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공에 최초의 비행기는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13년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비행기는 일제침략의 암울한 역사속에서 일본군인이 조정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최초로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한 사람은 안창남이다. 그는 1923년 자신이 조립한 비행기 ‘금강호’를 타고 서울 상공을 가로지르는 비행에 성공했다. 5만명이 넘는 인파가 지켜본 안창남의 비행은 비행기의 존재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온 국민에게 알린 계기가 됐다.
안창남 이후 우리나라에서 비행조종사들은 꾸준히 배출됐다. 특히 1926년 이기연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행기 운행을 시작해 민간항공의 창시자가 됐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항공산업은 해방 이후 비행기를 정비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1955년 연락기인 L-19기를 시작으로, 1960년대 F-86 제트기, 1970년대 F-5와 F-4 전투기 등을 정비하게 됐다. 그러나 아주 더딘 발걸음이어서 우리 비행기를 우리 손으로 제작하는 일은 아주 먼 꿈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부터 미국에서 F-5를 들여와 ‘제공호’를 조립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공호는 우리 최초의 항공기 완제품 생산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그 결과 비행기 일부 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존 항공기를 그대로 조립 생산한 것이어서 비행기 설계는 완전히 초보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이 하나의 계기를 맞이한 것은 1985년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이 추진이 결정되면서다. 1992년부터 진행된 KFP사업으로 F-16 전투기 1백8대를 기술 도입해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제트 엔진과 기체 관련 기술 일부를 이전 받게 됐다.
같은 시기 독자적인 설계에 의한 항공기 개발도 진행됐는데, 1991년 11월 프로펠러를 단 5인승 경비행기 ‘창공91’이 처녀비행에 성공했다. 한편 1988년 군용훈련기(KTX-1) 사업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비행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 비행기는 몇차례 업그레이드를 걸쳐 1998년 개발이 완료됐는데, 최종기의 정식 명칭은 KT-1이다. KT-1은 2001년부터 공군의 조종훈련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비행기 개발과 선진국의 기술 이전을 경험하면서 기술을 축적한 우리나라는 드디어 2002년 최초의 초음속 비행기 T-50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최고속도 마하 1.4인 T-50은 첨단 전투기를 조종하기 전 연습에 사용되는 고등훈련기로 개발됐다.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전투기로서의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항공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1989년 설립된 대덕연구단지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비행기 개발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연구성과를 거뒀다. 현재는 스마트 무인항공기와 중·소형항공기 개발 등이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