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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호, 말 탄 것처럼 흔들렸다”

소형항공기 개척자들 창공에 꿈을 묻다

 

1996년 국내 최초 쌍발복합기 ‘트윈비’ 개발후 기념촬영을 한 고 은희봉 교수(왼쪽에서 2번째)와 고 황명신 교수(왼쪽에서 4번째).


올 여름은 유난히 흐리고 비가 많이 왔다. 6월 7일 장장 54개월에 걸친 보라호 개발 프로젝트가 일단락을 지었지만 시험비행은 한차례도 이뤄지지 못했다.

6월 19일 한국항공대 황명신 교수(항공우주및기계공학부)와 은희봉 교수(항공운항학과)는 처음으로 보라호의 조종키를 잡았다. 10분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8월 27일 5번째 시험비행에 나선 두 교수는 그들의 꿈을 창공에 묻은 채 다시 착륙하지 못했다.

시험비행의 프런티어 잃다
 

지난 8월 27일 오후 12시 30분경 보라호 추락후 군경 관계자들이 사고현장에서 잔해 수색작업을 벌였다.


“소형항공기 시험비행을 시작한 것이 1993년부터였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항공기에 데이터 획득 장치 센서를 장착해 시험비행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밤 12시를 넘기는 것은 보통이었다. 활동적이어서 다른 과 교수들과 협동 연구도 많이 진행했다.” 황 교수에 대한 한 동료 교수의 기억이다.

“항공대 학생 시절부터 건실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6년간 기장을 했고 총 비행시간이 1만 시간을 넘는 베테랑 조종사였다. 동료 교수였지만 내가 아끼는 제자이기도 했다.” 은 교수에 대한 또 다른 교수의 기억이다.

두 교수는 소형항공기 시험비행의 독보적 존재였다. 공학자인 황 교수와 조종사인 은 교수는 시험비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단짝’ 이었다.

황 교수는 시험비행중 항공기의 성능이 설계된 대로 나오는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고, 은 교수는 실제 비행시 항공기의 조종성이 적합한지 테스트했다.

이들은 1997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함께 8인승 쌍발복합기와 4인승 반디호, 그리고 이번 보라호까지 시험비행을 도맡아 진행하면서 소형항공기 개발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군 초등훈련기 KT-1과 T-50처럼 군용 항공기는 자체개발을 했지만 민간 항공기 개발은 걸음마 단계였다.

하지만 1997년 개발에 착수해 2001년 초도비행에 성공한 반디호가 올 8월 세계적 소형 항공기 에어쇼인 미 오시코시에어쇼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국내 소형항공기 시장의 해외 진출에 녹색불이 켜졌다. 여기에 보라호까지 가세한다면 한국이 세계 민간 소형항공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꿈이 좌절된 지금, 당장은 두 교수를 대신할 시험비행 전문가가 없는 것이 항공계의 큰 걱정거리다.

항우연 성봉주 박사(보라호 사고조사분석지원반장)는 “시험비행시 소형항공기의 성능을 테스트하는데 황명신 교수만큼 많은 노하우와 실력을 가진 사람이 현재는 없다”며 “은희봉 교수 역시 항공대 이정모 교수가 은퇴한 후 유일한 시험비행 조종 전문가였다”고 밝혔다.

전진익과 복합재료 적용한 신기종

두 교수의 죽음이 안타까운 만큼 보라호의 사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원인이 명백히 밝혀지는 것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우일 것이다.

사고 직후 건설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보라호의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이미 1차 조사는 마무리된 상태다. 조사 기간은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걸릴 것으로 예상돼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라호 개발을 주관한 항우연과 두 교수가 몸담았던 항공대에서도 자체적으로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런데 항공대 동료 교수 20여명이 “보라호의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보라호 추락 원인을 놓고 책임 소재 공방이 불거졌다.

이들은 보라호의 설계를 문제 삼았다. 주날개 형상이 공력중심을 지나치게 앞쪽에 위치시켜 안정성이 뒤떨어지고, 꼬리날개 부분 역시 취약한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기체 전체를 복합재료로 제작해 튼튼해야 할 꼬리날개의 강도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보라호는 어떤 항공기였나.

보라호는 1999년 12월 과학기술부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항우연 주관의 산학연 공동개발 프로젝트였다. 항우연은 보라호 개발을 총괄했고, 최종조립과 구조시험을 담당했다.

항공대는 시험비행 일체를 맡아 시험비행 계획과 절차를 개발하고 직접 시험비행을 수행해 시험자료를 획득, 분석했다.

건국대는 보라호의 꼬리날개를 설계하고 복합재료 시편시험을, 초경량항공기 제작 업체인 성준모토라비아는 항공기 기체 제작을 담당했다.

보라호의 가장 큰 특징은 주날개에 전진익을 적용한 것이었다. 전진익은 날개가 앞쪽으로 뻗어있는 형태를 말한다. 주날개를 전진익으로 만들 경우 저속비행시에도 안전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조종사의 조종성도 좋아져 조종훈련용으로 적합하다. 특히 동급 항공기로는 세계 최초의 전진익기였다.

또 전체 구조물에 순수 국산 항공용 복합재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무게와 공기저항을 감소시켰다.

