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발생한 전자제품 폭발 사고로 일반소비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올해 신고된 전자제품 화재 및 폭발 관련 신고건수는 약 2천여건. 이 중 전기압력밥솥과 휴대전화 폭발 관련 사례가 올들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0년 1월-2004년 3월 사이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압력밥솥 폭발 관련 상담 사례만도 모두 1백35건에 이른다.
하지만 관련 기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고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뚜렷한 폭발원인과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제조사와 소비자 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학동아가 첨단 과학수사의 산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와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 시험검사소의 도움을 받아 최근 잇따라 일어난 전자제품 폭발 원인을 진단했다.
폭발의 물리학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폭발을 물리적 폭발과 화학적 폭발 두종류로 구분한다. 물질의 상이 바뀌거나 물리적인 변형, 전기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폭발이 물리적 폭발이라면 화학적 폭발은 폭약이나 화약, 또는 화재로 인해 일어난다. 이 가운데 전자제품과 관련된 폭발은 물리적 폭발에 속한다.
물리적 폭발은 다시 파열, 증기폭발 전선폭발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파열은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가스통이 폭발한 경우다. 한마디로 압력을 견디지 못해 표면이 찢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스통이나 타이어의 경우 폭발이 아니라 파열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증기폭발과 전선폭발은 진정한 폭발의 반열에 든다. 이 경우 불꽃이 일거나 폭발 위력이 제법 센 편이다. 최근 잇따라 터진 전기압력밥솥 폭발이나 보일러 폭발은 증기폭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액체에서 기체로 급격한 상변화가 일어나면서 발생하는 증기폭발은 경우에 따라 큰 피해로 이어져 주의가 요구된다.
전선폭발의 메커니즘은 모든 전자제품 폭발을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리로 통용된다.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폭발로 발생한 화재가 바로 그런 경우. 하지만 이 역시 일반적으로 불꽃이 이는 정도에 그칠 뿐 폭발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다.
국과수 김윤회 물리분석과장은 “사람들은 보통 소리나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 폭발이란 용어를 쓰지만 상당수 적절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폭발은 순간적이고 응축된 힘의 작용인데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폭발은 대개 찢어지거나 타다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고된 휴대전화 폭발사고의 상당수도 따지고 보면 과열충전이나 내부(손상에 의한) 결함 때문에 일어난 화재 사고들이었다.
휴대전화 연쇄 폭발로 촉발된 위기감
얼마 전까지도 전자제품 폭발의 1순위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이었다. ‘일가족 몇명이 TV를 함께 시청하다 갑자기 폭발한 브라운관 파편에 날벼락을 맞았다’ 는 얘기는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던 단골기사였다.
하지만 TV 브라운관 폭발은 엄격한 의미에서 폭발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내부가 진공상태인 브라운관에 충격이 가해지면 표면이 깨지면서 갑자기 안으로 밀려들어간 공기로 순간 ‘퍽’ 소리가 날 수 있다. 내부 압력이 갑자기 외부로 빠져나가는 ‘압력해방’ 현상의 역과정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브라운관 파편이 바깥쪽으로 튀는 일은 이론상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폭발로 입은 화상도 깨지면서 2차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불꽃이 주변 물질에 인화되면서 발생한 화재 때문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브라운관 폭발 기사는 이같은 간접 피해 때문에 생긴 일종의 오해라는 얘기다.
소보원 이대훈 기술위원은 “TV폭발과 함께 일반적인 전자제품 폭발은 그안에 있던 축전기가 터지거나 전기회로가 합선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수만V의 고압이 가해지는 전자 회로에 쌓인 먼지나 물로 생긴 얼룩이 합선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 책임 소재를 놓고 소비자와 업체 사이엔 종종 논란이 일곤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잇따라 발생한 휴대전화 폭발사고는 전자제품 안전에 대한 기존 인식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휴대전화는 일상에서 자주 쓰는 전자제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혹시 내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폭발한다면’ 이란 불안감이 사용자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는 왜 폭발했을까. 일단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폭발 역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폭발이라기보다 갑작스런 연소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국과수 김윤회 과장은 “휴대전화 폭발은 일종의 전선폭발로 분류한다”고 말한다. 전선폭발이란 전기가 합선될 때처럼 도체간 절연이 파괴돼 순간적으로 전류가 무한히 흐르면서 발생한 열로 고체 도체가 기화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도체가 구부려 지거나 이음새가 고르지 않아 저항성분이 클 때 자주 발생한다. 지난 2000년 전국 통신망을 한때 마비시킨 여의도 지하 전력구 화재 역시 전선 사이 이음새가 고르지 못해 생긴 저항성분이 커지면서 발생산 고열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휴대전화 폭발도 이처럼 배터리 내부 절연체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일어난다. 현재 국산 휴대전화에 많이 쓰이는 배터리는 대부분 리튬이온 배터리. 리튬이온 배터리는 기존 휴대전화에 많이 쓰던 니켈 배터리나 니켈카드뮴 배터리에 비해 작고 가벼우며 수명이 길다. 같은 무게라도 전기용량은 2배 이상이기 때문에 산악지형이 많아 전지 전력이 많이 필요한 국내 실정에 알맞다.
