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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모래사막 해안사구

금개구리 집단 서식, 지구온난화 알리는 척도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여름휴가철이면 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을 찾아 떠나는 행렬로 국토의 동맥이 마비되는 현상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해수욕장을 상상하면 넓은 모래사장, 눈부신 햇빛 이외에 해변가에 늘어선 횟집과 노래방도 쉽게 떠오른다. 이런 유희시설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형이 바로 ‘해안사구’다. 어느 해수욕장을 찾아갈지 결정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해수욕장 뒤편의 해안사구를 알고 그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구’(砂丘)는 바람과 모래가 어우러져 만드는 지형이다. 사구라고 하면 보통 아프리카 사하라나 중동 아라비아 사막의 거대한 모래언덕이 연상된다. 하지만 바닷가 모래해안 뒤쪽에서도 이와 같은 모래언덕을 찾아볼 수 있다. 2001년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를 포함한 동·서·남해안을 따라 1백33여개의 해안사구가 있다. 우리나라 전체 해수욕장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안사구가 해수욕장을 개발하면서 방갈로나 음식점, 상가 등이 들어서 파괴됐다. 일부는 해안지역의 도시나 공업용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남아 있는 해안사구도 대부분 방풍림이 조성됐거나 농업용지로 이용되고 있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안사구를 왜 보존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충남 태안군 안면읍 기지포 에 위치한 해안사구


초승달·시루떡·머리핀 모양

바닷가의 모래는 홍수 때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든 퇴적물이나 해저에 쌓여 있던 모래가 파도의 작용으로 운반돼 쌓인 것이다. 이 모래가 강한 해풍에 의해 육지 쪽으로 다시 운반돼 쌓이면 사구가 만들어진다. 사막사구와 달리 해안사구는 이처럼 모래가 바다 쪽에서만 공급된다.

해안사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바닷가에 모래가 충분히 공급돼야 하고, 이 모래를 운반할 수 있는 적당한 속도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그림 1).
 

(그림1) 바람의 방향에 따른 해안사구 생성 모습


모래해안이나 모래갯벌의 면적이 넓으면 모래가 더 많이 공급되기 때문에 해안사구가 잘 발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밀물과 썰물의 차이(조차)가 크다. 따라서 썰물(간조) 때 갯벌이 넓게 드러나며, 한강이나 금강, 삽교천, 안성천과 같은 하천으로부터 다량의 퇴적물이 공급된다. 또 겨울에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북서계절풍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북서 방향으로 노출돼 있는 해안에 비교적 큰 규모의 해안사구가 잘 형성돼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진 곳들로는 충남 태안군 신두리, 학암포, 천리포, 만리포, 대난지도, 안면도, 옹진군 백령도와 대청도, 전북 고창군 장호리와 용정리, 전남 신안군 임자도,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서산시 대산면 독곶리 해안 등이 있다.

이런 바닷가 뒤편에는 높고 낮은 봉우리가 있다. 썰물 때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해안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육지에서 가장 먼 조하대는 썰물 때도 바닷물에 잠겨 있다. 여기서는 갯지렁이나 조개와 같이 바다 밑바닥에 사는 생물과 해조류가 서식한다. 그 앞에는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는 잠기는 수백m 폭의 조간대와 모래해안(해빈)이 있다. 식생으로 덮여 있는 해안사구지대는 고도가 가장 높은 모래해안의 상부에서 관찰된다.

해안사구지대 중 바다와 접하는 곳에 해안선을 따라 평행하게 형성돼 있는 지형이 전사구(foredune)다. 대개 뿌리가 길고 염분에 강한 1년생 풀로 덮여 있다. 전사구는 해빈으로부터 운반된 모래가 쌓이면서 서서히 성장한다. 강한 바람과 파도의 침식으로부터 뒤쪽 사구지대를 보호하기 때문에 해안사구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지형이다.

전사구의 모래가 바람에 의해 침식돼 전사구 안쪽으로 운반되면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진다. 쌓여 있던 전사구의 모래가 이동해 다시 퇴적됐기 때문에 이차사구라고도 한다. 이차사구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 모래의 공급량 등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일정한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모래언덕이다.

