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26일, 미국 벨연구소에 뉴욕타임스와 타임지 등 유수 언론사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연구소장 랄프 보운은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발명품은 가장 빼어난 협동 작업의 결과이자 산업체 기초연구의 성과이기도 합니다”라며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회견장 이곳저곳에서 기자들의 하품소리가 들렸다. ‘트랜지스터’ 란 새로운 발명품의 이름도 생소한데다 설명을 들어도 이 발명품이 어디에 쓰인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연사들은 고체물리, 반도체라는 용어를 써가며 열심히 회로도면만을 가리켰다. 결국 세기의 발명품 트랜지스터는 회견이 있고 4일이 지난 6월 30일에야 뉴욕타임스의 6줄 단신기사로 겨우 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초라하게 등장한 트랜지스터는 사실 일찍부터 기초연구에 주력한 벨연구소의 걸작품이다. 벨연구소가 소속된 AT&T사는 1907년 이래로 장거리전화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당시 AT&T사에서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리 드 포레스트 삼극 진공관을 개량하는 일이었다. 이 진공관으로는 신호 증폭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공관 개량 위해 연구 시작
193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이 연구소장을 맡게 된 머빈 켈리는 어쩌면 반도체 물질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 구상을 구체화했다. 전쟁 기간 중에 이뤄진 레이더 연구가 반도체결정 정류기가 전파신호처리에 훌륭하게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확신을 얻은 켈리는 1945년 8월 반도체 증폭기 개발 연구팀을 조직했다.
그는 뛰어난 이론물리학자인 윌리암 쇼클리와 화학자 스탠리 모건을 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다른 부서의 연구원인 실험물리학자 월터 브래튼을 이 팀에 합류시켰고, 이론물리학자 죤 바딘을 새로 채용했다. 이렇게 해서 후일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가 된 세 사람, 즉 쇼클리, 바딘, 브래튼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아이디어가 출중한 쇼클리, 실험기법개발에 뛰어났던 브래튼, 세심하고 꼼꼼한 작업으로 이론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바딘은 한 연구팀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 세사람이 빼어난 협동 작업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선권을 둘러싼 경쟁이 지배적이었다.
쇼클리는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해 이미 1945년 봄에 일리노이대 전기공학자 닉 홀로니악의 아이디어를 따서 최초의 반도체 증폭기를 직접 디자인했다. 그런데 구상과 달리 증폭기는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해 8월 연구팀이 구성되자 쇼클리는 자신의 안을 바딘과 브래튼에게 주면서 증폭기 실험을 하도록 제안했다. 한편 자신은 이론연구에만 매달렸다.
바딘과 브래튼은 쇼클리의 원래 디자인을 변경해가며 밤낮으로 실험에 몰두했다. 그러던 1947년 11월 어느 날, 브래튼은 새로 고안한 규소반도체 증폭기를 우연히 물통에다 넣고 실험하게 됐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증폭기가 미미하지만 작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바딘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반도체결정 안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잘못 알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전자들이 결정표면에서 일종의 장벽을 형성해 신호 증폭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브래튼이 증폭기를 물에 넣자 이 전자 장벽이 제거되면서 신호 증폭이 가능했던 것이다.
바딘은 증류수에 담근 규소기판에 종이두께 정도의 가느다란 금속선을 심어 접촉점을 이루게 하는 새로운 반도체 증폭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증폭기가 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만족할 만한 증폭률에 도달하기까지 규소 대신 게르마늄, 이산화게르마늄 등으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야 했다. 마침내 12월, 브래튼과 바딘은 게르마늄 평판에 금 박편을 접촉시킨 접점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바딘과 브래튼이 이 소식을 쇼클리에게 알렸을 때, 그는 대단히 기뻐하면서도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증폭기 디자인을 변경한 사실에 화를 냈다. 게다가 최초 구상자는 자신이라며 특허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벨연구소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특허권을 두 사람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다급해진 쇼클리는 자신이 직접 이 증폭기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기로 했다. 4주를 꼬박 작업에 매달린 쇼클리는 1948년 1월, 접촉 트랜지스터(일명 샌드위치 트랜지스터)를 고안해냈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는 반도체결정 표면으로 전자가 이동한다는 바딘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기반했다. 접촉 트랜지스터에서 전류는 결정을 통과해 흐르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쇼클리가 바딘과 브레튼을 배제시킨 채, 이론 연구팀과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결국 벨연구소에서 공식기자회견이 있기까지 트랜지스터 연구는 두팀에서 각각 진행된 셈이다. 이 과정에 세사람 사이에 패인 골은 깊었지만, 1956년 이들은 노벨상 공동수상자로 나란히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