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뤄진 믿을 수 없는 탐험 여행을 충실하게 기록했다. 과학이 진보하면 언젠가는 그곳도 인간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쥘 베른 소설의 끝부분을 되뇌며 인천행 전철에 올랐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 탁트인 인천 앞바다를 마주한 부두의 한 끝에서 쥘 베른의 ‘후계자’를 만나기로 했다. 듣던 것과는 달리 검은 뿔테 안경과 부티나는 옷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세련된 건축설계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세계 대양을 누비는 거친 바다 사내의 투박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훨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그는 천진난만하다 못해 장난기 많은 소년 같았다. 바로 이 주인공은 세계적인 해양 건축가 자크 루즈리(59). 흔히 그는 현대판 쥘 베른으로 비유되곤 한다. 지난 30년간 ‘바다에 살기’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과학과 예술, 교육 사이에서 끊임없는 접점을 찾아왔다.
1969년 파리 고등미술학교를 나온 뒤 그는 전문미술학교와 제8대학, 국립해양연구소를 거치며 건축과 도시공학, 해양학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쌓았다. 첫 작품인 6인승 수중 탐사선 갈라떼 이래 지금까지도 바다를 주제로 한 놀이와 교육, 연구는 그의 작품세계 대부분을 이룬다. 프랑스 볼로뉴와 브레스뜨에 각각 설립된 교육형 해양수족관 노지카와 오세아노폴리스는 그의 대표작.
그가 얼마전 한국을 찾았다. 인천 송도에 건설될 3천2백톤 규모의 대형 아쿠아리움의 설계를 맡게 된 것. 루즈리는 3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공사 예정지를 방문한데 이어 ‘바다에 살기’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열었다. 방한 중에도 그는 ‘바다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알고 직접 겪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잊지 않았다. 강연을 막 끝내고 나서는 루즈리를 만났다.
![해양연구는 물론 거주까지 가능 한 바다속 연구소를 나서고 있는 잠수부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1.jpg)
이번이 첫번째 방문인데 한국 바다에 대한 인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수산업과 조선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보고 싶었다. 도착 직전 하늘에서내려다 본 서해 바다의 작고 외딴 섬들, 그리고 그들을 휘감은 짙은 바다 안개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평소 19세기 프랑스의 과학소설가 쥘 베른의 진정한 후계자란 평을 듣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익살스럽게 웃으며)말도 안된다. 쥘 베른이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가임은 분명하다. 바다를 대상으로 상상력을 펼친다는 측면에서 그와 나는 공통점이 있지만 엄격히 말해 나는 ‘건축가’다. 그는 글로, 나는 설계도면으로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해양건축. 다소 낯선 용어다. 당신이 뜻하는 해양건축이란 과연 무엇인가?
해양건축은 단순히 바다에 집을 짓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 삶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는데 있다. 다른 건축도 마찬가지지만 자연과 더불어 인간과 교감하고 그 속에서 보잘 것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성찰의 과정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해 바다를 우리 삶으로 끌어오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열어 나가는 과정이랄까.
언제부터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됐나?
스킨스쿠버 기술을 완성시킨 프랑스 해군 꾸스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를 본 것이 계기였다. 꿈많던 어린 시절 바다속 탐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잠수부가 코발트색 깊은 바다 밑에서 수면을 향해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명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아직도 설레인다.
왜 바다에 주목하는가?
내게 바다는 아주 매력적인 여인과도 같다(그는 그렇게 말한 뒤 쑥스러운지 한참을 웃었다). 이유없이 끌리는 그런 대상이라는 말이다. 바다는 위대하다.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구상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계속해서 남아있게 될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는 또한 보잘것 없는 인간의 삶을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켜 준다. 심리적으로도 바다는 영원한 인간의 안식처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나 우리가 바다에 대해 실제 아는 바는 거의 없다. 인간은 여전히 바다의 타자일 뿐이다.
작품 얘기를 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보면 흡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설계도를 방물케 할 만큼 파격적이다. 평소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나름대로의 설계 철학과 원칙이 있다면?