때문에 해외시장 진출의 꿈도 컸다. 50시간 정도의 비행성능시험을 거쳐 해외 소형항공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미국 등 선진항공국에서는 소비자가 부품 상태로 구매해 스스로 조립한 후 비행을 즐기는 자가제작 항공기 시장이 정규항공기 시장보다 훨씬 크다.

‘보라’ (Bora)라는 이름도 ‘북풍’ 이라는 그리스어로 서구권 시장 공략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보라호는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렇다면 항공대 교수들의 주장은 결국 애초 보라호의 강점이자 기술력으로 내세웠던 전진익과 복합재료가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인가.

보라호의 강점이 사고의 원인?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대 교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보라호가 추락한 사고현장에는 꼬리날개부분이 동체에서 잘려나가 있었다. 문제는 잘려나간 꼬리날개가 동체로부터 2백50여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점”이라며 “만약 조종사의 실수나 기상이변 등의 이유로 기체가 추락했다면 유독 꼬리날개가 동체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사고현장을 토대로 사고 당시 정황을 재구성하면 꼬리날개가 동체에서 먼저 잘려나갔고, 이어서 동체가 중심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라호에 블랙박스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증거가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꼬리날개가 잘려나간 이유는 뭘까. 그는 “보라호의 설계는 꼬리날개와 동체를 연결하는 테일 붐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꼬리날개에 진동이 생기면 테일 붐에 더 많은 힘이 가해져 결국 테일 붐이 손상돼 꼬리날개가 잘려나갈 가능성이 높은 구조라는 얘기다.

게다가 그는 “꼬리날개는 강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라호는 복합재료를 사용했다”며 “복합재료는 쉽게 말해 탄소섬유 같은 것에 안료를 바른 꼴인데 강한 진동처럼 집중된 힘을 받으면 부러지기 쉽다. 복합재료를 사용했다면 사전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로 보라호의 꼬리날개에 진동이 있긴 했을까. 황 교수와 은 교수는 4차 시험비행시 꼬리날개 부분에서 플러터(flutter) 현상을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러터는 공기 흐름에 의해 구조물에 진동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두 교수가 비행 후에 마치 말을 탄 것처럼 보라호가 흔들렸다고 주변 사람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가 그 얘기를 직접 들었으면 비행을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러터를 보완한 방법도 문제 삼았다. 보라호는 플러터를 없애기 위해 꼬리날개에 7kg짜리 댐퍼(damper)를 달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댐퍼는 일종의 완충기로 항공기가 착륙할 때 충격완화용으로 장착한다.

그는 “꼬리날개가 무거워지면 이륙시 보라호의 하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만큼 시험비행 전에 하중 테스트 등 철저한 검증을 해 보완이 제대로 이뤄진 후 비행을 재개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4차 비행과 사고가 난 5차 비행이 3일 간격이었다. 안전한 비행을 위한 필수 구조시험이 어떻게 3일만에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9월 2일 과학기술부 장관 등 관계자 3백여명 앞에서 보라호 시범비행행사를 6일 앞두고 시간에 쫓겨 비행을 감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시험비행전 지상 점검 완벽했다?

이에 대해 보라호 개발을 총괄한 항우연은 기본적으로 소형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절차는 제대로 진행시켰다는 입장이다.

성봉주 박사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에 주관 기관으로서 죄송한 것은 사실이다”면서 “모험정신과 도전을 필요로 하는 사업인 만큼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할 경우 되돌아오는 것도 많다”고 밝혔다.

보라호의 구조시험을 담당한 항우연은 시험비행전 철저한 지상테스트를 했는지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항우연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체해석과 구조해석을 했고, 풍동시험과 구조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시험비행전 기본적인 점검은 진행됐다고 밝혔다.

풍동시험에서는 보라호를 실제 크기의 4분의 1로 축소시킨 모델을 제작해 바람 앞에서 모델에 작용하는 양력, 항력, 모멘트 등을 측정해 비행안전성을 검토했고, 구조시험에서도 보라호와 동일한 시제 1호기를 제작해 보라호 중량의 5.7배에 달하는 극한 하중까지 시험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인했다는 것.

성봉주 박사는 “쌍발복합기와 반디호의 경우에도 시험비행시 이변이 있었다. 균열이 생기거나 온도가 예상보다 올라간 적도 있었다”면서 “자연에는 항상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오히려 이 때문에 더더욱 시험비행이 필요한 것이다”고 말했다. 지상 테스트와 실제 시험비행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보라호는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설계단계에서 보라호의 구조에 대한 공학적 안정성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제작단계에서 복합재료의 강도가 추락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일까. 또는 플러터 발생 후 보완 단계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직 보라호 추락의 정확한 원인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라호 추락을 놓고 입장 차이를 보이는 항공대 교수들과 항우연 사이에 지금까지 합의된 사항은 사고가 일어난 만큼 분명 원인은 있을 것이라는 점과 항공기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앞으로 보라호는 어떻게 될까. 성봉주 박사는 “보라호 개발을 맡았던 이종원 박사는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라며 “당장은 사고원인이 규명될때까지 중단되고 추후 상부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빠른 시일 내에 사고 경위가 명확히 밝혀지는 것이야말로 고인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200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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