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는 최고의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가 등장한다. 이들 부자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크레타섬의 미궁에 갇힌다. 이후 다이달로스는 태양과 바다의 신에게 들키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비행을 생각해낸다. 다이달로스는 탁월한 솜씨로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과 함께 이 날개를 걸치고 최초로 비행의 꿈을 실현시킨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유를 만끽하고자 높이높이 비행한다. 결국 그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40km 상공에서 서바이벌
최근 기구를 이용해서 최고의 비행고도를 기록하고자 하는 현대판 이카루스의 모험이 있었다. 지난해 9월 3일 영국 남서주 콘웰 해변에서 이카루스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앤디 엘슨과 콜린 프레스콧이 헬륨가스 기구를 타고 40km 상공으로 올라가려 했던 것. 1961년 수립된 유인기구비행 최고기록인 35km를 깨려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이번 탐사의 총책임자인 엘슨(49)은 항공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기구를 직접 제작했다. 1980년대부터 기구에 빠져 세계최고 수준의 기구비행 경쟁에 도전해오고 있다. 그는 1991년 고(高)고도 비행이 쉽지 않은 열기구를 타고 에베레스트산 정상보다 높은 고도에 오르는데 최초로 성공하기도 했다. 함께 도전에 나선 프레스콧(53)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열기구 운영회사인 플라잉 픽처스 사의 경영책임자다. 그가 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아프간의 공주가 25살의 프레스콧을 기구에 태워줬다. 이때 처음으로 기구를 타본 프레스콧은 이후 꾸준히 기구와 관련된 일에 몸담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40km 상공은 어떤 환경일까. 40km 상공은 성층권에 속한다. 성층권은 10-50km 영역의 상공으로, 목표고도인 40km는 성층권에서도 상층부에 해당한다. 이곳의 대기환경은 화성 표면과 비슷하다. 영하 70℃에서 영하 25℃까지 극심하게 온도가 변한다. 또한 대기압은 지상의 1/10도 안된다. 엘슨은 “24km가 넘는 고도에서는 대기압이 너무 낮아서 수초만에 피가 끓어버린다”며 낮은 대기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명했다. 한편 40km 상공은 공기압력이 낮으므로 생존에 필수인 산소 또한 매우 부족하다. 인체에 해로운 태양 복사도 상당하다.
이런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구 탑승자는 반드시 우주복을 착용해야 한다. 이들이 입는 우주복은 지난 50여년 간 러시아 우주계획에서 활용됐고 현재 국제우주기지의 우주비행사가 입고 있는 즈베즈다다. 우주복은 인공적으로 지상과 같은 압력과 온도 환경을 마련해주고 산소를 공급해준다.
기구 탑승자는 다양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번 비행을 지원한 영국 키네티크사 내 휴먼사이언스 센터는 기구 탑승자 엘슨과 프레스콧에게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목표고도의 환경을 경험해보는 고고도 챔버 내 훈련이다. 엘슨과 프레스콧은 고고도 비행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저산소증에 대비한 훈련을 받았다. 매우 짧은 시간에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집중하거나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저산소증을 감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백층 건물 높이의 기구
엘슨과 프레스콧이 타고 갈 기구의 이름은 ‘키네티크1’(QinetiQ1). 이 기구는 지금까지 제작된 유인기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길이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3백81m다.
고고도 비행용 기구는 일반 기구와 달리 지상에서 띄워질 때 완전한 구 형태를 갖추지 않는다. 높은 고도로 올라갈수록 대기압이 떨어져 기구가 점점 부풀어오르기 때문이다. 헬륨가스를 기구 상층부에만 일부 채우고 올라간다. 기구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의 대기압이 줄어들면서 둥근 모양을 갖추게 된다.
