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이 세상의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다. 이처럼 균형있는 비율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은 어디에서 올까. 또 남자와 여자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아마도 사람이 처음 생겨나 성을 인식하면서부터 갖게 됐을 것이다.
사람은 남녀로 분명하게 구분되지만 지렁이처럼 동물에 따라서는 암수가 한몸, 즉 정자와 난자를 하나의 개체가 만들어내는 종류가 있다. 사람 중에는 여자같이 보이는 남자가 있으며, 반대로 남자같이 보이는 여자가 있다. 사람도 지렁이처럼 암수한몸인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 일례로 사방지라는 양성을 가진 사람이 조선 세조 때 옥사를 당했다는 기록을 ‘패관잡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성의 결정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며, 형성 도중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성의 결정 메커니즘은 동물에 따라서 다르게 진행된다. 파충류는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며, 어류에서는 성체 물고기의 성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람에게서도 온도가 성의 결정 과정에 관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외부환경의 영향에 따라 성의 결정 과정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제 복잡한 성 결정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보자.
남자에게만 있는 유전자
성 결정의 메커니즘은 크게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유전자에 의해, 다른 하나는 온도와 같은 환경에 의한 것이다. 물론 온도가 성 결정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의 작용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이 유전자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성은 1차적으로 정소나 난소와 같은 생식소에 의해, 2차적으로는 생식소에서 나온 호르몬에 의해 결정된다. 즉 정소에서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나와 부정소, 정관, 부속선(정낭, 전립선, 쿠퍼선), 음경 등의 남성생식기관이 발달하고, 난소에서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나와 수란관, 자궁, 자궁경부, 질 등의 여성생식기관이 발달한다.
그렇다면 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의 경우 46개의 염색체 중 2개의 성염색체가 있다. 여자는 2개의 X 염색체, 남자는 X와 Y 염색체를 하나씩 갖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XX, 모든 남자가 XY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표).
어떤 여자는 XXX, XO(X 염색체가 하나뿐이라는 의미)를, 어떤 남자는 XXY, XYY를 갖는다.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X 염색체가 많아도 Y 염색체가 나타나면 남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Y 염색체가 성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은 간접적인 증거밖에 될 수 없다.
간혹 특이하게 XX 염색체를 갖는 남성과 XY 염색체를 갖는 여성이 태어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염색체의 구조에 대한 연구 결과, XY 여성의 경우 Y 염색체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이 밝혀졌고, XX 남성의 경우 Y 염색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붙어있는 점이 발견됐다. 즉 Y 염색체의 끝부분이 성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Y 염색체의 끝부분에서 성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유전자가 발견됐다. SRY(Sex determination Region of Y chromosome)라 불리는 이 유전자는 Y 염색체의 짧은 팔의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SRY는 생쥐에서도 발견됐는데, SRY를 XX 암컷의 생쥐에 형질전환시켰을 때, 즉 SRY 유전자를 XX 암컷 쥐의 배아줄기세포에 넣은 다음 발생시켰을 때 수컷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SRY 유전자가 성의 결정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RY에 의해 만들어진 단백질은 1차 성 결정 과정인 정소를 형성하는데 관여한다.
그렇다면 성의 결정은 언제 시작될까. 성이 성염색체에 의해 결정된다면 남성과 여성은 이미 수정될 때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어머니로부터는 X 염색체 밖에 받을 수 없는 반면, 아버지로부터는 X 또는 Y 염색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아버지로부터 어떤 염색체를 받느냐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발생 6주까지는 아직 생식소가 정소나 난소로 확정돼 있지 않고 어떤 것으로도 분화될 수 있는 양성의 특징을 가진다.