나는 결코 하나만을 고집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다. 특히 수중 건축의 경우 고수하는 설계 철학이나 원칙이 없다. 또 형태를 위한 형태나 기교는 부리지 않는다는게 내 소신이다. 다만 언제나 주위를 관찰하고 특성이 있다면 반드시 살린다. 작품을 설계하기에 앞서 주위 사물과 자연을 향한 관조와 응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소재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바다속 생물에서부터 일상의 소품까지 모두 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이 방법은 15세기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과학자 레오파르도 다 빈치에게 배운 것이다.
(실제 그의 작품들 속에는 우산 모양을 한 해양 목장, 해파리 모양의 주거 시설, 가오리 모양의 바다속 연구소 등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많겠지만 그중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우선 1977년 처음 만든 해저 거주 잠수정 갈라떼와 그뒤 차례로 설계한 탐사선 아쿠아스코프, 아쿠아스페이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해양 생물 등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바다 속에서 장기간 운영되려면 그 형태는 오랫동안 바다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 해양 생물의 모습이 제격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외부 도움없이 한달에서 최고 1년까지 바다 물밑에 머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근 작품으로는 지난 1992년 프랑스 볼로뉴 지방에 지은 노지카(Nausicaa)아쿠아리움과 1993년 브레스뜨에 세운 오세아노폴리스(Oceanopolis)가 있다. 노지카는 산업 도시 한가운데 건설된 것으로 각각 난류와 한류, 아열대 해류로 구분된 해양생태계를 주제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세아노폴리스는 인근 해안의 동식물 생태계를 가까이서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체험 교육 중심의 해양 박물관이다.
이밖에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와 일본 고베, 오키나와, 중동 등에 몇개의 해양건축물 설계를 맡기도 했다.
우주인들과 바다속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는데…?
미 항공우주국과 공동으로 바다와 우주라는 극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체 변화를 연구했다. 바다속은 예비 우주인들이 훈련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역으로 우주 기술을 심해 탐사에 적용할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 우주연구소들은 이같은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해양연구와 우주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몇차례에 걸친 프로젝트에서 함께 생활했던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출신의 우주 비행사들과 지금도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족관을 둘러봤는데 아쿠아리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면?
![바다속 쉼터 아쿠아뷜. 스쿠버다이어버 들에게 안전한 휴식처를 제공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2.jpg)
아쿠아리움은 일종의 등대와 같다. 아쿠아리움은 지역성이 잘 반영됐을 때만 빛이 난다. 아쉽게도 최근 들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획일적인 구조의 아쿠아리움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아쿠아리움은 각박한 도시 사람들이 바다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쿠아리움의 존재 목적은 간단하다. 바다와 해양 생태계를 통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 체험을 통해 꿈을 안겨주는 것이다.
인간과 바다가 지금보다 더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투명 반구형 놀이기구를 타고 바다 환경을 익히고 있는 어린 학생들. 놀이와 교육을 통해 그 만큼 바다와 친해질 수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3.jpg)
어릴때부터 바다와 친숙해져야 한다. 내가 교육과 체험을 강조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바다에 놀이 공간과 교육 공간이 많이 들어서야 한다. 실제 직접 체험해보는 것만큼 바다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해양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그는 평소 매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방한 당일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방문한 자리에 바다와 공존하는 방법을 말이다.
견학온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장난기 가득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어린이들의 체험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밖에 해양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다소 의아해하겠지만 해양 산업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바다가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올바른 가치 평가를 내려야 한다.
흔히 생태계 보호 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해양을 미개척 영역으로 그대로 놔두려는 경향이 있다. 포획은 하되 남획하지 말고 이용을 하되 동시에 보존할 줄 아는 묘를 살린다면 바다는 지금보다 더욱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 프랑스 사이에 해양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설계한 우산형 해양 목장은 해마다 적조 피해가 심각한 남해안에 효과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나라 정부 사이에 협의가 가능하다면 이같은 기술들을 얼마든지 제공할 용의가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실험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세워진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2백-2백50명 거주 규모의 바다속 마을. 해파 리 모양을 닮은 우주와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노란색 지역에서 예비우주비행사들의 훈련이 이 뤄진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4.jpg)
지금도 미 항공우주국과 함께 우주공간에서의 인체 생리 변화를 근거로 수중 거주 생활에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바다속 35M 아래 설치된 거주공간에서 우주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향후 건설될 2백-2백50명 수용 규모의 바다속 주거 시설을 구상 중이다. 반대로 해양 건축 기술을 우주정거장이나 우주기지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의뢰로 세느강 중심부에 물을 주제로 한 박물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유리와 물로 된 이 박물관은 물의 특징을 잘 살리는 구조로 지어질 것이다.