다량의 모래가 계속 공급되고 한쪽 방향으로 바람이 계속 부는 지역에서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두개의 긴 꼬리를 가진 초승달 모양의 바르한형 사구(barchan dune)가 형성되기도 한다. 또 바람이 두 방향에서 불어오는 지역에서는 바르한형 사구의 한쪽 꼬리가 길게 늘어나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차고 다니는 반달모양의 칼처럼 생긴 세이프형 사구(seif dune)가 만들어진다. 퇴적된 모래 위에 식물이 자라고 다시 그 위에 모래가 쌓이는 과정이 반복되면 시루떡처럼 켜켜이 성장하는 샌드허목 사구(sand hummock)가 형성될 수 있다. 또 모래언덕 표면에는 바람이 불 때 모래가 이동하면서 바람의 방향과 수직으로 물결무늬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구지대의 모래는 매우 작아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하나의 사구지대 내에서도 바람에 의해 모래가 운반돼 쌓여 만들어지는 지형과 바람에 의해 깎여 만들어지는 지형이 모두 나타난다. 전사구의 약한 부분에 강한 바람이 집중되면 모래가 깎여 움푹 패인 취식와지(blow-outs)가 형성된다. 취식와지는 원형이나 타원형의 접시 모양으로 깎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모양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더 길어지면 U자형 사구(U-shaped dune)나 머리핀형 사구(hairpin dune)라고도 불린다. 형성된 직후에는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된다. 언뜻 보기에는 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마치 사람이 일부러 파놓은 것 같다.

60cm 모래 뚫고 싹틔우는 통보리사초

사막사구에서는 선인장처럼 건조한 환경에 강한 식물이 자란다. 이와 달리 온대지역의 사구는 강수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이 자랄 수 있다. 실제로 초여름에 신두리를 방문하면 연두빛 초원과 바람따라 물결치는 흰색 띠꽃 군락, 그 사이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른 연분홍 해당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강수량이 풍부하다고 해서 해안사구지대가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만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해안사구의 식물은 여러가지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선 강한 바람과 염분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또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과 강한 햇빛도 이겨내야 한다. 따라서 사구지대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세웠다.

우선 해안사구 식물들은 키가 작다. 실제로 1m가 넘는 식물이 드물다. 사구식물은 바닷가의 강한 바람에 적응하게 위해 지면 위에 넓게 퍼져 자라기 때문이다. 순비기나무는 땅위를 기어가는 줄기에서 새순이 돋고 뿌리를 내리는 형태로 번식과 생장을 한다. 생장점이 줄기의 마디 상단에 있어 옆으로 길게 뻗어나가면서도 쉽게 생장할 수 있다. 또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강한 바람에 쉽게 날아가지 않고 끊어져도 각 마디가 독립적으로 번식할 수 있다. 갯메꽃도 덩굴성 줄기가 지표로 기어가면서 자라고 꽃도 지표면에 붙어서 핀다. 연분홍색 꽃을 피우는 해당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물들이 강한 바람에 모래가 침식되는 것을 막아 사구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해안사구 식물들은 뿌리가 잘 발달돼 있다. 모래로 구성된 해안사구에서는 비가 와도 곧 물이 빠진다. 사구의 저지대는 지하수면과 가깝지만 30여m 가까이 성장한 이차사구의 정상부는 지하수면과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사구지대에 사는 식물이 지하수를 이용하려면 뿌리가 길어야 한다. 또는 미세한 잔뿌리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을 흡수해야 한다. 실제로 통보리사초의 뿌리는 땅속으로 수m 깊이까지 뻗어 있으며 수평으로는 수십m에 이른다.

수분이 부족하다는 사실 외에도 사구식물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요인은 지속적으로 쌓이는 모래다. 북서계절풍이 바다로부터 모래를 운반해오는 겨울이 지나면 심할 경우 모래가 수m씩 쌓이기도 한다. 두껍게 쌓인 모래 속에 묻힌 육지식물은 더이상 성장하기 어렵고 그 씨앗도 발아하지 못한다. 하지만 통보리사초의 줄기는 땅 속을 기어가면서 자라 땅속줄기(지하경)라고 불린다. 때문에 지표 가까이까지 생장점을 이동시켜 모래가 덮여도 계속 생존할 수 있다. 60cm 정도 쌓인 모래까지는 거뜬하게 뚫고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한 생명력이다. 전사구에서 잘 자라는 갯그령도 지하경으로 번식하며 긴 뿌리를 갖고 있다. 이렇게 발달된 사구식물의 뿌리와 줄기는 모래를 고정시키므로 사구 자체를 보호할 수 있다.