인간의 새로운 성 스위치
Y 염색체가 있으면 먼저 정소가 만들어지며 남성 호르몬이 나와 남성생식기관이 발달한다. 일단 정소가 만들어지면 여성생식기관으로 발달할 원시적인 구조인 뮬러관이 정소에서 나온 뮬러관억제물질(MIS)에 의해 분해돼 여성생식기관이 형성되지 않는다. 만약 뮬러관억제물질이 없으면 남녀생식기관이 한사람의 몸에서 모두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몸에 남녀생식기관이 모두 나타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1차적인 성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2차적인 성은 호르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때문에 유전자나 호르몬이 바뀌면 성이 바뀔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X와 Y 염색체를 받을 확률은 각각 1/2이다.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오래 전부터 남녀가 절반씩의 비율로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뿌리깊은 남아선호 사상 탓에 아들을 갖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만일 사람의 성이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면 남자아이를 갖기 위해 온도 요법이 성행했을 것이다. 아직 사람에게서 성의 결정 과정에 온도가 관여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진화적으로 볼 때 사람보다 앞서 나온 파충류에서 온도가 성의 결정 과정에 깊이 있게 관여하므로 사람에게서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지난 4월 25일 ‘네이처’의 인터넷뉴스사이트인 ‘사이언스 업데이트’에는 ‘이론생물학 저널’(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5월 7일자에 실린 ‘뜨거운 남성: 인간의 성은 온도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이 소개됐다. 이 논문의 저자인 영국 플리머스 페닌슐라의대의 존 맥라클런 박사와 헬렌 스토리 박사는 온도에 의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성 스위치’(sex switch)가 사람의 진화과정에서 흔적으로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어떤 동물에서는 SRY 유전자가 없는데도 수컷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유전자 외의 다른 요인이 수컷을 발생시킬 수 있다. 맥라클런 박사와 스토리 박사는 그 요인으로 온도를 제시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높은 온도에서는 배아의 발생을 촉진시키는 유전자가 발현되고, 이로 인해 성 스위치가 작동돼 수컷으로 성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부화온도에 따라 암수 나눠져
또한 최근에는 실제로 SRY의 하위 단계에 발생 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DMRT1)가 있으며, 이 유전자의 발현이 온도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가설이 맞다면 높은 온도에서는 남성의 탄생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뜨거운 기후에서 사내아이가 더 많이 태어난다는 속설이 빈말이 아니란 얘기다.
또 맥라클런 박사와 스토리 박사는 성 결정에 대한 온도의 영향이 고환이 신체 밖으로 나와있는 이유일지 모른다고 제안했다. 이들의 가설에 근거한다면 신체 밖으로 나와있는 고환의 위치는 성 스위치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하는 또다른 보호수단일지 모른다.
온도가 포유류의 성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포유류가 항온동물이 되면서 온도의 영향이 적어졌을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파충류나 어류 등에서는 온도가 성을 결정하는데 매우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모든 악어, 많은 거북, 일부 도마뱀의 성은 부화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들은 모두 수정란을 낳아 외부에서 부화가 이뤄지는데, 약간의 온도 차이에도 성이 바뀜으로써 전체적으로 성비가 크게 차이가 난다.
바다거북이 30-35℃에서 부화하면 모두 암컷이 되고 이보다 낮은 20-22℃에서 부화하면 모두 수컷이 되며 두 온도 사이에서는 암수가 모두 태어난다. 하지만 악어의 한 종류인 앨리게이터(alligator)는 반대로 33℃ 이상에서 부화하면 모두 수컷이 되며, 30℃ 이하에서 부화하면 모두 암컷이 된다. 두 경우를 볼 때 성의 결정이 동물에 따라 일정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온도에 의해 성이 결정되는 이런 파충류도 성호르몬을 다르게 처리하면 성이 바뀌는 점이 확인됐다. 따라서 온도와 호르몬의 변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아로마타제(aromatase)라는 효소에 의해 테스토스테론이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낮은 온도에서 수컷이 되는 파충류의 경우 아로마타제는 낮은 온도에서 작용이 억제돼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낮아지므로 수컷이 되고, 온도가 높아지면 효소의 활성이 활발해져 에스트로겐이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암컷이 된다.
온도에 의한 성 결정은 진화적인 장단점을 가진다. 암수의 성비가 1:1에 묶여 있지 않고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암컷을 많이 만들어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생식에 대한 온도의 범위가 한정돼 있어 지역적으로 온도가 상승하거나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온도에 의존하는 종들은 멸종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파충류에서는 성의 결정이 유전자와 전혀 상관이 없을까. 파충류도 성염색체를 갖고 있다. 사람의 경우 남자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성염색체(XY)를, 여자는 같은 2개의 성염색체(XX)를 갖지만, 파충류의 경우에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어떤 파충류는 암컷이 모양과 크기가 다른 성염색체를, 다른 파충류는 수컷이 모양과 크기가 같은 성염색체를 갖는다. 한편 조류는 사람과 반대로 암컷이 다른 성염색체(ZW)를, 수컷이 같은 크기와 모양의 성염색체(ZZ)를 갖는다.
사람에서 성의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SRY 유전자는 모든 척추동물에서 발견된 것은 아니다. 현재 연구 결과로는 SRY가 모든 척추동물에서 성을 결정하는 중심유전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신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 조류, 파충류에서 공통으로 DMRT1이라는 유전자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정소의 분화에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SRY 유전자의 영향을 받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전자가 있으면 수컷이 된다. DMRT1 유전자는 심지어 초파리에서는 doublesex,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에서는 mab-3라는 유사한 유전자로 발견됐다.
