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4시간 밤하늘 연구하는 시대 열린다

한국, 미국에 1m 무인관측망원경 설치 가동

 

천문대는 대부분 효율적인 관측을 위해 인적드문 산속에 세워진다. 이는 오히려 관리비와 인건비의 증가를 가져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오래전 천문대는 미래를 점치고 나라 살림을 운영하는 밑거름이었다. 신라 첨성대처럼 선조들은 왕궁과 관청 가까운 곳에 천문시설을 세우고 밤새 일어난 천기의 변화를 빠르게 국정에 반영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천문대는 대부분 높은 산에 위치해 있다. 왜 이처럼 외딴 곳에 천문대를 세웠을까?

천문학자들은 주로 매우 미약한 별빛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천체는 상대적으로 인공 불빛보다 밝기가 낮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인공 불빛이 너무 밝아 별이 뿜어내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빛을 가리는 것이다. 날씨가 맑은 날조차 도심 한복판에서는 아주 밝은 별 몇개만을 겨우 관찰할 수 있을 뿐, 하늘의 별보기는 별따기만큼 힘들다. 그래서 여름철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를 보려면 가로등 없는 시골로 가야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불빛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밤하늘 보기가 더 수월해진다.

16세기초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한 역사상 첫 인물이다. 그가 망원경을 이용해 목성 주위를 맴도는 4개 행성을 발견한 뒤로 좀더 밝게, 좀더 멀리, 좀더 세밀히 우주를 관측하려는 인간 욕망은 더 큰 망원경을 요구했다. 그래서 수많은 천문대가 세계 곳곳에 세워졌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천문학 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은 1978년 충북 단양 소백산천문대에 직경 61cm 광학망원경을 설치하면서 국내 천문 관측 연구에 첫 불을 지폈다. 소백산천문대에 설치된 망원경은 주로 태양 인근의 별, 특히 빛의 변화를 연구하는 변광성(變光星) 관측에 활용되고 있으며, 아울러 광학관측전공자 배출에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소백산 망원경만으로는 천문 연구에 많은 제한이 따랐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6년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에 국내 최대의 1.8m 광학 망원경이 설치됐다. 보현산 관측망원경은 별들의 무리인 성단(星團)과 은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관측 임무를 담당한다. 특히 2003년 새로 도입된 고분산분광기는 국내 기술진이 자체 제작한 것으로 현재 별의 스펙트럼에 대한 정밀 관측에 활용되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천문관측 가능
 

레몬산 원격무인관측시스템은 세계에서 몇대 없는 첨단 천문관측장비로 일찍부터 외국천문학자들에게 관심거리가 됐다. 저녁 노을이 지는 가운데 관측 준비를 하고 있는 레몬산무인천문대.


우리나라 기상 여건은 천체관측연구 측면에서 보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광학망원경을 설치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라는 소백산천문대와 보현산천문대 마저도 연중 천체관측일이 약 1백30-1백70일 정도로 1년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더구나 구름이 밤새도록 전혀 끼지 않는 쾌청일 수는 몇십일에 불과해 관측 연구주제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천문연구원은 독특한 계획을 추진했다. 미국에서 제작한 1m 자동망원경을 국내로 가져오지 않고 기상 조건이 좋은 미 애리조나주 레몬산에 설치키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 2일 레몬산무인천문대는 공식적인 현판식을 거행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해발 2천7백76m에 위치한 레몬산천문대는 연중 관측 가능일 수가 2백50일 안팎이다. 특히 우기인 7월 중순에서 9월 초순까지를 제외하고 매달 20일 이상 관측이 가능하며, 밤새도록 쾌청한 날도 연간 1백일에 이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터넷을 통해 무인원격관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산 위에 오랫동안 머물며 관측 임무를 수행하는 일은 산의 높이와 건조한 기후 탓에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연구여건이 좋다지만 운영 인력을 해외에 장기 상주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이 때문에 현지에 망원경 설치를 결정했을 때부터 무인원격운영체계 도입이 검토됐다.

망원경뿐만 아니라 관측돔, 관측용 카메라, 자동추적장치 등 무인천문대의 모든 장비들은 원격관측을 위해 컴퓨터로 완벽히 제어하도록 설계됐다. 또 관리자 눈을 대신할 감시용 카메라, 현지 기상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한 기상 감시 장비를 도입했다. 주요 관측 장비와 각종 제어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인터넷을 통해 장비를 초기화시켜 원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도 마련됐다. 이는 장비 불안정으로 인한 관측 시간의 손실을 줄이고 유지관리를 위해 산에 직접 올라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물론 무인관측의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레몬산무인천문대와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2002년 천문연구원과 연세대가 공동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덜랜드천문대에 설치한 50cm 광시야 망원경도 일종의 무인관측체계다. 이 망원경은 로봇기술을 사용해 현지 기상 조건에 따라 남반구 하늘을 자동 관측하도록 프로그램됐다.

