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우주가 탄생한 순간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찾고 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이 상대론을 발표했던 금세기 초만 해도 우주는 정적(static)인 것으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도 상대론을 바탕으로 정적인 우주를 기술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은하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당겨지기 때문에 우주는 가만히 정적인 상태에 머물 수 없었다. 이처럼 중력으로 불안한 우주를 방치할 수 없어 아인슈타인은 은하끼리 서로 밀어낼 수 있는 힘을 '발명'했다. 즉 이러한 척력을 중력에 대항시켜 우주가 안정된 구조를 갖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이 발명은 유명한 상대론의 중력장 방정식에 우주 상수'Λ'를 갖는 항이 추가됨으로써 완료됐다.
한 점에서 폭발
그러나 1929년 미국의 관측 천문학자 허블(Hubble)은 윌슨(Wilson)산 천문대 망원경을 사용하여 은하들을 관측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모든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곧 그것이다. 최근에 대기권 밖에 설치된 우주 망원경이 허블의 이름을 딴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데 있다. 허블은 우주가 동적인(dynamic)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도입한 우주 상수는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고, 일단 아인슈타인의 '실수'처럼 취급받았다.
허블이 내린 결론은, 우리로부터 2배 3배……먼 은하는 각각 2배 3배……더 빨리 팽창하고 있어야만 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허블 우주를 '팽창우주'라고 부른다. 따라서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경우, 이번에는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우리에게 접근해와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모두 한 곳에 모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은하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팽창우주는 풍선에 찍어놓은 점들을 은하라고 생각할 때 풍선이 커지면 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그림1 참조). 풍선의 공기가 빠지게 되면 표면의 어떤 점(은하)에서 보더라도 주위의 점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떠한 은하에서 보더라도 주위의 다른 은하들은 그 은하를 향해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초 우주가 탄생한 순간 우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태초에는 모든 물질들이 한 지점에 모여 있어야 하므로 자연히 엄청나게 밀도가 높고 뜨거웠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델에서는 그러한 우주의 '알'이 원자보다도 작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대폭발(Big Bang)을 하고 차차 식어져서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팽창 우주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즉 우주에는 어떠한 '시작'이 있었다는 이론이다.
생명체의 은인, 초신성
폭발 우주론에 대해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론이 한때 주장되기도 했다. '연속 창조(Continuous Creation) 우주론'이라고 불린 이 이론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주의 모습이 똑같다는 것이다. 즉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밀도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우주론에서는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은하들이 접근은 하되, 은하들이 하나 둘씩 없어져야만 한다. 그리하여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거나 뜨거워져야 하는 일도 피할 수 있게 된다.
BB(Bing Bang)냐 CC(Continuous Creation)냐 하는 문제는 한동안 천문학계의 커다란 논쟁거리였다. 결국 논쟁은 BB의 승리로 끝나게 됐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미국의 펜지아스(Penzias)와 윌슨(Wilson)이 1964년에 발견한 '우주 배경 복사'였다. 이것으로 펜지아스와 윌슨은 노벨상을 받게 됐다.
이것은 한마디로 초기의 뜨거운 우주가 계속 팽창함에 따라 그 속에 고르게 퍼져있던 복사(빛)가 식는다는 것이다. CC는 또한 수소와 더불어 우주 내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헬륨(수소량의 약 1/3)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별의 내부처럼 충분히 온도가 높아야만이 태초 양성자와 중성자들로부터 헬륨 원자핵들이 합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BB 우주론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가모프(Gamow)는 헬륨 원자핵 생성 문제를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BB 우주론가들도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필수적인 탄소 질소 산소와 같은, 수소나 헬륨보다 질량이 큰 원자핵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그 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별의 진화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에서 질량이 큰 원소를 생성하는 유일한 천체 물리학적 과정은 별 내부에서 진행되는 핵융합 과정 뿐이다. 별은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꺼내 빛을 내면서 생성된 중(重)원소를 중심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다. 별의 일생 마지막 단계에서 격렬하게 폭발하는 초신성은 중원소를 우주 공간에 자연스럽게 퍼뜨리게 된다. 결국 모든 생명체의 은인은, 아니 은성(恩星)은 초신성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의 등장
폭발 우주론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우주 배경 복사의 등방성(isotropy), 즉 우주의 한쪽 방향을 관측하나 그 반대쪽을 관측하나 똑같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배경 복사는 모두 광속으로 우리에게 접근하여 왔으므로 태초에는 서로 만나서 섞이거나 상호 작용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 영하 2백70℃(절대 온도 3도) 정도의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관측 사실은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었다. 찬물이 담겨 있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한쪽에 부은 후 바로 물의 온도를 재면 물의 온도는 균일할 수 없는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만이 전체가 미지근한 물이 되는 것과 우주 배경 복사가 등방적이라는 것은 같은 원리에서 이해돼야만 한다.
