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21층에 살고 있는 당신.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파트 1층 로비로 들어선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에 무심하게 붙어 있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안내문 한마디 ‘고장 수리중’. 하루의 피곤이 갑자기 천근 무게로 밀려오면서 어깨에 힘이 쭉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필 오늘같이 피곤한 날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나는 걸까? 만약 이럴 때 배낭처럼 생긴 로켓을 메고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긴 계단을 오르는 수고 없이 21층까지 단번에 날아올라가 내 방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라이트 형제 덕분에 비행기의 역사가 1백년을 넘어선 오늘날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3백40억명. 이들이 비행한 거리를 모두 합하면 무려 54조km나 된다. 세계 일주로 따지자면 지구를 13억5천만번이나 돈 셈이고, 1억5천만km나 떨어진 태양까지 18만번이나 왕복비행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전세계적으로 하루 2만대 이상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도 모자라서, 1969년 7월엔 아폴로 11호가 1백95시간 동안 우주 비행을 하면서 달에 발자국까지 남기지 않았나!
그러나 아무리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날아본 사람일지라도 배낭로켓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새처럼 하늘을 날아야 비로소 비행이 주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러글라이딩’도 온몸으로 바람을 가를 순 있지만, 기구에 몸을 연결하는 ‘하네스’ 라는 장비를 걸친 후 거대한 날개에 매달려야 하고, 동력 추진을 이용해 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둥둥 떠다니는 것뿐이니, 어찌 배낭로켓과 비교할 수 있으랴. 우리에게 배낭로켓은 망토 하나로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슈퍼맨의 꿈을 현실로 이뤄줄 ‘꿈의 장치’ 인 것이다.
배낭 타고 구름 산책을
모든 사람이 배낭로켓 하나쯤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오면, 세상 풍경이 과연 어떻게 변할까? 우선 아침·저녁으로 통학하는 길에 1시간씩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시달릴 필요가 없어진다.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어머니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친 후 베란다를 박차고 뛰어오르며 학교로 향하면 된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주차된 차를 빼느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겠고, 도로를 빠져나오려는 차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를 필요도 없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었다’ 는 핑계가 더이상 안 통하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있는 것처럼, 공중에도 배낭로켓 휴게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배낭로켓에 넣을 연료를 충전해야하기 때문에 스카이 휴게소에는 로켓엔진 충전소도 있어야 하고, 공중비행을 하면서 먹을 수 있는 배낭장착용 음료수나 잠시 쉬면서 먹을 수 있는 찐 감자와 떡볶이를 파는 스낵 코너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공중 휴게소에서 떡볶이 먹다가 떨어뜨리면 아래 있던 사람 머리에 큰일나겠다!
배낭로켓이 주된 교통수단이 되는 날이 오면, 케이블 TV 홈쇼핑 채널에선 배낭로켓을 메고 비행하다가 번개를 맞아 졸지에 하늘에서 통닭신세가 될 뻔 했던 사람이 등장해 ‘번개방지 헬멧’을 광고하는가 하면, 늦잠을 자느라 지각한 초등학생이 배낭로켓인줄 착각하고 자신의 책가방을 메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가 사고를 당한 소식이 저녁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할지 모른다.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 마법사의 돌’ 에 나오는 ‘퀴디치’ 게임을 기억하는가? 7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 팀이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서 4개의 공을 놓고 벌이는 경기인 퀴디치 게임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만약 배낭로켓을 타고 공중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스릴 만점의 퀴디치 게임이 이제 더이상 환타지 소설 속 게임이 아니라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된다. 마법을 통해 힘과 속도가 조절되는 빗자루가 액체 연료를 가득 실은 배낭로켓으로 대치된 것일 뿐, 마법사들만의 스포츠가 우리 머글들의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배낭로켓 여행자는 인간폭탄!
