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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영어의 조상은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

 

나일강 유역에서 발견된 고대문자 유적들이 보존돼 있다.


1789년, 당시 프랑스 최고의 학자들과 함께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이듬해 나일강 지류에 있는 로제타에서 높이 1백14cm, 넓이 72cm, 폭 28cm 가량의 현무암 석판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기원전 1세기 이집트 왕 프롤레마이우스 5세의 즉위를 기념하는 내용이 이집트 성각문자,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로 적혀있었다. 이 로제타 석판을 판독한 사람은 장 프랑수아 샹폴레옹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로제타 석판에 적혀 있던 고대문자는 판독되기 전까지 하나의 그림일 뿐이었다. 인류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만국 공용어인 알파벳을 사용하게 됐을까.

최초의 문자
 

기원전 9000년경의 물표가 인류 최초의 문자라는 주장이 있다.
 

기원후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신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자는 한순간의 계시가 아니라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진화의 결과다. 학자들은 로제타 석판이 아닌 쐐기문자 문서를 판독하면서 알파벳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인류가 맨처음 고안해낸 문자는 진흙에 새긴 형태인 ‘물표’라는 주장이 있다. 물표는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 90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 발견된다. 기원전 9000년은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 채집경제에서 농경경제로 전환된 시기다.

정교한 돌로 만든 농기구가 고고학적 유물로 발견되는 시기다. 놀랍게도 농업을 처음 시작한 지역이 물표가 발견된 지역과 일치하는데, 그 분포가 초승달 같다고 해서 이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부른다.

물표는 기원전 3300년경부터 급격히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묘사하려는 대상을 진흙 위에 직접 그려 표현하는 그림문자 방식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기원전 3200년 엘람(지금의 이란 남서부)에서, 기원전 3000년 이집트에서도 발견됐다. 예를 들어 ‘숫소’는 숫소의 머리 모양을, ‘날’이나 ‘태양’은 두 산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을 그려 표시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에는 아르메니아에서 발원해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오랜 기간 동안 날라온 침적토가 쌓여 굳지 않은 점토판이 흔했다. 수메르인들은 갈대 줄기 끝을 뾰족하게 잘라 점토판 위에 눌러 문자를 새겼다. 이것이 바로 쐐기문자다. 점토판 문서는 태양 아래에서 자연히 굳어져 반영구적인 기록이 됐다. 초기 수메르인들의 문자는 거의 1천5백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현대적 의미의 문자는 아니었다. 한정된 지역에서 사용됐고, 대상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은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 또는 ‘희망’이란 단어를 그림문자 체계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후 기원전 2600년 시작된 문자체계에서는 ‘사’라는 음절과 ‘랑’이라는 음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고안해 ‘사랑’이란 단어를 표현했다. 마치 현대의 알파벳이 사랑을 ‘love’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음절이란 자음와 모음, 자음, 모음과 자음, 또는 모음으로 이뤄진 발음의 최소단위다. 이제 문자는 그 자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단순히 음가만 제공해주는 음절문자로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문자의 음가만 빌어서 발음하는 법칙을 ‘레부스 법칙’이라고 한다.

쐐기문자 판독 과정
 

페르세폴리스에서 니부르가 필사한 쐐기문자.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고대문자들을 판독하고자 시도했다. 1618년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와 유사한 삼각형 모양의 문자들이 발견됐다. 1700년 영국 옥스퍼드대 히브리어와 아랍어 교수였던 토마스 하이드는 이 문자들이 쐐기처럼 생겼다고 여겨 설형문자 또는 쐐기문자라고 불렀다.

덴마크의 여행가였던 카르스텐 니부르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문자가 모두 3종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3종류의 문자는 인도-유럽어인 고대 페르시아어, 셈족어인 아카드어, 그리고 세상의 어떤 언어와도 연관이 없는 고립어인 엘람어였다. 니부르의 발견이 18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쐐기문자 판독의 기초를 놓은 셈이다.

