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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고리, 미생물의 힘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공생이란 두가지 다른 생물체가 오랜 기간에 걸쳐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공생의 다른 한쪽을 이루는 개체가 미생물인 경우가 많다는 것.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은 생물의 생명활동과 진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의 가치를 조명하고, 미생물을 중심으로 공생의 개념과 역사를 밝힌 책이다. 40억년의 역사를 가진 생명 진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미생물이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생물학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루이 파스퇴르는 미생물 연구의 명암을 갈라놓은 장본인이다. 그는 치명적인 병원균을 연구한 뒤 멸균방법을 창안했는데, 이때부터 미생물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로운 존재로 인식됐다. 과학계의 이런 분위기는 사회에도 반영돼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들은 민중들을 박테리아로 부르기도 했으며, 수많은 전쟁에서 상대편은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로 지목됐다. 미생물이 덮어쓴 ‘박멸의 대상’이라는 오해는 미생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해왔다. 미생물이 다른 생물들의 생명활동과 진화에 도움을 주고, 미생물을 중심으로 생물이 공존하고 있다는 주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스위스 식물학자 슈벤데너가 주장했던 ‘이중가설’, 즉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공생하는 집합체며 지의류에는 두가지 생물이 공존한다는 생각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비슷한 시기 지의류와 조류의 공생을 주장한 영국 생물학자 베아트릭스 포터 역시 과학계에서 배척당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터를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위대한 동화작가로만 기억하지만, 만약 지의류에 대한 그녀의 연구가 인정됐더라면 피터 래빗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책에는 이처럼 과학기술의 한계와 시대적 배경, 정치적 편견 등으로 이단자로 몰려야 했던 미생물 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남성중심의 공격적인 세계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미생물을 중심으로 한 과학연구는 물론 그것의 사회역사적 배경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미생물 실험을 수행할만한 적절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병원균 박테리아는 전체 미생물의 일부에 불과하며, 오히려 대부분의 미생물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식량을 생산하며, 소화작용을 돕고, 자연의 순환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서로 다른 생물체가 투쟁을 하지 않고도 친밀한 관계로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해줬고, 이는 곧 공존을 중요하게 여기는 21세기의 새로운 생명모델의 바탕이 되고 있다. 티스푼 하나만큼의 흙에도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미생물이 수만가지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 움큼의 흙을 들어 올려보자.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미생물 때문에 나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느껴보자.

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일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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