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의 수많은 별들은 유순한 양떼처럼 소리 없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별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선선한 가을밤에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지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 의 끝부분이다. 목동인 나는 식량을 갖다주러 왔다가 폭우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느낀다.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 나의 마음에 오로지 아름다운 생각만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더이상 소설의 주인공처럼 마음이 정화(淨化)되는 감동을 느끼기 어렵게 됐다. 별의 탄생과 죽음뿐 아니라 천체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처절한 약육강식의 현장까지 똑똑히 보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맨눈이나 배율만 높여주는 일반 망원경으로 이런 장면을 본 것은 아니다. 사람의 눈은 볼 수 없는 X선을 감지하는 찬드라 X선 망원경이 포착한 영상을 통해서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훨씬 짧은 X선은 온도가 아주 높은 천체에서 방출된다. 우주에서는 별이 태어나거나 죽을 때, 거대한 은하가 서로 충돌할 때 X선이 뿜어져 나온다. 우리은하와 외부은하에 존재하는 블랙홀 등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밝히라는 사명을 안고 1999년 7월 23일, 고성능 X선 탐지기를 탑재한 찬드라 X선 망원경이 우주로 발진했다. 지난 5년 동안 찬드라 망원경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찬드라가 보내온 영상을 통해 밝혀진 우주의 비밀을 살펴보자.
초신성 폭발의 장관 중계
찬드라 망원경의 이름은 인도 태생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를 기념해서 명명됐다. 찬드라세카르는 별의 구조와 진화를 밝힌 업적으로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즈는 “찬드라세카르는 아인슈타인 이후 우주에 대해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찬드라(Chandra)는 ‘달’ 또는 ‘빛을 내는’ 이란 뜻의 산스크리트 말이다.
1999년 우주로 올라가자마자 찬드라는 카시오페이아A의 죽음을 포착해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지구에서 불과 3백광년 떨어진 이 별은 1660년대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는데 그 잔해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질량이 태양보다 8배 이상 무거운 별은 초신성 폭발로 생을 마감한다. 찬드라는 그후 카시오페이아A를 정밀하게 관측해 최근 해상력이 높은 이미지(p44)를 발표했다. 사진의 가운데에는 폭발 뒤에 남은 별의 중심핵이 수축하면서 만들어진 중성자별이 보인다.
찬드라 망원경은 X선을 방출하는 고온의 영역만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천체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 따라서 일반에 공개된 사진의 상당수는 찬드라 망원경의 데이터와 가시광선과 자외선 일부 영역을 포착하는 허블 망원경의 데이터를 합성한 이미지다.
블랙홀 실체 밝혀
찬드라 X선 망원경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블랙홀에 대해 많은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으로 X선을 포함한 빛까지 빨아들이므로 찬드라 역시 블랙홀을 직접 관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블랙홀로 인해 요동치는 주변 천체나 물질에서 방출되는 X선을 포착함으로써 블랙홀의 위용을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질량이 태양의 수백만-수천억배에 이르는 거대 블랙홀은 중력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런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간 천체가 느끼는 중력의 세기는 블랙홀을 향한 부분과 반대쪽의 차이가 크다. 그 결과 마치 종이가 찢어지듯 일부가 떨어져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데 이때 수백만℃까지 온도가 올라가며 X선을 방출한다. 관측 결과 전형적인 은하의 경우 이런 현상이 1만년에 1번 꼴로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찬드라가 관측한 X선 데이터는 블랙홀의 회전유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의 경우 주변 물체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 경우 블랙홀의 중력이 강해져 철이온이 방출하는 X선의 에너지 분포가 바뀐다. X선 관측으로 블랙홀의 회전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이유다.
별의 탄생 장면 포착
우주 곳곳에서는 초신성 폭발처럼 별이 화려한 최후를 맞이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별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찬드라 망원경은 지구에서 1천8백광년 떨어진 오리온성운에서 별이 탄생하는 성단을 포착했다. 나이가 1백만년도 채 안된 이들 신생별의 대기 온도는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강력한 X선을 발산한다.
한편 은하가 충돌할 때도 수많은 별이 탄생한다. 찬드라가 포착한 안테나은하의 모습은 두 은하가 충돌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두 은하가 겹쳐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던 거대한 가스 구름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충격파와 열을 주위로 내뿜게 된다. 그 결과 거대한 별들이 탄생하고 수백만년 뒤에는 초신성 폭발로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네온, 마그네슘, 실리콘, 철 등의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 태양계와 비슷한 천체들이 탄생한다.
충돌하는 은하를 관측하는 것은 우리은하의 미래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은하도 수십억년 뒤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찬드라가 바라본 태양계 풍경
이제 찬드라의 앵글을 태양계로 돌려보자. X선 망원경에 포착된 태양계 행성들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목성의 경우 남극과 북극에서 X선이 강하게 방출됨을 볼 수 있다. 10시간 동안의 관측결과 북극의 X선은 45분 주기로 맥동하는 하나의 ‘열점’(hot spot)에서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고에너지의 산소와 황 이온이 목성의 자기장에 포획돼 양극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대기와 충돌할 때 X선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찬드라에 포착된 토성의 이미지 또한 특이하다. 목성과 달리 토성에서는 적도 부근에 강한 X선이 집중돼 있다. 연구자들은 토성의 X선 복사를 토성의 대기에서 반사되는 태양의 X선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규명하지는 못한 상태다.
찬드라 망원경은 근지점 9천9백km, 원지점 13만9천km의 타원궤도로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 원지점일 때는 지구와 달까지 거리의 3분의 1에 이른다. 찬드라는 앞으로 5년간 더 궤도에 머물면서 블랙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물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는 우주의 신비를 파헤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