다음번 한국에 올 때는 우주공간의 거주시설과 건축물에 관한 강연회를 가져볼 참이다.
자크 루즈리는 누구인가?
1945년생인 자크 루즈리는 지난 30년간 ‘바다에 살기’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과 예술, 교육을 통합시킨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69년 파리고등미술학교를 나온 그는 전문미술학교와 제8대학, 국립해양연구소를 거치면서 해양건축에 기초가 되는 전 과정들을 두루 섭렵했다.
1977년 첫작품인 6인승 해중 탐사선 갈라떼를 시작으로 아쿠아스코프, 히포깜프 등 교육과 놀이, 거주가 가능한 실험적 구조물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지난 1992년과 1993년에 프랑스 볼로뉴와 브레스뜨에 각각 설립된 교육형 해양수족관 노지카와 오세아노폴리스가 대표작. 특히 바다에서 진행되는 놀이와 교육은 그의 주요 관심사다.
루즈리는 인생의 반 이상을 바다 속에서 지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바다에 열광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막내 아들 이름마저도 쥘 베른의 소설 ‘해저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에서 따왔을 정도다.
그는 최근 두가지 독측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해양 건축술과 우주 기술의 접목. 바다속에서 일어나는 생체 변화를 우주 개발에 이용하겠다는 것. 실제 그는 자신이 만든 독특한 형태의 수중 거주 시설에서 우주인들과 장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극한에서 발생하는 인체 변화 현상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남극에서 오는 12월 심해 잠수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주목할 만한 또다른 프로젝트는 조류와 바람 등 자연동력만을 이용해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해양실험을수행하는‘시오비터 계획’. 빠르면 2005년에 시작될이 계획에는 프랑스, 일본, 노르웨이 등 해양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 탁트인 인천 앞바다를 마주한 부두의 한 끝에서 쥘 베른의 ‘후계자’를 만나기로 했다. 듣던 것과는 달리 검은 뿔테 안경과 부티나는 옷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세련된 건축설계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세계 대양을 누비는 거친 바다 사내의 투박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훨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그는 천진난만하다 못해 장난기 많은 소년 같았다. 바로 이 주인공은 세계적인 해양 건축가 자크 루즈리(59). 흔히 그는 현대판 쥘 베른으로 비유되곤 한다. 지난 30년간 ‘바다에 살기’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과학과 예술, 교육 사이에서 끊임없는 접점을 찾아왔다.
1969년 파리 고등미술학교를 나온 뒤 그는 전문미술학교와 제8대학, 국립해양연구소를 거치며 건축과 도시공학, 해양학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쌓았다. 첫 작품인 6인승 수중 탐사선 갈라떼 이래 지금까지도 바다를 주제로 한 놀이와 교육, 연구는 그의 작품세계 대부분을 이룬다. 프랑스 볼로뉴와 브레스뜨에 각각 설립된 교육형 해양수족관 노지카와 오세아노폴리스는 그의 대표작.
그가 얼마전 한국을 찾았다. 인천 송도에 건설될 3천2백톤 규모의 대형 아쿠아리움의 설계를 맡게 된 것. 루즈리는 3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공사 예정지를 방문한데 이어 ‘바다에 살기’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열었다. 방한 중에도 그는 ‘바다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알고 직접 겪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잊지 않았다. 강연을 막 끝내고 나서는 루즈리를 만났다.
