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제주 대정서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대나무예요, 대나무.” 한 학생이 칠판 앞에 걸린 스크린을 보며 외쳤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석훈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칫솔이랍니다.” 칫솔이 대나무로 둔갑한 이유는 뭘까.
이날 5, 6학년 학생 33명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마련한 전자현미경 관찰을 체험했다.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모기의 침, 파리의 눈 등 실생활에서 우리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아주 작은 부분들을 nm(나노미터, 1nm=${10}^{-9}$m) 단위까지 자세히 관찰했다. nm라는 작은 단위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이 박사는 지구와 사과의 크기를 비교해 이해를 도왔다. 지구의 지름을 1m라고 생각할 때 사과의 지름은 1nm 가량 된다.
학생들이 나노 세계에 흥미를 보이자 이 박사는 이날 사용된 주사전자현미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주사전자현미경은 전자가 물체의 표면과 반응해 표면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물체 표면의 미세조직과 입체 구조를 관찰하는데 사용된다. 평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종이 표면이 울퉁불퉁한 조직으로 이뤄져 있고, 파리의 눈이 마치 해바라기 씨처럼 보이자 학생들의 입에선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런데 파리의 눈을 관찰하는 학생들 앞에 놓인 것은 전자현미경이 아니었다. 교실 앞에 놓인 컴퓨터와 대형 스크린, 헤드셋이 전부였다. 원격실험시스템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전 본원 전자현미경동 내의 실험실에 있고, 학생들은 원격실험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전자현미경상의 시료를 관찰했다.
원격실험시스템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보유한 첨단 장비들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리모트 뷰어’(Remote Viewer) 프로그램을 이용해 원격지에서 실시간으로 실험결과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공동실험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것이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대전까지 오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실험이 가능한 이유다.
스크린에 대전 본원의 실험 운영자 이철현 박사의 얼굴이 나타나자 헤드셋을 착용한 학생이 시료를 바꿔 달라, 위치를 조정해 달라며 여러가지 주문을 했고, 제주-대전간 사이버 공동 실험이 진행됐다. 실시간 화상으로 얼굴을 보며 문자 통신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화상 채팅을 하는 듯 즐거워 보였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이미 지난 5월 전주 분소와 고성군 낙도의 초등학교를 연결해 원격실험체험을 시범 운영한 경험이 있다.
연구원측은 올해 몇차례 시범운영을 거쳐 원격실험체험을 내년부터 본격 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