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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어컨 나온다

전기절약, 환경보존, 자원재활용 일석삼조 효과

 

물에어컨 나온다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 참다못해 에어컨의 스위치를 누른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올여름 전기요금이 슬슬 부담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소식 하나. 최근 전기소모가 훨씬 적은 차세대 에어컨이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햇빛을 받아 달궈진 마당에 물을 뿌리면 한결 시원해진다.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사막처럼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다. 공기가 통하는 토기에 물을 담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두면 물이 토기를 통해 조금씩 증발한다. 그러면서 열을 빼앗기 때문에 토기 안의 물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열·유동제어연구센터 이대영 박사 연구팀은 이처럼 간단한 자연현상을 적용한 신개념 에어컨을 개발했다. 이 에어컨은 어떻게 작동할까.

얇은 물수건에 실리카겔 같은 습기제거제를 대고 물수건의 온도 변화를 측정해보라. 온도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습기제거제가 물을 빨아들이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기 때문이다. 주변이 건조할수록 증발이 더 활발히 일어나 온도도 빨리 낮아진다.

물 증발하면서 열 뺏는 원리 이용
 

물 에어컨에 설치한 습기제거장치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이대영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슈퍼제습제. 실리카겔 같은 물질보다 제습 효과가 3-4배 크다고.


이와 같은 현상에 착안한 연구팀은 지름 약 8cm인 유리병 바닥에 물을 약간 채우고 병 안을 진공으로 만들었다. 병 입구를 습기제거제가 든 용기로 막고 온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22℃였던 유리병 안의 온도가 놀랍게도 10초도 안돼 0℃로 떨어졌다.

이를 응용해 연구팀은 습기제거장치와 물만 있으면 냉방이 가능한 신개념 에어컨을 만들었다. 한여름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이 에어컨으로 들어오면 먼저 습기제거장치를 통과하면서 건조된다. 그러나 여전히 온도는 높은 상태. 이번에는 물에 젖어 있는 금속망을 통과한다. 그러면 금속망의 물이 증발하면서 공기 중의 열을 빼앗아 온도가 낮아진다. 이렇게 저온저습 상태가 된 공기를 에어컨 밖으로 배출해 냉방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도가 매우 높아 습기제거장치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습기제거장치가 습기를 너무 많이 빨아들여 더이상 공기를 건조시킬 수 없게 되면 난감하다. 그래서 연구팀은 습기제거장치를 바퀴 모양으로 만들었다. 실외에서 열이나 따뜻한 공기를 공급해 바퀴의 반쪽을 말리는 동안 다른 반쪽은 습한 공기를 건조시키도록 한 것. 바퀴가 계속 회전하면서 마르는 부분과 제습하는 부분이 교체된다. 따라서 습기제거장치에 습기가 가득 차 성능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습기제거장치를 말리는데 사용된 열이나 외부공기는 다시 실외로 배출된다.

이 에어컨은 실내기와 실외기의 구분이 없는 일체형이다. 기존 에어컨과 비교하면 공기를 건조시키는 쪽이 실내기에, 습기제거장치를 말리는 쪽이 실외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또 연구팀은 습기제거장치에 넣는 습기제거제의 성능을 높였다. 종이 기저귀에 쓰이는 고분자물질이 액체를 잘 흡수한다는 점에 착안, 그 구조를 약간 변화시켜 슈퍼제습폴리머를 만든 것. 슈퍼제습폴리머는 기존의 실리카겔 같은 물질보다 제습 효과가 3-4배 더 크다.

물 에어컨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습기제거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습기제거장치를 크게 만들면 가격이 비싸진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금속망의 효율을 높이는데 힘을 쏟았다. 금속망을 이루고 있는 알루미늄 판에 물을 많이 뿌릴수록 증발하면서 많은 열을 빼앗을 수 있다. 연구팀은 알루미늄 판을 촘촘히 구부려 전체적으로 주름을 만든 다음 좁은 간격으로 여러장 겹친 모양의 금속망을 만들었다. 정해진 공간 안에 가능한 넓은 면적의 알루미늄판을 설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알루미늄 판이나 주름 사이 간격이 너무 촘촘하면 물을 뿌렸을 때 그 안에서 물이 뭉쳐 증발하지 못하게 된다. 연구팀은 알루미늄 판 표면에 코팅을 해서 물이 얇게 퍼져 잘 증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 에어컨 바람 평균 22℃
 

물 에어컨을 개발한 이대영 박사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먼저 슈퍼제습폴리머를 사용하지 않은 물 에어컨 시제품 ‘위즈 쿨’(Whiz cool)을 개발했다. 2001년 6-9월의 실제 기온 환경을 조성한 다음 시험가동해본 결과, 외부 습도가 매우 높은 4일을 제외하고는 위즈 쿨에서 나오는 바람 온도가 25℃를 넘지 않았으며, 평균 22-23℃를 유지했다. 슈퍼제습폴리머를 사용한 물 에어컨 시제품은 더 성능이 좋아 바람의 평균온도가 15℃다.

기존의 에어컨은 휘발성 액체 냉매가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해 차가워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기체가 된 냉매는 압축기에서 고온고압으로 압축된 다음 응축기에서 온도가 낮아져 액체가 되고, 다시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냉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물 에어컨은 압축기나 응축기가 필요없어 이를 가동하기 위한 전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박사는 “기존 에어컨이 사용하는 전력의 5분의 1 정도면 충분히 물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같은 냉매도 사용하지 않으므로 환경친화적이다.

물 에어컨의 습기제거장치를 말릴 때는 지역난방이나 가스, 산업폐열 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산업폐열은 공장에서 설비를 가동하고 난 후 대부분 버려지고, 지역난방이나 가스는 여름철에 사용량이 적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열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 남는 에너지 자원을 냉방에 재활용하는 셈이다.

현재 물 에어컨은 위젠 글로벌로 기술이전돼 상업화를 위한 연구와 대량생산을 위한 추가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박사는 “올해 11월경 출시 예정인 물 에어컨 가격은 30만원대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2005년이면 가정에서도 물 에어컨을 구입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의 증발을 이용한 냉방 방식이 최근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연구돼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의 경우 대형 냉장 진열대가 있는 슈퍼마켓 같은 특수한 용도에 습기제거장치를 이용한 냉방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한편 물 에어컨 이외에도 여러가지 냉방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에어컨에서 많이 사용하는 프레온 냉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프로판, 부탄 같은 탄화수소나 이산화탄소를 프레온 대신 쓰는 대체냉매로 연구 중이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불이 날 염려도 없고 쉽게 구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이산화탄소 냉매 에어컨 개발이 한창이다.

공기를 압축한 다음 갑자기 팽창시키면 온도가 낮아지는 원리를 이용한 냉방방식도 몇몇 국내 기업체가 개발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만든 압축공기 중 일부를 객실로 보내 냉방하는 것이 그 예다.

앞으로 이 박사 연구팀은 군인들이 화생방 훈련 때 착용하는 방독면이나 방독복, 운동선수 유니폼에도 물 에어컨에서 사용한 냉방 원리를 적용해볼 계획이다. 머지않아 훈련이나 운동을 오래 해도 공기가 잘 통하고 더워지지 않는 옷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200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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