자(파란색 ㄱ자 모양)가 세포 밖에서(위쪽) 안으로(아래쪽)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은 아쿠아포린이 갖는 물분자 선택성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도된 가장 큰 원자 시뮬레이션 중 하나를 만들었다. 5만5천개 이상의 디지털 원자를 이용해 아쿠아포린의 물통로를 구성했고, 여기에 가상의 물을 만들어 넣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가작 나선 IV
케네스 에와드, 바이오그래프스 사이언티픽 & 메디컬 이미지, 과학 아티스트
DNA 이중나선처럼 나선형으로 꼬여진 계단을 올라가 그 아래를 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케네스 에와드는 DNA 분자의 X선 결정모습을 통해 이중나선의 독특한 형상을 그렸다. 이 이미지는 분자의 중심을 교차하는 화학적 결합을 넣지 않았다. 그래서 이중나선의 구조적 특성이 좀더 쉽게 드러나 있다.
정보성그래픽부문 1등 에트나 화산
데이비드 피어스타인, 데이비드 피어스타인 일러스트레이션
에트나 화산은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화산 중 하나다.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인 데이비드 피어스타인은 그 화산의 내부를 잘라 사람들에게 화산이 어떻게 분출하는지를 보여줬다. 그는 최고 성능의 3차원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과학자들의 최근 연구결과를 이 그래픽에 표현했다고 한다.
에트나 화산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는데,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이기도 하다. 지난 3년간의 분출로 관광단지가 파괴되고 인근 도시가 위협받고 있다.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에트나 화산이 매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조만간 오스트레일리아 헬렌 화산과 필리핀 피나튜보 화산과 라이벌 다툼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피어스타인은 화산이 위치한 지질학적 특성이 어떻게 막대한 양의 마그마를 만들어내게 하는지 그리고 최근 용암이 어떻게 분출했는지 자세히 묘사했다.
사진부문 1등 얼어버린 나이테
디 브레거,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
몽고지역의 오래된 시베리아 소나무의 작은 조각에서 투과전자현미경으로 포착한 나무의 나이테. 이 사진은 지구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사진의 가운데 부분 나이테를 주목해보자. 536-537년에 형성된 이 나이테는 다른 주변 나이테와 달리 가운데 부분이 심하게 변형됐다. 이는 수액을 얼게 할 정도로 여름에 기온 이상 냉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기상 재해는 근세 화산활동 사상 최대 화산 폭발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의 전조인 젊은 화산의 폭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크라카토아 화산은 1883년 8월 27일 폭발했는데, 그 폭발음은 3천5백km나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사진부문 2등 흑해 황철광
디 브레거,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
사진부문 1등을 한 디 브레거의 또 다른 수상작. 이 사진은 흑해의 퇴적층에서 얻은 코콜리소포리드(coccolithophorid)라는 미세 플랑크톤 안에 형성된 황철광 결정 덩어리를 보여주고 있다.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찍어서 포토샵으로 색을 입혔다.
황철광을 생성하는 화학반응은 해양퇴적층에 산소가 부족할 때 일어난다. 때문에 이 사진은 플랑크톤의 잔해가 수천년 전 매장됐을 당시 흑해의 바닥에는 생명이 살지 못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부문 2등 대식세포와 세균의 수채화
데이비드 굳셀, 스크립스 연구소, 분자 생물학 교수겸 분자 예술가
3폭의 이 그림은 언뜻 보기에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하게 꾸며놓은 자갈길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혈류에서 대식세포(왼쪽 전부, 그리고 가운데와 오른쪽에서 중간)가 세균(오른쪽과 가운데의 아래)을 삼키고 있는 신체의 면역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는 수채화다. 세포의 유전물질은 빨강과 오렌지색으로, 세포질은 파랑과 자주색으로, 세포막과 관련 단백질은 녹색으로, 마지막으로 혈액은 갈색과 노란색으로 표현됐다. 이 그림은 미 라호야에 위치한 스크립스 연구소 내 통합 분자 생물학 센터의 입구를 꾸미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부문 1등 3차원 파일 관리
아담 미에지안코·크리스토퍼 람비시·카렌 펑·자브누라 핑칸, 보스턴대 4학년생
놀이공원의 대회전차 같은 이것은 과연 뭘까? 보스턴대 졸업생들이 만든 이 일러스트레이션은 다루기 힘들 정도로 양이 막대해지고 있는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차세대 솔루션이 될지도 모른다. 이 3차원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에 저장된 내용을 하드 드라이브의 물리적 위치보다는 그들의 관련성을 통해 정리해준다고 한다.
가운데 보라색의 열려있는 폴더와 관련이 있는 다른 폴더 사이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끈을 통해 표시된다. 이 시스템은 리눅스용으로 만들어졌으며, 기업의 구조 분석이나 생태계 자료까지 매우 다양한 구조를 갖는 데이터베이스에 쓰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