원격관측시스템과 로봇 관측시스템의 차이는 망원경의 활용 범위에 있다. 원격관측시스템은 관측자가 관측시간을 배정받아 해당시간에 망원경을 비롯한 각종 관측 장비를 직접 운용하면서 원하는 관측자료를 얻는 방식이다. 반면 로봇관측시스템은 사람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 컴퓨터가 알아서 미리 정해놓은 방식으로 관측하는 체계다.

무인관측기술은 최근 컴퓨터와 자동제어시스템, 디지털 카메라, 네트워크의 발달에 힘입어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실제 무인관측기술이 도입되면서 연구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봇기술을 응용한 무인 자동화 망원경은 레몬산 원격관측망원경과 남아프리카공화국 50cm 광시야망원경을 포함해 현재 80여개가 세계 곳곳에서 가동중이거나 제작 설계 단계에 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실제 가동되고 있는데, 대부분 직경 50cm 이하인 이 망원경들은 변광성이나 감마선 폭발, 행성에 의한 별표면 가림현상 등 전천 관측 임무를 띤다. 직경 1m급 망원경은 단지 몇개만이 운영되고 있으며 소행성이나 혜성같은 지구접근천체를 탐색 관측하는 특수 목적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또 기존에 사용됐으나 대형망원경의 도입으로 활용도가 낮아진 1m급 망원경에 자동제어장치를 탑재해 전방위 관측연구나 일반 교육에 활용하기도 한다.

로봇 기술을 이용해 전방위 관측 임무를 띠고 있는 망원경은 페루대의 자동이미지망원경, 제네바천문대의 오일러, 레몬산 인근의 투산에 설치된 자동망원경글로벌네트워크, 캔터키대 등 3개기관이 추진중인 로봇제어망원경 프로젝트 등 아직까지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북남미로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 설치돼 독립적인 원격 연구를 수행중이며 네트워크로 연결돼 국제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또 전문가 양성은 물론 일반인 대상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천문대는 12곳으로 관측교실을 열어 실제 운용되고 있거나 건축중에 있다. 이들 로봇 무인천문대는 태평양에서 북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 세계 곳곳에 설치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관측정보와 교육자료를 제공한다.

레몬산천문대 망원경을 이용한 연구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뉘어 수행될 예정이다. 1m급 중소형망원경을 이용한 연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광(變光)천체 관측이 바로 그중 하나다. 맥동변광성, 식쌍성, 초신성, 활동 은하핵, 감마선 폭발, 외계 행성에 의한 별표면 가림현상과 같은 변광천체에 대한 관측은 대부분 하루에 1-2개 천체의 밝기를 지속적으로 추적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원격관측시스템의 도입은 꼭 필요했다. 현재 관측장비 뿐만 아니라 원활한 연속 관측을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우리 연구진에 의해 개발이 끝난 상태다.

레몬산무인천문대의 또다른 임무는 성단이나 가까운 외부은하의 표준화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얻기 위한 관측업무다. 천체의 표준화는 쾌청일수가 적은 국내 기상 여건을 감안할 때 천문연구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꼭 필요한 전제다.

현재 레몬산무인천문대에 설치된 촬영용 카메라는 일반 사진필름보다 큰 50×50mm²크기의 고체촬상소자(CCD)칩을 장착하고 있어서 22.5× 22.5arcmin²(제곱각분, 달의 시직경은 약 30각분) 정도의 넓은 영역의 관측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넓은 관측 영역은 산개성단이나 외부 은하처럼 광시야 관측이 요구되는 연구 분야에 매우 유용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또 무인천문대는 천체 관측 시간을 대폭 연장한다. 무인천문대가 설치된 레몬산은 우리나라와 8시간차 거리에 떨어져 있다.이 때문에 소백산천문대와 보현산천문대의 장비를 함께 활용한다면 하루 16시간 이상 연속해서 천체를 감시하게 된다. 특히 변광성 연구가 활발한 유럽과 공동 연구를 벌인다면 24시간 내내 특정 변광 천체의 밝기 변화를 관측할 수 있다.

이처럼 무인 천문대는 국내 천문학계에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텄다. 보현산천문대와 소백산천문대의 경우처럼 레몬산천문대 망원경도 1년에 2번씩(상반기 2월-6월, 하반기 9월-다음해 1월)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대학과 연구소 천문 연구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초기에 형성된 오래된 은하나 외계행성체 관측 연구처럼 현대 천문학은 여전히 큰 규모의 광학 장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와이에 있는 직경 10m인 켁(Keck) 망원경은 지금까지 설치된 가장 큰 규모의 광학망원경이다. 천문연구원은 2001년부터 하와이에 설립된 캐나다-프랑스-하와이 망원경 천문대(CFHT)의 3.6m 망원경을 천문 연구에 실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켁 망원경보다 훨씬 큰 직경 30m-1백m 규모의 초거대 광학망원경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무인원격관측시스템과 무인로봇관측시스템 기술은 최근 여러나라로부터 첨단 관측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앞으로 건설될 초거대망원경에도 이 기술이 도입될 전망이다. 그래서 이번 레몬산 무인천문시스템 구축 성공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레몬산천문대 망원경으로 원격 관측한 고래자리에 위치한 외부은하.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승리 선임연구원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