기구의 재질은 폴리에틸렌인데, 가정용 랩처럼 매우 얇다. 폴리에틸렌은 잘 늘어나지 않아 헬륨가스가 밖으로 새지 않을 뿐 아니라 얇으면서도 상대적으로 튼튼해 무게를 줄여준다. 그래서 성층권 비행기구에는 이 재질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번 도전은 유인기구비행 최고고도 기록과 함께 몇가지 임무가 포함돼 있었다. 키네티크1에는 탑승자가 머물 곤돌라가 매달리는데 곤돌라에는 우주복사를 측정하는 장비, 우주먼지를 모으는 끈끈이 종이 같은 망이 설치돼 있다. 이 관측장비를 설계한 콘웰에 위치한 로즈랜드 관측소 소장인 브라이언 신은 “먼지는 초기 우주의 화학적 구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키네티크1은 밧줄로 12kg의 ‘제파이어3’(Zephyr3)라는 태양광으로 운행되는 성층권 비행기를 매달고 갈 예정이었다. 이 비행기는 키네티크1에 이끌려 올라가다가 고도 24km 정도에 도달하면 기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키네티크1이 제파이어3를 싣고 가는 이유는 목표고도에서 탑승자와 곤돌라, 그리고 기구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제파이어3은 기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지상으로 보낼 예정이었다. 물론 제파이어3의 성능 자체도 평가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도전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기구를 띄우는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엘슨과 프레스콧은 이카루스의 뒤를 잇지 못한 셈이다. 이제 그들은 또다른 스폰서를 잡아야 한다. 해가 지나 2004년 1월이 됐지만 아직 다음 비행일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성능을 시험해볼 제파이어3 역시 또다른 상대를 구해야 한다. 지난 40여년 간 유지된 유인기구비행기록은 아무래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듯하다.
미·소 1차 우주전쟁
유인기구비행의 최고고도 기록은 누가 세웠을까. 기구를 타고 성층권 궤도에 진입하려는 인류 시도는 한때 우주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경쟁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주비행선이 개발되기 전인 1920-1960년대 미국과 옛소련 간에 기구에 사람을 실어 성층권에 보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 결과 1960년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 수립됐다.
처음으로 성층권을 진입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스위스 브루셀대 물리학 교수인 오구스테 피카드였다. 그는 1931년 약 16km 고도에 도달해 최초의 성층권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성층권 진입은 이카루스처럼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다. 피카드 이전에 성층권 진입을 시도했던 미국인 호손 그레이는 에베레스트산 정상 고도에 도달했는데 착륙했을 때 죽은 채 발견됐다.
피카드 교수의 성공은 기압이 떨어지는 일을 막아주고 저산소증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고안해낸 캡슐 형태의 알루미늄 곤돌라 덕분이다. 이후 알루미늄 곤돌라는 기구를 이용한 높은 고도 비행에서 널리 쓰이게 됐다. 이를 통해 미국과 옛소련은 앞다퉈 최고기구비행 기록을 수립해 나갔다. 그때의 성공은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보도될 정도였다.
우주복 테스트에 기구 활용
1950년대에는 우주비행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에 필요한 연구가 기구를 통해 이뤄졌다.
1957년 미 공군 소속의 조 키팅거는 30km 고도에 도달했다. 이 고도에서 그는 높은 고도 환경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낙하산을 등에 지고 뛰어내렸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고의 맨몸낙하 고도 기록이다. 이때 낙하속도가 시속 1천km에 달했다. 키팅거는 25km를 4.5분 간 자유낙하했고 14분만에 지면에 도달했다. 이후 그는 기구를 이용해서 계속 도전에 나서 1984년 대서양을 최초로 단독으로 건넜다.
1960년대 초에는 미 해군 연구소에서 우주복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초기 우주복은 우주환경에서 비행사가 겪을 수 있는 압력에 대해 여러 상황을 통해 그 성능을 시험해야 했다. 처음에는 물속과 낮은 대기압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주와 가까운 고고도에서의 실험이 착수됐다. 바로 기구를 이용해서 말이다.