이러한 수수께끼의 해답으로서 미국의 구스(Guth)는 인플레이션(inflation) 우주론을 도입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우주의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고 태초에 우주가 갑자기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림1)과 같은 풍선 우주의 경우 처음에는 천천히 커지다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부쩍 더 빨리 커진 후 다시 느린 팽창 속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그림2 참조).
앞서 아인슈타인이 도입했던 우주 상수는 은하와 은하를 서로 밀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동안 아인슈타인의 실수로 여겨졌던 우주상수는 오늘에 이르러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전 모든 물질이 잘 뒤섞일 만큼 충분히 작았으므로 우주 배경 복사의 등방성이 잘 설명된다. 다만 한가지 궤변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광속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림1)과 같은 풍선 우주에서 풍선이 팽창하는 속도는 광속보다 빠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팽창하는 풍선 위에서 개미가 (그림3)과 같이 걸어간다고 하자. 만일 풍선의 팽창 속도가 개미가 걷는 속도보다 빠르면 개미가 아무리 한쪽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도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게 된다. 개미가 걷는 속도를 광속이라 할 때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은 '우주의 지평선'이 된다. 그곳에 있는 은하는 우리로부터 광속으로 후퇴하고 있어야 한다.
아기 우주의 탄생
인플레이션은 현재 우주론의 표준 모델에서 우주가 시작된 지 1초 이내에 일어나야 한다. 일본의 사토와 동료들은 이 인플레이션을 이용하여 희한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는 곧 우주가 아기 우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못에 물이 얼 때 온도가 0℃가 정확히 되는 순간 물이 한꺼번에 얼음으로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서 연못 여기저기에 물이 얼기 시작하여 마침내 결정들이 서로 만나서 전체가 얼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현상도 전 우주 공간에서 일제히 시작되고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부분은 모두 인플레이션이 끝났는데 아직도 우주의 한 부분에서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으면, 이 경우에는 (그림4)와 같이 부풀어 올라 아기우주가 태어나게 된다. 물론 아기 우주는 공간적으로 '닫힌' 우주라야 한다.
공간의 휜 모양을 (그림4)에서 눈여겨보면 아기 우주는 어미 우주와 두개의 검은 구멍(black hole)으로 이어진 모양, 즉 벌레 구멍(worm hole)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벌레 구멍은 아기 우주의 '탯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호킹(Hawking)은 단순히 벌레 구멍을 아기우주라고 부르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소련의 린데(Linde)도 인플레이션 우주를 계속 연구한 결과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은 아기 우주를 만들어내는 '번식하는 우주'(self-producing universe)를 제안하게 됐다. 어느 경우든 벌레 구멍은 불안한 존재로서 곧 사라지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벌레 구멍이 사라지면 아기 우주로부터 어미 우주로 연락할 방법은 영영 없어지게 된다.
아기 우주는 또 다시 자신의 아기 우주를 낳을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된다면 우주는 순식간에 아기 우주, 손자 우주, 증손자 우주, ……식으로 번식해 무한히 많은 우주가 태어나게 된다. 물론 이 '대사건'은 태초 후 1초 이내에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도 수치 상대론(numerical relativity) 방법을 이용해 아기 우주가 태어나는 과정을 연구한 바 있었는데, 아기 우주 하나가 태어나는 데는 불과 몇 ${10}^{-43}$초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계산 결과를 얻었다. 어쨌든 분명한 일은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우리 우주는 몇 대 후손에 해당되는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족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