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유치’ 하지만 한번 맞혀보기 바란다. KAIST 연구실 중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저온공학 연구실이다. -1백50℃, 극저온, 냉동 보존. 얘기만 들어도 한여름 무더위가 싹 달아난다. 하지만 정작 저온공학 연구실의 정상권 교수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여름을‘이열치열’로 이겨내고 있다.
“저온공학 연구실에서는 열정을 가진 자만이 ‘얼지 않고’ 극저온 실험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의 설명이다. 도대체 온도가 얼마나 낮아야 ‘극’ 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는 -2백73℃에 달하는 0K, 즉 절대영도다. 현재까지 실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는 0.28nK(1nK=${10}^{-9}$K)이다. 절대영도에 매우 가까워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체가 액화되기 시작하는 온도인 1백20K(-1백53℃) 이하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은 저온학 영역에 포함된다. 이 중 기체 헬륨이 액체 헬륨으로 변하는 4.2K(-2백69℃)보다 낮은 온도영역을 극저온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상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냉각이 관건
저온공학 연구실에서는 크게 극저온을 만드는 냉동기 개발과 저온공학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응용 기술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온도가 저절로 고온에서 저온으로 낮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따라서 온도를 낮추기 위해 대개 압축기를 쓴다. 기체를 고압으로 만든 뒤 팽창시켜 저압으로 떨어질 때 기체의 온도가 내려가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이런 방식이다.
문제는 모든 기체가 언제나 고압에서 저압으로 팽창될 때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헬륨, 수소 등은 기체의 온도가 내려갈 수 있는 한계점이 상온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아무리 고압으로 압축한 뒤 저압으로 팽창시켜도 상온에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다양한 원리를 이용한 극저온 냉동기가 필요하다.
극저온 냉동기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압의 기체를 기계적 팽창장치를 통해 외부에 일을 하게 함으로써 기체의 에너지를 강제로 감소시켜 기체의 온도를 낮추는 원리를 이용한다. 저온공학 연구실은 기체 헬륨을 사용하는 압축기를 이용해 냉동기 종류에 따라 77-1백K까지 냉각이 가능한 맥동관 냉동기를 개발했다.
이젠 점을 얼려서 뺀다
“냉동기 개발은 저온공학의 기초 연구에 해당합니다. 기계를 개발하는 일이라 좀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기초 연구를 활용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액체 헬륨을 이용한 로켓 가압시스템을 개발하는 일도 그 중 하나다. 로켓 가압시스템은 액체추진로켓에서 추진제가 터보 펌프를 통해 연소실로 원활히 공급되도록 추진제를 가압한다. 추진제 가압에는 보통 고온∙고압의 기체 헬륨을 사용하는데 기체 상태로 헬륨을 저장하면 용기의 부피와 무게가 너무 커져 결국 전체 로켓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액체 헬륨이 이용된다. 액체 헬륨은 밀도가 높아 작은 저장 용기에도 필요한 양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아리안 로켓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아리안 로켓의 경우액체 헬륨을 가압하기 위해 또 다른 상온 고압의 기체헬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무게가 줄어드는 효과를 별로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저온공학 연구실은 상온 고압의 기체 헬륨 없이 액체 헬륨을 가압할 수 있도록 탱크 내부에 전기 히터를 설치하는 새로운 방식의 가압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기냉동에 관한 연구도 한창이다. 자기냉동은 말 그대로 자기장을 이용해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원자가 자기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했다가 자기장을 없애주면 원래의 불규칙한 상태로 되돌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원자의 운동에너지가 자기 모멘트 에너지로 전환돼 온도가 떨어지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해 점을 빼는 것은 열을 이용한 의료시술법이죠. 하지만 앞으로는 점이나 암세포 같은 불량 세포를 극저온으로 냉각해 파괴하는 기술이 사용될수 있습니다.”
저온공학 연구실의 추후 연구 과제다. 극저온 냉동기술을 의학에 접목하는 것. 액체 질소나 고압의 기체산화질소를 냉각제로 사용하고, 냉각제가 들어가는 관의 지름이 1mm를 넘지 않는 초소형 극저온 냉각기를개발할 예정이다.
극저온 냉동 보관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수정체나 줄기세포, 효소 등 작은 세포들을 극저온 냉동보관하는 기술은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조직을 냉동 보관하는 기술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저온공학 연구실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극저온 연구의 메카 저온공학 연구실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