![해양연구는 물론 거주까지 가능 한 바다속 연구소를 나서고 있는 잠수부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1.jpg)
이번이 첫번째 방문인데 한국 바다에 대한 인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수산업과 조선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보고 싶었다. 도착 직전 하늘에서내려다 본 서해 바다의 작고 외딴 섬들, 그리고 그들을 휘감은 짙은 바다 안개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평소 19세기 프랑스의 과학소설가 쥘 베른의 진정한 후계자란 평을 듣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익살스럽게 웃으며)말도 안된다. 쥘 베른이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가임은 분명하다. 바다를 대상으로 상상력을 펼친다는 측면에서 그와 나는 공통점이 있지만 엄격히 말해 나는 ‘건축가’다. 그는 글로, 나는 설계도면으로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해양건축. 다소 낯선 용어다. 당신이 뜻하는 해양건축이란 과연 무엇인가?
해양건축은 단순히 바다에 집을 짓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 삶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는데 있다. 다른 건축도 마찬가지지만 자연과 더불어 인간과 교감하고 그 속에서 보잘 것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성찰의 과정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해 바다를 우리 삶으로 끌어오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열어 나가는 과정이랄까.
언제부터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됐나?
스킨스쿠버 기술을 완성시킨 프랑스 해군 꾸스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를 본 것이 계기였다. 꿈많던 어린 시절 바다속 탐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잠수부가 코발트색 깊은 바다 밑에서 수면을 향해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명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아직도 설레인다.
왜 바다에 주목하는가?
내게 바다는 아주 매력적인 여인과도 같다(그는 그렇게 말한 뒤 쑥스러운지 한참을 웃었다). 이유없이 끌리는 그런 대상이라는 말이다. 바다는 위대하다.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구상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계속해서 남아있게 될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는 또한 보잘것 없는 인간의 삶을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켜 준다. 심리적으로도 바다는 영원한 인간의 안식처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나 우리가 바다에 대해 실제 아는 바는 거의 없다. 인간은 여전히 바다의 타자일 뿐이다.
작품 얘기를 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보면 흡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설계도를 방물케 할 만큼 파격적이다. 평소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나름대로의 설계 철학과 원칙이 있다면?
나는 결코 하나만을 고집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다. 특히 수중 건축의 경우 고수하는 설계 철학이나 원칙이 없다. 또 형태를 위한 형태나 기교는 부리지 않는다는게 내 소신이다. 다만 언제나 주위를 관찰하고 특성이 있다면 반드시 살린다. 작품을 설계하기에 앞서 주위 사물과 자연을 향한 관조와 응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소재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바다속 생물에서부터 일상의 소품까지 모두 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이 방법은 15세기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과학자 레오파르도 다 빈치에게 배운 것이다.
(실제 그의 작품들 속에는 우산 모양을 한 해양 목장, 해파리 모양의 주거 시설, 가오리 모양의 바다속 연구소 등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많겠지만 그중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우선 1977년 처음 만든 해저 거주 잠수정 갈라떼와 그뒤 차례로 설계한 탐사선 아쿠아스코프, 아쿠아스페이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해양 생물 등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바다 속에서 장기간 운영되려면 그 형태는 오랫동안 바다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 해양 생물의 모습이 제격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외부 도움없이 한달에서 최고 1년까지 바다 물밑에 머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근 작품으로는 지난 1992년 프랑스 볼로뉴 지방에 지은 노지카(Nausicaa)아쿠아리움과 1993년 브레스뜨에 세운 오세아노폴리스(Oceanopolis)가 있다. 노지카는 산업 도시 한가운데 건설된 것으로 각각 난류와 한류, 아열대 해류로 구분된 해양생태계를 주제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세아노폴리스는 인근 해안의 동식물 생태계를 가까이서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체험 교육 중심의 해양 박물관이다.
이밖에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와 일본 고베, 오키나와, 중동 등에 몇개의 해양건축물 설계를 맡기도 했다.
우주인들과 바다속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는데…?
미 항공우주국과 공동으로 바다와 우주라는 극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체 변화를 연구했다. 바다속은 예비 우주인들이 훈련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역으로 우주 기술을 심해 탐사에 적용할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 우주연구소들은 이같은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해양연구와 우주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몇차례에 걸친 프로젝트에서 함께 생활했던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출신의 우주 비행사들과 지금도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족관을 둘러봤는데 아쿠아리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면?