1961년 5월 의사이자 비행사인 빅토 파더가 비행전문가인 말콤 로스와 함께 역사적인 기록을 남길 9시간의 기구비행에 나섰다. 이들의 생명은 우주비행복의 성능에 달려있었다. 목숨을 걸고 우주비행복을 시험한 셈이었다. 이들이 달성한 고도는 34.67km. 파더와 로스는 이 고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았지만 물에 착륙한 후 파더는 익사하고 말았다. 보통 지상으로 되돌아올 때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바다에 착륙하는데 우주복이 파더를 지상의 물에서는 보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옛소련도 곧바로 새로운 기록 수립에 착수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낙하도중 기구 탑승자도 사망했다. 파더와 로스가 수립한 1961년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기구를 이용한 최고고도 수립 경쟁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1961년 옛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로켓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도는데 성공했다. 이후 기구는 우주경쟁의 무대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억만장자의 단독 세계일주
이후 최고고도기록의 달성이 정체돼 있는 것과 달리 장거리 기구비행의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최근까지도 신기록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는 2002년 7월에 수립됐다. 가장 짧은 시간동안 단독 세계일주를 한 기록이다. 주인공은 미국인 억만장자 모험가인 스티브 포셋. 시카고에서 금융업을 해 큰돈을 번 뒤 모험가로 변신한 그는 2002년 6월 18일 호주 노탐에서 출발해 13일12시간16분13초만인 7월 2일 세계를 한바퀴 돌았다.
최초의 세계일주 기록도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99년 베르트랑 피카드와 브라이언 존스, 두사람이 처음으로 기구를 타고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이들의 기록은 포셋보다 6.5일 정도 길었다(과학동아 1999년 11월 ‘2백16년만의 세계일주’ 참고). 여기에서 피카드는 최초로 성층권 진입에 성공한 피카드의 후손이다. 피카드가(家)는 모험가 집안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일주 기록은 국제항공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구비행기록 4가지 중 3개를 차지한다. 국제항공협회는 기구비행에 대해 최고고도, 최고거리, 최장시간,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동안 세계일주에 대한 기록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 중 최고거리와 최장시간 비행은 1999년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피카드 팀이 세웠다. 그리고 2002년 포셋의 성공은 가장 짧은 시간동안 세계일주를 한 기록으로 남았다.
기구로 세계일주를 하는 도전은 30-40km 고도에 다다르는 일 못지 않게 어렵다. 포셋의 경우 단독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13일 간 하루에 4시간, 그것도 45분씩 쪼개 자야 했다. 그는 1997년부터 세계일주 비행에 도전했는데 2002년 6번째만에 성공했다. 포셋은 미 워싱턴에 위치한 스미소니안박물관에 자신이 사용했던 곤돌라를 기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곤돌라를 제작한 사람이 지난해 9월에 최고고도비행에 도전했던 엘슨이라는 것이다.
포셋의 모험적인 삶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일주 단독 비행에 성공한 3주 후에 그는 일반 여객기 비행고도의 2배에 달하는 1만9천m를 글라이더로 고공비행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그는 글라이더를 이용한 최고 고공비행기록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포셋의 도전의지가 어디까지일지가 궁금해진다.
6백개 풍선 타고 난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풍선을 실수로 또는 일부러 놓아버렸을 때 얼마나 높이 날아갈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꿈에서는 풍선을 손에 쥐고 그대로 하늘을 날아보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꿈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다. 영국인 이안 애시폴이 그 주인공. 그는 어릴 적 ‘빨강 풍선’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에는 외로운 한 소년과 그의 유일한 친구인 빨간 풍선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년은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데 이를 본 애시폴은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실제로 이 꿈을 실현시켜 지난 20여년 간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최고고도 기록을 수립해 왔다.
그가 가장 최근에 세운 최고기록은 3.34km. 2001년 10월 28일 애시폴은 헬륨가스로 채워진 둘레가 1피트(30.4cm)인 풍선 6백개를 타고 3.34km 고도까지 날아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46세. 세파에 시달려 어릴 적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나이에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이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안전하게 날기 위해서 애시폴은 먼저 기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낙하산으로 지상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는 고도인 1.5km까지 기구 위에 풍선과 함께 몸을 실었다. 그 다음에는 기구에서 내려 1분에 약 3백m의 속도로 3.34km까지 올라갔다.