이같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흠이 있다. 일반 리튬 금속은 물이나 공기와 활발히 반응하는 불안정한 성질이라는 점이다. 리튬은 작은 수분에도 강력히 반응해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런 독특한 성질 때문에 일반적으로 리튬을 전지에 사용할 때는 이온상태로 주입한다. 상대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주입된 유기 전해물질 역시 연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리튬이온이 통과하는 유기전해물질은 인화성이 매우 강해 폭발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사용상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고 건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금속성 물질이 배터리 외부 전극에 닿아 양극 사이에 전류가 무한히 흐르는 단락(쇼트) 때문에 발생한 사고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단자 사이에 접촉한 금속이 단락을 일으켜 전류가 무한히 흐르면서 배터리 표면을 태워버린 것이다. 지난 4월중순 한 중학생 교복에서 발생한 폭발도 주머니 속에 넣어둔 열쇠고리가 문제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배터리에 고열 혹은 강한 충격을 주거나, 물에 젖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해물질을 둘러싼 표면에 외부 충격으로 상처가 생기면 배터리 내부로 습기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습기와 내부물질 사이에 강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불볕 더위에 차안에 두고 내리거나 애완견 주변에 전화를 방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지나친 충전도 유의사항. 최근 불량 충전기 사용으로 인한 화재 사고가 크게 늘어났다. 보통 휴대전화는 방전이나 충전시 리튬이온은 책갈피에 끼워지듯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층으로 들어간다. 리튬이온이 음극의 여러층 사이로 차례로 들어가므로 배터리 충전 속도는 느린 편이다.
하지만 강제로 급속충전을 할 경우 이런 구조에 무리가 간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휴대전화를 강제로 급속 충전시키면 안정되게 쌓여 있는 구조가 깨지고, 과도하게 충전시키면 리튬 금속이 생길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한다.
정품 충전기에 과도한 충전을 막는 프로세서가 들어가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안전기준에 못미치는 불량, 불법 충전기를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입을 모은다.
수백kg 보일러도 날려버리는 증기의 힘
올해 들어 특히 많이 발생한 전기압력밥솥 폭발은 내부 증기압을 솥이 견디지 못해 일어난 사고들이다.
전기압력밥솥은 솥 전체에 전해지는 열과 증기압을 이용해 밥을 짓는다. 내부 증기압이 올라가면서 끓는점도 높아져 기존 밥솥에 비해 밥이 상대적으로 푹 익는다는 점이 주부들 사이에 인기 비결이다. 압력밥솥의 경우 내부 증기압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압력조절장치가 작동해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구조다.
최근 주부들을 불안에 떨게 한 압력밥솥 폭발 사고는 이런 압력조절장치가 고장났거나 솥 구조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압력밥솥은 뚜껑을 닫고 안전 손잡이를 돌리면 뚜껑 안쪽에 달린 톱니바퀴 모양의 체결부가 돌아가 내솥의 돌출부문과 정확히 맞물리게 설계돼 있다.
그러나 만일 제작상 결함으로 내솥의 잠금 부분이 맞지 않아 뚜껑이 덜 잠겨졌거나 정확히 맞물리지 않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뚜껑 잠금부분이 이탈하면서 갑자기 내부 압력이 떨어져 증기폭발현상을 일으킨다. 결국 취사 도중 높아지는 내압을 못견디고 뚜껑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증기폭발이 일어나 뚜껑이 멀리 튀어나간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국과수 김윤회 과장은 “밥솥 내부의 높은 압력이 갑자기 떨어져 과열액체 상태인 물이 일시에 수증기로 바뀌며 발생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높은 압력과 온도에서 밥이 끓다가 솥의 균열이나 약한 부분을 통해 증기가 빠져나가 버리면 증기압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물(과열액체)이 급격히 수증기로 바뀌며 부피가 팽창한다는 것. 그 위력은 내부 압력과 물의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는 물 부피가 최고 1천3백배 이상으로 커질 정도다.