배낭로켓이 일상화된 세상이 온다고 해서 늘 흥미진진한 일들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사망률을 차지하는 자동차 사고가 줄어드는 대신 ‘배낭로켓 여행자들의 충돌’ 이라는 새로운 신종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공중비행교통법의 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로켓 비행법을 배우고 익히도록 배낭로켓 면허증을 딴 사람만이 배낭로켓을 멜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비행 중 배낭로켓의 고장은 곧바로 ‘추락’ 을 의미하며, 이는 부상을 넘어서 죽음과 맞닿아 있을 만큼 매우 치명적이다. 로켓은 산화제를 이용해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연소가스를 엔진의 노즐 밖으로 방출함으로써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날아간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이 공중을 휘젓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배낭로켓은 인화성 폭발물로 가득 찬 ‘배낭형 폭탄’ 인 셈이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로켓으로 문헌에 기록돼 있는 중국의 ‘비화창’ 은 1232년 몽고와의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였는데, 창에 매달아 놓은 통에 화약을 넣고 불을 붙이면 화약이 타면서 뒤로 분출되는 연소가스의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가게 만든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인 고려 말 최무선의 ‘주화’ 역시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배낭로켓을 탄 사람이 기계고장으로 갑자기 추락하거나 출발할 때 연소가 불량해 엉뚱한 곳으로 발사된다면, 그 안에 탄 사람은 영락없이 비화창의 ‘창’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낭로켓 안전 비행을 위해선 서로 접근하면 경고음을 보내는 장치도 부착해야 하고, 길을 잃고 공중을 헤매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공위성에서 지리 정보를 전송해주는 위성항법장치, 즉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도 구축해야한다. 예기치 못하게 철새 떼를 만나는 일이 없도록 철새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발생하는 음파 발생기도 챙길 것!
배낭로켓은 이미 만들어졌다
사실은 배낭로켓이 실제로 만들어진 적이 있으며 수많은 연구진들에 의해 교통수단이나 군사무기로 사용될 수 있도록 연구된 적이 있었다. 1953년 미국 뉴욕주 버팔로시에 있는 벨 항공시스템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웬델 무어는 배낭로켓(그는 그것을 ‘jetpack’ 혹은 ‘rocket belt’ 라고 이름 붙였다)을 만들어 에어쇼와 CF에 선보인 바 있는데,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 배낭로켓은 1965년 할리우드 영화 ‘007 썬더볼 작전’에서 제임스 본드의 화려한 무기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배낭로켓에 대한 기술적 우려가 웬델의 배낭로켓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초창기 웬델 무어의 배낭로켓은 30kg 정도의 무게였는데, 그러다보니 20초 이상 비행을 하는 것은 무리였고, 그 후로 등장한 것들도 대개 5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꿈의 비행장치’ 가 아니라 ‘무늬만 배낭인 무거운 글라이더’ 에 불과했던 것이다.
군사용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미공군과 대량판매 계약 직전까지 갔었지만, 곧바로 쓸모없는 무기임이 드러났다. 남에 눈에도 잘 띄고, 속도도 느리며, 엔진소리도 시끄러운 데다가, 무엇보다도 아무런 자기방어기제가 없어서 밑에 있는 사람이 총을 쏘면 그냥 맞아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적절한 용도를 찾지 못하고 지금은 ‘아주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이제는 사라진 운송수단 13’에 뽑혀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전시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구름을 산책하고 아파트 21층을 단번에 올라갈 배낭로켓의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안전성의 문제, 효율성의 문제, 그리고 기술적인 한계까지. 만화 같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결코 만화처럼 간단하진 않다. 그러나 ‘차세대 연료’ 후보들이 앞다퉈 개발되고 있는 요즘, 배낭로켓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잉태되고 있다.
문득 어깨에 멘 가방이 유난히 무겁다고 느껴지는 하교길엔 그 가방이 로켓이 되어 함께 날아가는 상상을 해보자. 집 앞까지 멋진 비행을 도와줄 나만의 로켓이라는 즐거운 상상. 무거웠던 가방이 가벼워지면서 낯선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