풍선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고도의 한계는 풍선이 얼마나 버텨주느냐에 달렸다. 그는 당초 4.5km까지 오르기를 기대했지만 풍선은 3.34km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풍선이 터지기 시작하면 더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다. 이때부터 그는 지상으로 내려오기 위해서 칼로 풍선과 연결된 줄을 잘랐다. 그런 다음 낙하산으로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했다.
NASA의 첨단 탐사용 기구
사람이 타지 않는다면 기구는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1972년 미국에서 띄운 연구용 기구가 51.82km 고도까지 상승한 것이 최고기록이다.
무인기구는 X선, 감마선, 우주선이나, 고층 기상상태 관측 등 다양한 과학적 목적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기구가 하늘을 나는 다른 발명품에 비해 우주에 접근하는데 빠르고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연구용 기구는 사람과 곤돌라 대신 소형 자동차 3대와 맞먹는 수천kg짜리 관측장비를 싣고 간다.
연구용 기구는 헬륨가스 기구로 크게 3종류가 있다. 먼저 가장 단순한 형태로 고도가 오르면서 모양이 점점 불어나는 확장형이 있다. 네오프렌이라는 합성고무로 제작되는 기구로 지상에서 가스를 채워 띄우면 고도가 높아지면서 크기가 원래보다 30-2백배 가량 늘어난다. 그러다가 재질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는 고도에 다다르면 터져버린다.
다른 종류는 제로압력(zero-pressure) 기구다. 폴리에틸렌 재질로 만들고 기구의 상층부에 헬륨가스를 일부 채워서 띄운다. 이 기구는 완전히 밀봉시키지 않고 아랫부분에 긴 줄로 연결된 구멍을 내놓는다. 그 결과 외부 압력과 내부 압력이 같도록 해서 기구가 터지는 일을 막는다. 제로압력 기구는 2주까지 우주공간에서 버틴다.
마지막으로는 완전 밀봉형인 슈퍼압력(super-pressure) 기구다. 1990년대 마이어라는 신소재가 등장하면서 개발됐다. 마이어는 폴리에틸렌보다 압력에 강한데, 때문에 항상 내부가 외부보다 압력이 작도록 한다. 이 점을 활용하면 일정한 고도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 최근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1백일까지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슈퍼압력 기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NASA는 성층권과 같은 높은 고도에서 장기간 활동하는 기구를 화성 탐사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구는 우주궤도선보다 화성표면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지표면에서 활동하는 로봇인 로버보다 오랜 기간동안 탐사할 수 있다. 조만간 기구는 우주탐사에 적극적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기구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기구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열기구, 가스기구, 그리고 복합형기구다. 하지만 종류에 관계없이 뜨는 원리는 동일하다. 바로 주변 공기보다 기구 안 공기를 가볍게 함으로써 부력이 발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열기구는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최초로 발명했다. 연료를 태워 기구 내부 공기를 주변보다 따뜻하게 데운다. 그러면 내부 공기는 외부 공기보다 밀도가 줄어들어 가벼워진다. 열기구는 오랫동안 비행하기에 충분한 연료를 실어야 하는 어려움과 화재의 위험이 있어 개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스기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1960년대 프로판 가스가 본격적으로 연료로 쓰이면서 현재는 레저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스기구는 열기구보다 조금 늦었지만 같은 해인 1783년 발명됐다. 가스기구는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채워 내부 공기를 가볍게 한다. 처음 쓰인 가스는 가장 가벼운 기체인 수소였다. 하지만 수소는 공기중 산소와 결합해 폭발하는 위험이 있어 1920년대 이후에는 쓰이지 않고 있다. 현재는 헬륨가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스기구는 성층권과 같은 고고도 비행에 쓰인다.
세계일주에 쓰인 기구는 열과 가스를 병합한 복합형태다. 가스기구는 따로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아 무게의 부담을 줄여주지만 밤에는 추락할 위험이 있다. 햇빛이 사라져 기온이 영하 수십℃로 떨어지면 가스가 심하게 수축하기 때문. 이때 열을 기구에 가해줌으로써 안전하게 고도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장거리용 기구는 가스방식에다 열방식을 보충해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