![바다속 쉼터 아쿠아뷜. 스쿠버다이어버 들에게 안전한 휴식처를 제공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2.jpg)
아쿠아리움은 일종의 등대와 같다. 아쿠아리움은 지역성이 잘 반영됐을 때만 빛이 난다. 아쉽게도 최근 들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획일적인 구조의 아쿠아리움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아쿠아리움은 각박한 도시 사람들이 바다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쿠아리움의 존재 목적은 간단하다. 바다와 해양 생태계를 통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 체험을 통해 꿈을 안겨주는 것이다.
인간과 바다가 지금보다 더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투명 반구형 놀이기구를 타고 바다 환경을 익히고 있는 어린 학생들. 놀이와 교육을 통해 그 만큼 바다와 친해질 수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3.jpg)
어릴때부터 바다와 친숙해져야 한다. 내가 교육과 체험을 강조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바다에 놀이 공간과 교육 공간이 많이 들어서야 한다. 실제 직접 체험해보는 것만큼 바다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해양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그는 평소 매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방한 당일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방문한 자리에 바다와 공존하는 방법을 말이다.
견학온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장난기 가득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어린이들의 체험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밖에 해양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다소 의아해하겠지만 해양 산업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바다가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올바른 가치 평가를 내려야 한다.
흔히 생태계 보호 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해양을 미개척 영역으로 그대로 놔두려는 경향이 있다. 포획은 하되 남획하지 말고 이용을 하되 동시에 보존할 줄 아는 묘를 살린다면 바다는 지금보다 더욱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 프랑스 사이에 해양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설계한 우산형 해양 목장은 해마다 적조 피해가 심각한 남해안에 효과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나라 정부 사이에 협의가 가능하다면 이같은 기술들을 얼마든지 제공할 용의가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실험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세워진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2백-2백50명 거주 규모의 바다속 마을. 해파 리 모양을 닮은 우주와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노란색 지역에서 예비우주비행사들의 훈련이 이 뤄진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0312/S200312N033_img_04.jpg)
지금도 미 항공우주국과 함께 우주공간에서의 인체 생리 변화를 근거로 수중 거주 생활에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바다속 35M 아래 설치된 거주공간에서 우주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향후 건설될 2백-2백50명 수용 규모의 바다속 주거 시설을 구상 중이다. 반대로 해양 건축 기술을 우주정거장이나 우주기지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의뢰로 세느강 중심부에 물을 주제로 한 박물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유리와 물로 된 이 박물관은 물의 특징을 잘 살리는 구조로 지어질 것이다.
다음번 한국에 올 때는 우주공간의 거주시설과 건축물에 관한 강연회를 가져볼 참이다.
자크 루즈리는 누구인가?
1945년생인 자크 루즈리는 지난 30년간 ‘바다에 살기’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과 예술, 교육을 통합시킨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69년 파리고등미술학교를 나온 그는 전문미술학교와 제8대학, 국립해양연구소를 거치면서 해양건축에 기초가 되는 전 과정들을 두루 섭렵했다.
1977년 첫작품인 6인승 해중 탐사선 갈라떼를 시작으로 아쿠아스코프, 히포깜프 등 교육과 놀이, 거주가 가능한 실험적 구조물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지난 1992년과 1993년에 프랑스 볼로뉴와 브레스뜨에 각각 설립된 교육형 해양수족관 노지카와 오세아노폴리스가 대표작. 특히 바다에서 진행되는 놀이와 교육은 그의 주요 관심사다.
루즈리는 인생의 반 이상을 바다 속에서 지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바다에 열광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막내 아들 이름마저도 쥘 베른의 소설 ‘해저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에서 따왔을 정도다.
그는 최근 두가지 독측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해양 건축술과 우주 기술의 접목. 바다속에서 일어나는 생체 변화를 우주 개발에 이용하겠다는 것. 실제 그는 자신이 만든 독특한 형태의 수중 거주 시설에서 우주인들과 장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극한에서 발생하는 인체 변화 현상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남극에서 오는 12월 심해 잠수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주목할 만한 또다른 프로젝트는 조류와 바람 등 자연동력만을 이용해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해양실험을수행하는‘시오비터 계획’. 빠르면 2005년에 시작될이 계획에는 프랑스, 일본, 노르웨이 등 해양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