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소녀가 한 달 만에 만났습니다. 다행히 둘다 본격적인(?) 바람은 안 피웠지만, 각자 지은 죄가 있으니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둘 사이에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흐르네요. 소년이 짐짓 명랑하게 외칩니다. “우리 천문대 가서 별 볼까? 오늘(8월 20일)이 견우와 직녀가 1년 중 단 한 번 만난다는 칠월칠석(음력 7월 7일)이잖아~!” 소녀가 음흉하게 웃으며 눈을 흘기네요. “내가 또 속을 줄 알아? 어디 산골 가서 또 차 끊겼다고 하려고?” 소년이 갑자기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질겁하네요. “누님,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최신 트렌드에 뒤쳐져서야 되겠어? 도심에 있는 천문대에 갈 거야!
견우성은 ‘알테어’일까 ‘다비’일까
소년과 소녀는 빌딩 숲 사이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랐습니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천문대장입니다. 견우직녀 설화는 다 아시죠? 오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직녀성과 견우성을 관측할 겁니다. 거기 노란 옷 입고 계신 여자분, 직녀성이 어떤 별인지 아세요?” 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화들짝 놀라네요. “저…, 저요?” 천문대장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네, 거기 예쁜 여자분이요.” 소녀가 활짝 웃으며 답합니다. “거문고자리요!”
직녀성은 여름철 별자리인 거문고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베가’입니다. 일등성인 베가는 전체 밤하늘에서 다섯 번째, 북반구에서는 시리우스, 아르크투르스에 이어 세 번째로 밝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가 있는 중위도 지역 바로 위를 지나기 때문에 도심의 빌딩들 사이에서도 휘황찬란하게 빛나지요.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약 1만2000년 뒤에는 지금의 북극성 자리를 차지하게 될 별이기도 합니다. “그 옆에 잘생긴 남자분, 견우성은 어느 별일까요?” 소년이 더듬더듬 말합니다. “가…, 가야금자리?”
견우성은 독수리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알테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알테어가 견우성이라면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알테어는 은하수 속에 있기 때문에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서 만난다는 설화에 부합하지 않거든요. 견우성은 은하수 너머 남쪽으로 더 내려간 염소자리 언저리에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과거 고문헌에 쓰여 있는 예전 관측 기록과 은하수와의 거리를 참고해서 견우성이 독수리자리의 알테어가 아니라 염소자리의 ‘다비’라고 생각합니다. 다비는 3.2등급이라 밝은 직녀성과 어울리지 않고 도심에서 절대 볼 수 없지만, 빛 공해가 없던 과거에는 충분히 중요한 별로 인식될 수도 있었을 거란 얘기지요.” 천문대장님의 지적인 말솜씨에 소녀는 또…, 아, 아닙니다.
금사빠는 따로 있는 걸까
소녀가 묻습니다. “난 아무래도 ‘금사빠’ 같아.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까?” 소녀는 아마도 김 대리를 떠올리며 후회를 하고 있는가 봅니다. 소년은 ‘얘가 나한테 그렇게 쉽게 넘어왔던가?’ 싶어 싱글벙글이네요. “그건 말이지!” 소년이 말합니다. “어떤 과학자가 실험을 했대. 미드에서 ‘스피드 데이팅’ 본적 있지? 여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고 남자들이 자리 옮기면서 5~10분씩 대화 나누는 행사. 끝난 뒤에 각자 만난 파트너들을 평가하게 했더니, 여자들은 나이가 어리고 외향적이고 행복할수록 남자들한테 점수를 후하게 줬대. 근데 남자들은 점수 주는 경향이 본인 성격이랑은 별 상관이 없었대.” “음? 그것 참 이상하네~. 왜지?” 소년이 웃습니다. “남자들은 다 알아서 공감하고 배시시 웃던데. 숙제야! 날 더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알아와 봐.”
소녀가 또 묻습니다. “그나저나 사랑에 빠지는 거 말고,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도 따로 있는 걸까?” 소년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어여쁘고 귀엽고 가녀린 알바생이 떠올랐을 겁니다. “그건 뭐 너무 자명하지! 남자는 나이가 좀 있고 잘 생기고 스포츠 좋아하고 외향적이고 성실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인기가 많아. 실제 연구 결과도 그렇고. 근데 여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소녀가 새침하게 눈을 흘기네요. 달콤하게 아옹다옹 하는 걸 보니 소년과 소녀는 정말 찰떡 궁합입니다.
아 참, 김 대리와 알바생은 어떻게 됐냐고요? 소년과 소녀가 각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거 어디 말하기도 창피해서 원. 김 대리는 어느 날 자기 누나 일이라며 소녀에게 보험을 권유했대요. 어여쁘고 가녀린 알바생은 소년에게 교회에 같이 나가자고 했고요(ㅋㅋㅋ). 어쨌든 이번 일로 소년과 소녀 모두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