쐐기문자 판독에 첫 진전을 본 사람은 독일 괴팅겐의 한 고등학교 라틴어 교사였던 게오르그 그로테펜트다. 그는 1802년 괴팅겐대 왕립 과학원에서 페르세폴리스의 비문을 연구했다. 그로테펜트는 중기 이란어와 산스크리트어, 고전문헌 등에서 반복되는 관용어구를 대입시켜 고대 페르시아어를 1802년에 거의 판독했다. 그가 만든 음절표에는 실수가 있었고 대학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쐐기문자 판독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쐐기문자를 완벽하게 해독하려면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단문보다는 장문의 쐐기문헌이 필요했다. 이란 자그로스 산맥 서쪽 비시툰산의 지상 60m 높이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비시툰 비문’이 새겨져 있다. 쐐기문자의 로제타 석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비문에는 페르세폴리스의 비문처럼 세가지 쐐기문자가 적혀있었다. 영국의 장교이자 외교관인 헨리 크레스윅 로린슨은 1826년부터 1833년까지 인도에 장교로 머물면서 힌디어, 아랍어, 현대 이란어를 배웠다. 그 후 이란 국왕의 군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비시툰 지역이 속해 있는 케르만자 지방의 책임자로 부임했다. 그는 탁월한 체력과 동네 양치기 소년의 도움으로 1847년 1천1백행 이상이 되는 비시툰 비문을 모두 베낀 다음 판독하는데 성공했다.

1905년 중동지방의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세라비트 엘-카뎀에서 조그만 스핑크스가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영국의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는 당시 고대 이집트의 터키석 광산을 발굴하고 있었다. 페트리는 이 스핑크스를 이집트 18왕조시대인 기원전 1552년-1295년의 것으로 추정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기원전 15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핑크스의 한쪽에는 이집트 성각문자로 ‘터키석의 여주인인 하쏘르 여신의 사랑 받는 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한편에 쓰인 처음 보는 이상한 문자였다. 그 문자는 30개 이하의 글자로 돼있었다. 제한된 수의 글자로 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의 문자에 좀더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페트리는 이를 히브리어나 아랍어, 페니키아어, 아카드어 등이 속한 셈족어라고 추정했다.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나안 지역(현재 이스라엘, 레바논)에서 온 셈족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이곳에서 노동을 시켰기 때문이다.

10년후 이집트 학자 알란 가디너는 이 새로운 문자를 ‘원(原)-시나이어’라고 이름붙였다. 가디너는 두음법칙을 기초로 해 원-시나이어를 판독했다. 두음법칙은 그림문자에 대한 셈족어 발음의 첫 자음을 그 글자의 발음으로 하는 체계다. 예를 들어 황소 머리를 그려놓고 황소를 의미하는 셈족어 발음인 알렙(’alep)에서 첫 자음인’를 따서 읽는다. 또 집을 그려놓고 집을 의미하는 셈족어 발음인 베이트(beit)에서 첫 자음인 b를 따서 읽는다.

스핑크스에 적혀 있던 문자는 지팡이(셈족어로 lamed)-집(beit)-눈(’ayin)-지팡이(lamed)-도장(taw)이다. 이 문장을 두음법칙을 이용해 읽으면 l-b’lt, 발음을 하면 르-바알라트 즉 ‘여신을 위하여’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여신은 바로 하쏘르 여신이다. 셈족어는 모음을 표시하지 않는다. 때문에 문장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그 언어를 습득해 모음을 추측해야 한다. 스핑크스에 있는 두 문장은 같은 내용을 하나는 이집트어로, 하나는 원-시나이어로 쓴 결과가 됐다. 학자들은 원-시나이어로 쓰여진 모세의 출애굽이야기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는 못했다. 아마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사용된 문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원-시나이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로린슨이 10년 간 필사한 비시툰 비문.