이들 모두가 발현 형태에 따라 암컷이나 수컷을 결정하는 이중성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높은 온도에서 수컷이 되는 파충류의 경우 온도를 올려 발생시킨 배아에서 DMRT1 유전자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는 환경에 의한 성 결정이 유전자의 작용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립하면 암컷 되는 달팽이
성을 결정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온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동물들은 지리적인 위치에 의해 성이 결정된다.
바다에 사는 벌레 중에는 보넬리아(Bonellia viridis)라는 종류가 있다. 보넬리아의 암컷은 약 10cm의 크기지만, 수컷은 약 1-3mm에 불과하며 암컷의 내부에서 기생한다. 보넬리아의 유생은 플랑크톤 형태로 살아가는데, 이 유생이 독립적으로 바위에 붙어 살아가면 암컷이 되고 만약 암컷에 먹혀 내부로 들어가면 수컷이 돼 교미에 이용된다.
지리적 위치에 의해 성이 결정되는 또다른 예는 달팽이의 한 종류인 크레피둘라(Crepidula fornicata)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개체들은 벽돌이 쌓여있듯이 서로 포개져 있는데, 어린 것들은 항상 수컷이 되며 생식기관은 퇴화돼 불안정한 시기를 거친다. 이 개체가 암컷 위에 놓여있으면 수컷으로 남지만, 떨어져 나와 독립적으로 고착되면 암컷이 된다. 너무 많은 수의 수컷이 있어도 암컷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일단 암컷이 되면 수컷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환경호르몬(내분비교란물질)도 여러 동물에서 성의 전환이나 양성의 유발에 관여한다. 환경호르몬으로는 비스페놀A, 폴리염화비닐 등 많은 화학물질이 알려져 있는데, 사람에게는 정자의 수를 매우 줄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연안이나 항·포구 주변의 소라, 고둥, 복족류에서는 수컷의 특징이 나타나는 암컷이 보고됐는데 환경호르몬 때문으로 생각된다.
결국 성의 결정은 근본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에 동물에 따라서는 환경적 요인이 매우 중요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람의 경우 정자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체온보다 낮은 온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마도 과거에 성 결정이나 분화 과정이 온도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 대한 흔적일 수 있다.
현재 검증은 돼있지 않지만 다른 동물에서 SRY 유전자보다 하위 단계에서 작용하는 유전자들의 발현 과정에 온도가 관여할 가능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사람에서도 온도가 성의 결정에 관여하는 점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온도, 지리적 위치 등의 환경적 차이는 생물학 시스템에서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발현을 차이나게 조절해 성의 결정에 관여할 것으로 추측된다.
고환이 몸밖으로 드러나 있는 이유
옛말에 사내아이는 아랫도리를 차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단순히 속설처럼 보이지만,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고환에서 형성되는 정자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현대에 들어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정자는 고환의 온도가 체온보다 3-4℃ 정도 낮아야 정상 발육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몸에서 고환을 외부로 떨어뜨린 상태로 점점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온도가 정자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수의과대의 찰스 러브와 로버트 케니 연구팀이 4마리의 종마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염색사에 존재하는 단백질의 S-S 결합 수와, 염색사의 열에 의한 변성 정도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온도가 올라가면 이들 결합이 불안정해진다는 이 결과는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한 정자의 DNA가 작은 온도 변화로 인해 제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나아가 온도 상승에 의한 불임의 가능성도 예측할 수 있다.
정자는 왜 작은 온도 변화에도 변성되거나 생존하기 어려웠을까? 이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아마도 세포예정사에 의해 정자가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있다. 세포예정사 시나리오 중에는 세포들이 산소 가운데 일부인 활성산소가 생성하는 과산화수소에 의해 공격을 받는 산소성 스트레스에 시달려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설명이 있다. 산소성 스트레스는 활성산소를 제거시키는 효소(SOD, SuperOxide Dismutase)에 의해 적절하게 해결되지만, 이 효소는 온도에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하나의 세포이긴 하지만 세포질이 없는 정자는 온도에 쉽게 민감해질 수 있다. 결국 효소의 작용이 어렵게 돼 정자는 세포예정사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자가 이런 죽음으로부터 피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정자가 만들어지는 정소를 외부로 끌어내 온도를 낮춰주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성을 결정하는 초기의 과정은 아니지만, 아마 사람에게도 온도가 성을 결정하는데 관여한다는 흔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