김 과장은 지난 1998년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한 호텔에서 발생한 보일러 폭발사고를 떠올렸다. 클린턴 대통령이 묵을 호텔 지하에 설치된 대형 보일러가 폭발한 것. 폭발 현장은 테러로 의심할 정도로 참혹했다. 당시 경호관계자들을 긴장시켰던 이 사고는 결국 보일러 결함 때문에 일어난 폭발로 결론이 났다. 대형 건물의 난방용 보일러다 보니 용접한 곳이 많았고 이 때문에 약한 용접부가 정상작동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되면서 내부압이 떨어져 급격한 증기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이밖에 내부 압력을 자동 조절해주는 압력조절장치에 이물질이 끼어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부 증기가 빠지지 않아 압력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 과장은 “보일러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보통 밥솥 폭발은 뚜껑만 날아가는 정도일 뿐 파편이나 불꽃이 튀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밥솥과 뚜껑이 결합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솥 전체 재질은 증기압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다. 지금까지 일어난 밥솥 폭발에서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도 뚜껑만 날아갔기 때문이다.
제품결함으로 현재 리콜이 시행되고 있는 전기밥솥은 LG전자 P-M과 P-Q시리즈, 1999년 6월부터 2001년 6월까지 생산된 삼성전자의 SJ-A2000, SJ-A3000모델이다.
제품 특성을 잘 알아야 안전
그릇을 겹쳐 쌓았을 때 맞물린 부분이 빡빡해져 잘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만일 그릇 안에 물이 남는 상태로 열이 가해지면 이 물기가 증기로 바뀌면서 내부에 높은 압력이 생긴다. 이때 급격히 커진 압력은 사방에 고루 전달되고 가장 약한 그릇끼리 맞물린 부분이 빠지면서 폭발이 일어난다.
전자레인지에 날계란을 넣고 데우다 종종 발생하는 폭발 현상도 이와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달걀의 겉은 단단한 껍데기(난각)에 싸여 있고, 안에는 2층의 속껍질이 있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가 계란에 닿으면 바깥쪽 흰자위 쪽부터 차례로 익으면서 굳는다. 열이 닿으면 딱딱하게 굳는 단백질 특성 때문이다. 반면 작은 공기집 속 공기는 열을 받아 운동에너지가 증가하면서 부피도 크게 늘어난다. 결국 껍질이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는 한계점에 이르면 껍질이 터지면서 폭발하게 된다.
이같은 현상은 전자레인지의 독특한 가열방식 때문에 일어난다. 대류현상을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다른 제품과 달리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로 분자를 진동시켜 에너지를 가한다. 물체 전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급작스런 상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생활 주변에서 익히 사용되고 있는 제품들이 잇따라 폭발하자 소비자들 사이엔 불안감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보원 이대훈 기술위원도 “전자제품 폭발 사고의 상당수는 소비자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위원은 “사용중 예상되는 위험은 사용설명서에 상세히 나와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 올상반기 발생한 휴대전화 폭발이나 압력밥솥 사고의 상당수는 제품 결함 때문이 아닌 소비자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소비자보호원의 시험결과 드러났다.
최근 발생한 액체 모기향 폭발 사고 역시 사용자의 그릇된 사용법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액체 모기향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액체를 뽑아낸 후 증발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에 눕혀 사용해도 문제는 없다. 다만 찌꺼기가 콘센트로 들어가거나 구멍이 막혀 내부압력이 커져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제품 설명서에는 제품을 눕혀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 사항이 적혀 있다.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주의사항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사용자가 모기향을 콘센트에 꽂아둔 채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잇따른 생활 제품 관련 피해 사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사용자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소비자 스스로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은 “지난해부터 실시된 제조물책임법(PL)은 생산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법률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의무 또한 강제한다”고 설명했다. 사용자가 제품 사용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생산자의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제품 사용에 앞서 반드시 제품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이 위원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