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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 이어주는 신개념 인터페이스

생각대로 움직이는 세상 만든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 있는 프라운호퍼 컴퓨터아키텍처연구소는 사람들이 조이스틱이나 마우스, 키보드 없이 단지 생각만으로 컴퓨터에서 테니스와 레이싱을 즐기는 장면을 공개했다. 이 사람들은 뇌파측정장치를 머리에 부착하고 생각만으로 모니터 속의 사람이나 물체를 움직여 게임을 했다.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대로 움직여주는 기계가 집안에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상상만으로 조종되는 로봇팔
 

어떤 생각 또는 어떤 동작을 하는가에 따라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은 달라진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듀크대 미구엘 니코렐리스 박사팀 역시 이런 예상이 단순한 공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붉은털원숭이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에 머리카락 지름보다 얇은 전극을 이식했다. 전두엽과 두정엽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근육 운동을 조절하는 명령을 내보내는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전극은 컴퓨터와, 그리고 컴퓨터는 로봇팔과 연결했다.

원숭이가 보는 모니터에 커서와 목표물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원숭이가 조이스틱을 움직이면서 커서를 목표물 쪽으로 이동시켜 맞추도록 훈련을 시켰다. 원숭이가 팔을 이용해 조이스틱을 움직일 때마다 컴퓨터에 연결된 로봇팔도 팔을 점점 뻗었다. 그리고 원숭이가 커서를 목표물에 맞추는 순간 로봇팔은 물체를 잡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원숭이가 이 게임을 반복하는 동안 전극과 연결된 컴퓨터는 미세한 신호를 감지했다. 이 신호는 원숭이 팔 근육이 움직이는 동안 전극이 이식된 부분에 있는 수백개의 신경세포로부터 나온 뇌파다. 연구팀은 원숭이가 같은 동작을 계속할 때 일정한 패턴의 뇌파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파의 패턴을 찾아낸 연구팀은 조이스틱을 없앴다. 처음에는 원숭이가 팔을 계속 움직이면서 게임을 계속했지만 어느 순간 더이상 팔을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숭이가 모니터를 보면서 커서가 목표물 쪽으로 움직이는 상상을 하는 동안, 뇌파가 전극을 통해 컴퓨터로 전달돼 로봇팔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즉 원숭이는 어떤 근육도 움직이지 않고 단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조종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인간 역시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기계 간에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니코렐리스 박사팀의 실험에서 원숭이는 처음에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조이스틱을 사용한다. 사람이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마우스나 키보드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우스, 키보드, 조이스틱이 모두 인터페이스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인터페이스는 사용자가 직접 움직여야 작동하기 때문에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사람은 사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생각과 동작을 관장하는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를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Brain Machine Interface) 또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라고 한다. 니코렐리스 박사는 “BMI 기술을 응용하면 뇌졸중 환자, 척추를 다친 환자, 루게릭병 환자처럼 신체의 일부분에 마비가 온 사람들이 휠체어나 의수와 같은 보조기구들을 생각만으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같은 시도는 수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1998년 미국 에모리대 필립 케네디 박사와 로이 바케이 박사는 뇌졸중이나 루게릭병에 걸려 말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이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게 해주는 전극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미세한 유리용기로 전극을 싼 다음,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이 유리용기를 운동을 명령하는 뇌 부위에 이식했다. 그리고 전극에 연결된 전선을 마치 머리카락처럼 환자의 두피 밖으로 나오게 해 컴퓨터에 연결했다.

유리용기 안으로 신경세포의 성장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오면 신경세포가 유리용기 안에서 자란다. 몇주가 지나 신경세포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뇌파가 발생한다. 전극이 이를 포착해 컴퓨터에 전달한다. 생각하면서 뇌파를 조절하는 훈련을 받은 환자는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조합해 “목이 마르다” 또는 “당신과 이야기해 좋다”와 같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마치 환자가 손에 마우스를 쥐고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케네디 박사는 이 기술을 ‘정신 마우스’라고 부른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환자 간 의사소통이 좀더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e메일을 보내거나 텔레비전 또는 조명을 끄고 켤 수 있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환자들의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BMI 기술은 삶의 질 향상에도 한몫할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거나 움직이는 동안 뇌의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는 뇌파를 내보낸다. 이를 측정해 여러 분야에 응용하려는 기술이 BMI다.


인체 신호로 컴퓨터와 대화
 

상명대 황민철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한 BMI 프로그램. 생각만으로 커서를 상하좌우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BMI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상명대 미디어학부 황민철 교수는 2002년 인간공학회지에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황 교수팀은 뇌를 다친 적이 없는 정상인 11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두개골을 열지 않고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정엽 바로 위쪽인 정수리의 두피에 센서를 붙였다. 참가자들이 양손과 양발을 움직이는 동안 센서가 감지하는 뇌파의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뇌파 중 12-35Hz의 주파수를 갖는 베타파와 8-12Hz의 주파수를 갖는 뮤파에 변화가 있음을 확인했다. 동작을 계획할 때와 실행할 때 이들 뇌파가 발생하는 패턴은 같았다. 황 교수 연구실에서는 이 원리를 이용해 이마와 정수리에 센서를 붙인 채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생각만으로 상하좌우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국내외 BMI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황 교수는 “낯선 사람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는 낯선 기계와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컴퓨터로 작동하는 모든 기기들을 생각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학계에서는 2020년이면 인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마치 생명력을 가진 듯한 기계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BMI의 핵심은 뇌파와 같이 인체에서 발생하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때 전자공학이나 기계공학기술이 적용되는데 이를 ‘바이오 메카트로닉스’라고 한다. BMI뿐만 아니라 목소리로 신원을 확인하는 음성인식도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적용돼 발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이는 사람들이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미래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 꼭 필요하다. 인간이 컴퓨터화된 환경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려면 혁신적인 인터페이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가 현실로?

BMI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관이 많다. 필요한 동작과 무관한 생각을 하거나 미지의 뇌파가 발생하는 경우 BMI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두피에 붙이는 센서의 경우 뇌파가 두개골과 두피를 거쳐 나오면서 왜곡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클리브랜드대 병원의 워렌 셀만 박사는 “오랫동안 마비 상태인 환자라면 모를까, 누구에게나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경고한다.

또한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뇌파가 활성화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뇌파가 변화하는 경향에 대한 개인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뇌에 이식하는 전극이나 두피에 붙이는 센서는 인체에 무해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또 사람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아주 작게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까지 BMI 기술은 뇌파를 뇌에서 컴퓨터로 전달하는 한방향 체제다. 뇌파가 그 반대 방향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뇌에 이식된 장치를 통해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을 마음대로 조종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SF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현재 한걸음씩 발전해가고 있는 BMI 기술이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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