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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백신의 대량생산 길을 활짝 열다

이원영교수

내후년쯤이면 누구나 부담없이 간염백신주사를 맞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간염백신의 가격이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회 주사에 1만원씩이나 들어 서민들에게 만만치 않은 부담을 주었으나 앞으로는 홍역이나 볼거리 예방주사 수준인 3천원 안팎이면 간염예방접종이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간염예방의 획기적 전기가 될 반가운 소식을 안겨준 주인공은 연세대의대 미생물학교실의 이원영교수(43). 마침 연구실에서 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를 관찰중인 이교수를 만나 이번 연구성과의 의의와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 간염백신의 양산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관심이 큽니다. 지난달 미생물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간염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염바이러스가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간염환자로부터 뽑아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간염백신을 많이 만들려면 간염환자가 많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됐지요. 사람과 침팬지만이 간염에 감염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의 연구결과는 거북이도 간염에 걸린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간염바이러스생성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해서 간염백신을 대량생산 할수 있게 된 것은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정중에 부수적으로 얻은 수확일 뿐입니다"
 

사실 간염바이러스를 세포배양방식으로 무제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부수적'이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개개인에게는 싼값에 백신을 접종받을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산업화해서 세계적인 특허·독점권을 얻을 경우 엄청난 외화획득도 기대되는 것이다.
 

- 도대체 어떤 연구과정을 거쳐서 그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나요.
 

"지난 84년초 거북이 30마리에다가 간염환자에게서 뽑아낸 B형간염바이러스를 투입한 뒤 2주일만에 검사를 해보았어요. 그랬더니 45%가 간염에 감염됐더군요. 다시 1달만에 보니까 1백%가 감염됐는데, 46주가 지나니까 거북이의 몸에서 항체가 생기면서 B형간염바이러스도 점차 없어지는 것이에요. 이 과정에서 간염바이러스를 계속 생산해낼 수 있는 세포배양에 성공한 것입니다"
 

- 많고 많은 동물중에서 하필이면 거북이가 간염의 감염숙주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읍니까.
 

"해변가에 사는 사람들의 간염보유율이 높다는 어느 학생의 연구에서 실마리를 잡았지요. 그리고 간염보균자가 가장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침팬지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다른 동물을 찾다가 거북이에 착안을 한 것입니다"
 

- 그러면 앞으로의 간염연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침팬지 이외에는 마땅한 실험동물도 없었는데 이제 거북이라는 편리한 실험동물이 발견됐으니까 아마도 간염은 물론 간암의 연구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B형간염바이러스가 간암과 연관됐음을 보여주는 데이타가 있으므로 간암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비밀을 캐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원영교수는 원래가 암바이러스가 주전공인 소장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암정복은 언제나 가능할까.
 

"암연구에 몰두할수록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느낌입니다. 암을 박멸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암은 한마디로 세포유전자에 관한 것이므로 사람이 일단 태어난 이상은 암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다만 누가 더 빨리 암을 촉진시키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통제는 가능합니다. 암세포와 같이 사는 방법을 연구할 따름입니다"
 

-바이러스와 관련된 이교수의 연구업적이 큰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 중에는 키가 작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도 있다고 들었읍니다만···.
 

"네, 그것은 뇌하수체의 성장호르몬을 배양해서 키작은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요. 키작은 사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뇌하수체가 모자라서 키가 작은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이지요. 이론적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1년에 10cm 정도는 더 자라게 할 수가 있읍니다"

어떻게 보면 미생물학 교수는 의과대학 안에서 독특한 존재라 할 수 있다. 흔히 의대교수는 의사를 겸하고 있는 게 상식이지만 이교수 같은 사람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다. 물론 기초의학인 미생물학 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미생물학을 택한 동기는 무얼까.
 

"바이러스질환에 걸리면 항생제가 없어 쩔쩔매는 것을 보고 이 방면의 연구를 해볼 결심을 했지요. 미생물학이란 게 가만히 앉아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인데, 실은 유전공학같은 첨단과학도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 우리나라의 미생물학 연구수준은 어느정도입니까.
 

"시설수준으로는 일본에 비해 10년가량 뒤졌다고 봅니다. 현미경 하나에 3만달러나 드는데 연구비 몇백만원 가지고는 장비 하나 사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러나 연구원의 수준은 고르지는 않습니다만, 근래에 매우 높아진 것 같아요"
 

40대 초반의 소장학자로서 계속해서 주목받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는 이원영교수는 충북 청주출신. 대학에서는 축산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나온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암바이러스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세계적인 명문 의과대학인 미국의 '존스 홉킨즈'에서였다. 이 방면의 석학인 '게이'(G.O. Gay)교수와 '뱅'(F. Bang)교수의 지도를 받는 '행운'을 누려 오늘날의 연구활동이 가능했다는게 이교수의 솔직한 고백이다. 부인 김정순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가 역학(疫学)전공이어서 집에서도 연구와 토론이 가능한 것도 또하나의 행운이란다.
 

- 앞으로 또 한번 커다란 뉴스거리를 제공하실 계획은 없읍니까.
 

"암을 잡아야죠. 앞으로 시끄러운 게 하나 터질 겁니다"
 

미생물학 교실 연구원들과의 공동연구
 

198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사 편집부 기자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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