알파벳의 기원

가디너가 1916년에 판독한 원-시나이어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알파벳 모양을 갖춘 페니키아어 알파벳과는 차이가 있다. 페니키아어 알파벳은 원-시나이어에서 어떻게 발전됐을까. 당시 시나이반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레바논 등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오히려 원-시나이어보다 연대가 앞선 알파벳 형식의 문자가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알파벳 문자를 셈족이 발명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당시 가나안 지방은 이집트,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크레타로 가려는 상인들이 모이는 로터리였다. 서로 다른 문자를 사용했던 이들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과학적이며 배우기 쉬운 문자체계를 고안했을 것이다.

셈족 중 특히 페니키아인들은 현대인들이 아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라틴어를 비롯한 모든 유럽언어의 알파벳은 물론 영어 알파벳의 모양도 처음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기원전 1000년부터 알파벳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해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로 전파시켰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12세기부터 길쭉한 모양의 선형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는 기원전 8세기경 유입된 페니키아 알파벳으로 완전히 대치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저서인 ‘역사’에 따르면 카드모스라는 페니키아인이 그리스에 알파벳을 전해줬다. 페니키아인 선생 앞에서 그리스인이 페니키아 문자와 발음을 따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음으로만 이뤄진 그리스어 알파벳 중 몇개를 발음을 위해 모음으로 변화시켰다. 그 예가 바로 알파다. 셈족어의 자음 ‘알렙’이 그리스어에서는 ‘알파’, 즉 모음 a가 된 것이다. 한편 ‘베이트’(집)는 ‘베타’가 됐다. 이렇게 페니키아어의 22개 알파벳이 그리스 알파벳으로 변했다. ‘알파벳’이란 말은 이 문자체계의 첫 두글자인 알파와 베타의 결합이다.

페니키아에서 유입된 알파벳으로 저술한 최초의 문헌이 바로 구전으로 내려오던 신화를 적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페니키아’라는 단어는 ‘일리아스’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분홍색염료 장사’라는 의미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에게 역사와 문명을 가져다 줬다. 그리고 알파벳의 발명은 권력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읽고 쓸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하는 기틀을 놓았다. 이런 알파벳 체계가 로마의 라틴어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 현재 우리가 아는 모든 유럽어의 문자체계가 됐다.

인류가 문자를 만든 까닭

‘왕 업적 과시용, 미래 예측용, 상거래 기록용’
고대 정치 지도자는자기 과시용으로 문자를 사용했다.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 석비에서 함무라비는 ‘나는 위대한 왕, 바빌로니아의 왕, 아무루 땅 전체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 사방의 왕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다. 문자는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법을 제정하고, 명령을 요구한다. 따라서 문자의 출현은 도시와 국가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 이집트의 성각문자, 중앙아시아의 마야 상형문자는 거의 모두 궁궐이나 신전 벽에 새겨져 있어 누가 왕인지, 왕이 이룩한 전쟁의 승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광고다.

문자는 또한 불멸에 대한 의지로 만들어졌다. 로마시대 이전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에트루스카인들은 장례비문을 남겼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문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기원전 12세기 중국 갑골문자는 거북이 등껍질이나 수소 뼈를 부서질 때까지 태운 후, 뼈가 갈라지는 모양에 따라 점을 치고, 그 결과를 뼈 위에 적은 것이다.

문자가 만들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상거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문자는 보리나 맥주와 같은 농작물이나 상품, 노동자들의 이름과 특기, 신전의 수입이나 지출과 같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경제활동 내용을 적은 것이다. 기원전 3000년대 점토판 문서의 대부분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아마도 수메르 거주자들은 점토판을 이용해 도시 경제에 중요한 문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기원전 4000년대 메소포타미아 경제는 상당히 발전해 몇몇 엘리트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 없었다. 당사자 간의 계약을 믿을 만하고 영구적인 형태로 남기는 도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도시가 생기고 중앙집권적 경제가 자라면서 왕국이나 신전의 서기관들은 신전에 딸린 저장창고에 드나드는 곡식의 수량, 양과 염소의 수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사용했다. 고대인들은 기록을 통해 기억력의 한계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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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배철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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