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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불 뿜어내는 개가 있다면?

트림 속 메탄가스로 ‘용’ 탄생

 

상상 속 동물 ‘용’ 이 판타지의 단골손님이 된 것은 어쩌면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 은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 장면과 박진감 넘치는 그래픽, 웅장한 사운드로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호빗, 마법사, 엘프, 오크 등 상상 속 종족들이 펼치는 대모험의 서사시에 빠지다보면 그들이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중 압권은 판타지 물의 단골손님 ‘용’. 반짝이는 비늘로 덥힌 긴 몸뚱이에 뜨거운 화염을 내뿜는 큰 입, 벼락 맞은 대추나무처럼 귀기가 서린 뿔, 오금을 저리게 하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스크린을 휘젓고 다니는 용을 보노라면 어느새 두 손은 주먹이 불끈!

용은 판타지 문학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사찰 기둥에 새겨진 조각에서부터 체구 좋은 깍두기 아저씨 등에 그려진 용 문신까지 우리 주변에선 신성화된 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12간지 중에서 유일한 ‘상상 속 동물’ 이 용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용에 열광하는 걸까? 멋진 외모 때문에? 천년을 산다는 질긴 생명력 때문에? 혹시 사람들이 용에 열광하는 이유가 ‘입에서 불을 뿜는 유일한 동물’ 이기 때문은 아닐까? 비록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뿐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고질라와 같은 방사능 오염 돌연변이를 만들어서라도 불을 뿜는 동물을 보고 싶어한다. 심지어 영화 ‘용가리’ 는 외계인의 힘을 빌리기까지 했으니, 불 뿜는 생명체에 관한 인간들의 욕망은 참으로 질기다. 만약 지구 생태계에 입에서 불을 뿜는 동물이 한 종이라도 있다면, 분명 사람들로부터 각별한 애정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유쾌한 상상에 한번 빠져보자. 만약 내가 우리 집 개가 짖을 때마다 입에서 불을 뿜는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이 만화 같은 세상은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끔찍한 악몽일까?

전기뱀장어의 전기발생장치 이식
 

2002년 영국의 한 도시에서 개최된 페스티벌에는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기계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개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것이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하지만 인화성 가스 메탄을 품고 있는 방귀나 트림을 하루에도 1.5L 콜라병 5개쯤 뿜어대는 동물에게 ‘용 되는 설정’ 은 영 엉뚱한 얘기가 아니다. 개 입 속에 트림이 분사되는 노즐이 있어 짖을 때마다 입에서 메탄가스를 뿜어낸다면 가능할 수 있다. 또 개의 앞니 끝에 전기뱀장어나 가오리가 가지고 있는 전기 발생 구조를 달아준다면 개 입김에 불을 당길 수 있게 된다. 만약 국제불견협회가 전기뱀장어의 전기발생장치를 이식한 개를 만드는데 성공해 분양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입에서 불을 뿜는 우리집 강아지는 나만의 훌륭한 조수가 된다. 가스레인지가 없어도 개가 뿜은 불에 프라이팬을 데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계란후라이를 해먹는다면, 여태껏 맛보지 못한 ‘재밌는 맛’ 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흡연자들의 애완견은 주인을 위해 담뱃불을 붙여주는 기특한 애교덩어리가 될 것이다.

물론 불을 뿜는 개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덜 떨어진 개가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내뿜는다면 집안 꼴은 ‘개판’ 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낯을 많이 가리는 개는 이웃주민들에게 매우 위협적 존재이기에 개를 잘 키우려면 미리 개집과 개목걸이에도 신경을 써줘야 한다.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내열강화 플라스틱으로 집을 만들어 수시로 내뿜는 불에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개목걸이 역시 힙합 스타일의 메탈소재여야만 한다. 무슨 개줄이 그렇게 비싸냐고 아무 줄에나 묶어 놓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타들어가는 불붙은 끈 때문에 바비큐가 돼버린 개를 보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뿐 아니라 새 옷을 빼 입은 주인의 품에 달려들어 불똥을 떨어뜨리는 칠칠맞은 개도 있는데, 인터넷 애견 카페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끼리의 정보공유뿐 아니라 엉뚱한 하소연의 글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 반갑다고 품안으로 달려오는 강아지를 안아주다가 그만 불똥이 떨어졌어요.. 새옷인데.ㅠ.ㅠ
- 전 그렇게 해서 못 입은 옷만 네 벌이에요.
- 님, 네 벌 뿐 이라면 양호한 편인 거죠~ 저희 집은 태워먹은 신발만 해도 10켤레가 넘습니다.
- 우리 집은 개 때문에 화재보험 들어놨어요^^;

불견을 키우는 집에선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는 수고로움이 늘어난다. 동물병원에는 자기가 내뿜은 불에 자기 털을 태운 어리버리한 개, 옆집 개와 장난을 치다가 화상을 입은 개들로 시끌벅적하다. 또 애완 불견이 감기증상을 보인다면 즉시 병원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재채기 할 때 내뿜어질 불의 위력을 매번 소화기로 제압하기엔, 너무 번거롭고 위험할 테니 말이다.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 불견의 구애작전에선 어느 서커스단 못지않은 불쇼가 벌어질 것이다. “슈우~” 한바탕 시원하게 불을 내뿜은 수컷은 암컷을 은근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이렇게나 뜨거운 놈이야.” 용기 있는 남자는 미인을 얻듯 불 잘 뿜는 수컷이 미견을 얻을 것이다.

