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유전자가 세포 내에서 어떻게 암을 억제하는지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연구사업인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 중 ‘암관련 후보유전자 기능연구’ 과제의 연구책임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임대식 교수와 송민섭 박사. 임 교수와 송 박사 연구팀은 인체 내에서 폐암, 위암, 간암, 뇌암 같은 여러 암이 발생하고 증식하는 과정을 억제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던 항암 유전자 ‘라스에프원에이’(RASSF1A)에 주목했다.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는 사람의 3번 염색체에 있다. 이 유전자는 p53 또는 ATM 등 다른 암억제 유전자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정상세포에서는 발현되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초기 암세포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암 발생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임 교수 연구팀은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를 없앤 세포가 정상세포에 비해 세포 분열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라스에프원에이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세포가 두개로 분열하는 과정을 촉발시키는 사이클린을 비롯한 여러 단백질을 안정화시킨다. 정상세포에서 라스에프원에이가 발현되지 않아 이와 같은 기능을 할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세포 분열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이 불안정해진다. 그 결과 세포가 지나치게 빨리 분열하면서 암세포로 변형된다는 얘기다.
또한 연구팀은 라스에프원에이 단백질이 분열된 두 세포에 염색체가 꼭 절반씩 분배되도록 조절하는데도 관여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염색체가 비정상적으로 나눠져도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2년여에 걸쳐 얻어낸 이같은 결과들을 종합해 연구팀은 “암 발생 초기에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 발현이 줄어들면 염색체에 이상이 생기거나 세포 분열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져 결국 악성 종양으로 진행될 수 있다” 는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이 가설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세포생물학’ 2월호에 커버스토리로 게재됐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의 역할을 상세히 규명해냈다는 점에서 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가 없는 생쥐 모델을 만들어 추가 연구를 진행중이다. 또한 암에 걸린 환자에게서 얻어낸 시료를 분석해 라스에프원에이 유전자 발현 여부를 암 조기진단에 응용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임 교수는 “이 가설은 향후 항암제 개발에도 중요한 정보로 이용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