해안사구 식물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또다른 난제는 바닷물의 염분이다. 사구식물은 염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에 빈번히 잠기는 전사구 자체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갯그령은 바닷물에 잠겨도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 사구식물이 다른 식물과 달리 염분에 노출돼도 성장이 가능한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한편 사구지대의 식물은 다른 나무의 그늘에 가려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햇빛에 장시간 노출돼 있다. 여기에 지표면의 반사열까지 더해지면 식물의 체온은 계속 상승하게 된다. 식물의 체온이 35℃를 넘으면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효소가 파괴된다. 따라서 광합성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져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사구지대 식물의 잎이나 줄기는 햇빛을 반사시킬 수 있게 생겼다. 갯방풍, 갯메꽃, 곰솔,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나 좀보리사초와 같은 사구식물의 잎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위해 반짝인다. 한편 해당화의 줄기에는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어 강한 햇빛을 어느 정도 가려준다. 그리고 떡쑥의 줄기와 잎 표면에는 분을 칠한 것처럼 미세한 흰색 털이 나있다.
 

(그림2) 해안 지형의 단면


금개구리와 맹꽁이 집단 서식지

이런 생존전략으로 정착한 사구식물의 대부분은 벼과와 사초과에 속하는 풀이다. 따라서 해안사구에서는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등이 풀잎을 뜯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을 잡아먹는 사마귀나 개미귀신과 같은 곤충과 조류도 다양하게 서식한다. 또한 초식동물인 토끼와 고라니, 그리고 이들을 잡아먹는 너구리가 서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모래사장에서 알을 낳는 종다리와 물떼새, 곤충을 잡아먹는 표범장지뱀, 육식성 조류인 황조롱이와 새매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백로가 사구지대 내부 습지에서 쉬고 있는 모습도 발견됐다. 또한 이런 습지에는 환경부보호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도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생물종의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환경부에서는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을 생태보전지역으로 설정하고 자연생태조사단을 발족해 전국의 기초생태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또 1997년 생물학·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전하기 위한 람사협약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인 노력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이런 관심이 동·식물에만 집중돼 있고 이들이 살아가는 기반인 지형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물종 다양성은 서식지 다양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생물종을 다양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특정 지역들을 보전해야 한다.

이 외에도 사구지대를 보전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대부분의 사구는 해수면이 낮아지거나 퇴적물의 공급이 많을 때 형성된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해수면의 높이가 변하면 사구지대가 형성되는 환경도 바뀐다. 그러면 사구도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즉 사구지대는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이 빠르다. 따라서 모래가 운반되고 쌓이는 정도를 오랜 기간 동안 파악하면 사구의 현재 상황과 미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해수면의 상승여부와 해수면 변동에 따라 해안지형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신두리 사구지대에는 현재 형성되고 있는 사구의 아래쪽에 색깔과 외형이 다른 또하나의 사구가 있다. 이 사구는 현재와 해수면 높이가 달랐던 과거에 형성된 사구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곳의 퇴적물을 분석하면 사구가 형성된 시기와 당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구에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자료가 모두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의 모래사막 신두리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모래사막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반도의 북서부 해안인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다. 해안선을 따라 길이가 약 4km, 폭 5백m 이상의 넓은 사구지대가 형성돼 있다.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지형이 나타나고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해안사구의 전형이다.

무리지어 피어오른 띠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연분홍 해당화 군락, 세찬 바람에 날리는 모래구름, 사막을 연상하게 하는 모래언덕, 그리고 사구에서 바라다 보이는 넓은 해변과 같은 풍경이 어우러져 무한한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1년 문화재청은 신두리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북쪽 부분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했다. 이듬해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는 신두리를 각각 습지보호지역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신두리에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신두리 사구지대 남쪽에는 여느 해안과 마찬가지로 방갈로와 횟집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해안에 방파제가 조성되고 진입로가 만들어지면서 전사구가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오프로드 차량의 바퀴자국이 사구지대 여기저기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으며,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병조각이 곱던 백사장에 비수를 꽂은 듯 박혀 있다.

생존을 위해 모래와 투쟁했던 사구식물들은 이제는 도로나 차량에 묻어온 달맞이꽃이나 개망초, 칡, 토끼풀과 같은 육상식물과 싸워야 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사구식물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모래언덕 자체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 규사광산으로 허가돼 모래가 외부로 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구지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사구 부분에 개발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사구가 파괴되면 전체 사구지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불가피하게 개발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전사구 지역을 피해 다른 지역을 개발하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차량의 접근을 막고 관광객이 출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천연기념물이나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해안사구를 지켜내기 어렵다. 해수욕장 개발도 해안사구지대의 생태적 특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해안사구의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도 지속돼야 할 것이다.

200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서종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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