인간과 함께 사는 불견은 주인에게 애교도 부리고 예쁜 짓도 많이 하는 친근한 동물이지만, 밀림에 들어서는 순간 기세등등한 제왕이 된다. 야생의 초원에 사는 동물들은 불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사자라 할지라도 불견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 가 된다. 사자를 호령하는 하룻강아지! 이제 ‘개 같은 내 인생’ 이란 불의 열기만큼 화끈하고, 밀림의 제왕같이 위풍당당한 삶을 일컫는 말이 될 것이다. 살금살금 남의 집 담벼락을 타넘는 밤손님들에겐, 조용하게 불을 꺼주는 휴대용 소화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필수품이 될 것이다. 행여 실수로 휴대용 소화기를 깜빡 잊고 작업에 임했다간,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신세를 져야 한다. 대문에 걸려있는 <;개조심>; 팻말이야말로 최고의 방범시설인 것이다. 불견의 출현 덕에 밤손님도 많이 줄겠지?

뜻밖의 장소에서 맹활약하는 견공들, 이른바 산업견이라 불리는 개들도 있을 것이다. 산업견들은 보통 커다란 몸집의 목청 좋은 종들이 쓰이는데, 5-6마리의 덩치 좋은 산업견들이 보일러를 둘러싸고 짖으면 보일러의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이 좋다. 산업 도우미 개들은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우기도 하고, 가마터에서 도자기를 굽기도 한다. 항상 고온의 불을 일정하게 뿜어내야 하는 산업견들에게는 별도로 제공되는 특식도 있다. 고구마와 꽁보리밥으로 만든 사료가 그것인데, 쉴 새 없이 불을 내 뿜으려면 연료 격인 방귀가 빵빵하게 채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화효소 변성으로 만성 소화불량

불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예기치 못했던 사고들도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다. 통제가 불가능한 가출견들이 뿜어내는 불로 인한 화재 속보가 속출할 것이며, 체내에 필요이상의 메탄가스가 발생한 속이 더부룩한 불견들의 ‘예고 없는 폭발’ 은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메탄은 LNG, LPG, 수소와 함께 대표적인 가연성가스다. 만약 개의 몸 안에 높은 밀도로 응축돼 있다가 불시에 산소와 산화반응을 하게 되면 개는 그 자리에서 자폭하고 만다. 2004년 1월 타이완 남부 타이난의 도로에서 길이 17m, 무게 60t의 초대형 고래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 역시 고래 내장 기관의 부패로 생긴 가스가 폭발한 것이었다.

불견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입 주변 피부조직의 손상과, 소화기능 상실로 시름시름 앓는 개들이 늘어날 것이며, 짖을 때마다 뿜어지는 불의 열기로 인한 화상으로 일그러진 개의 입은 안쓰러워서 바라볼 수가 없을 정도일 게다. 열기로 인해 아밀라아제 같은 소화효소이 변성돼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개들에게 인간은 한없이 죄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발랄한 상상력은 잠시 접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보자. 과연 개에게 불 뿜는 능력이 필요할까? 우선 개는 항온동물이며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을 가졌기 때문에 온도를 높여줄 불이 필요없다. 사람이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추는 방법으로 더위에 적응하도록 진화된 포유류라면 개는 땀샘이 없고 알래스카의 눈보라에도 견딜 수 있는 두툼한 털을 가진 추위에 강한 동물이다. 또한 사람은 빛이 있어야 볼 수 있으므로 어두운 곳에서는 빛, 다르게 말하면 불이 필요하지만 개는 사정이 다르다. 개는 시력이 매우 나빠 대부분의 지각을 후각과 청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불을 지펴도 눈앞이 깜깜하긴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불을 사용할 손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음식을 익혀 먹는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개에게는 불을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손과 손가락이 없다. 인간처럼 손이 있어 불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도 없는 개에게는 불을 뿜을 수 있는 능력은 그저 ‘쇼’ 일 뿐이다.

세상이 터무니없다고 제쳐버린 ‘상상 속 동물’ 들이 실존한다고 확신하며 그들을 좇았던 ‘그래도 그들은 살아있다’ 의 저자 로타르 프렌츠조차 불을 내뿜는 동물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고 한다. 그 역시 여린 생명체가 고온의 불을 내뿜는 일은 위험하고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물론 우리 생활에서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개가 때론 무섭고 때론 귀엽게 입에서 불을 뿜는다면 세상의 풍경은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어질 것이다.

하지만 불을 뿜는 동물과 한집에서 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 어쩌면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가깝고 친근한 친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개가 불을 뿜는 세상을 쌍수 들고 환영할 수는 없을 듯하다. 신기한 개가 사는 세상은 재롱둥이 애완견과 함께 살던 세상만큼 푸근하진 않을 테니까.

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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