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하기위해 휴학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이젠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로 탈바꿈했다.
이제 낙엽도 거의 다 떨어지고 겨울을 재촉하는듯 찬바람이 목을 스친다.
작년 봄에만 해도 모든 것을 새로와하며 어리둥절하는 '아기독수리'였지만 이제는 벌써 대학생활의 반인 2년이란 세월이 흘러 힘찬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에와서 다시 고등학교 시절과 지나온 대학생활을 돌이켜 본다는 것이 새로운 감회에 젖게 한다. 어떻게 보면 2년이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불과 2년전만 해도 입시생이었던 내가 이제 선배로서 여러분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좀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만 내가 지내온 경험을 통해 우리과와 대학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펜을 든다.
여러분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지내보라면 자신없어도 생각만으로는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볼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수업끝나고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조금 책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거의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1, 2학년 때는 주로 영어, 수학에 치중하였고 나머지 과목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의 공부로 대신했다.
3학년 여름방학 전까지는 국어, 영어, 수학과 그외의 과목들을 7대 3정도의 비율로, 그 이후는 3대 7 정도로 공부했다. 계속 모든 과목에 손을 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절박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지금 직접 처하고 있는 학력고사 약 한 달 전에는 2대 8 정도로 모든 과목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고등학교 시절을 마쳤다.
지금 생각해 볼 때 학력고사 성적이 모의고사 성적보다 떨어졌던 것은 그 공부방식은 때문이 아니라 시험 당일에 너무 긴장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험이 끝나고 못풀었던 문제를 다시 보았을 때 '왜 이런 문제도 못풀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하는 점수도 안나왔고 내년이면 입시제도가 바뀐다면 것때문에 일단 연대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나서 휴학계를 내고 다시 재수를 할 생각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계속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름대로 학교와 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비슷한 수준에서는 대학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며 비록 적성을 학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과를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산과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비록 오락에서부터 관심을 느꼈지만 첨단산업으로서 앞으로의 전망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전산과학과는 이과대에 속해있다. 정원은 50명이며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은 약 3대 1 정도이다. 이제 겨우 6년된 신설과로서 교수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학생 약 70명당 교수님 한 분꼴로 타 대학교와 비교해 볼 떄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고 기자재(주로 컴퓨터)도 그리 좋은 편이 못된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과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의 상황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내년에는 교수님도 두분이 더 오시게되어 다섯분으로 되고 기자재도 학교측에서 점차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과 자체적으로 기업과의 섭외를 통해 그것들을 얻어내려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젠 전산과에 속해 있는 내가 대학생활에서의 전반적인 것과 느낀 바를 적어보려 한다.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어쩌면 사회생활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하라면 자율성의 유무라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는 그저 하라는대로하면 되었고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배워나가야 한다. 전공 공부만 하더라도 그렇다. 수업시간에 하는 것외에 따로 참고서적을 보거나 세미나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밖에 많은 문화행사들(축제, 연고전, 노래극 등)을 스스로 접하며 교양도 쌓을 수 있다. 이것들에는 강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얼마나 공부를 할 것이며, 얼마나 문화행사에 참여할 것인가가 결정될 뿐이다.
나의 대학생활은 전공에 필요한 부분을 따로 조금씩하고 있고 서클에도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행사에도 가능하면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뿐만아니라 그 행사중 일부를 주최하는 일도 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비록 남의 강요는 없지만 내가 그 일을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또 그에 따른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그 일을 잘 끝냈을 때의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대학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생시위라 할 수 있다. 이점은 내가 고등학교때 가장 궁금하게 여겼었던 부분이다. 즉 '과연 저들이 외치는 것이 정당할까", '저들중에 정말 간첩이라도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들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곧 풀리게 되었고 학생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요즘 5공화국 비리조사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조사과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위의 의문들이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처음으로 다가온 고민이었고 두번재는 인간관계였다.
학기초에 오리엔테이션이 많았지만 재수할 생각때문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과동기와의 대화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발을 붙이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커다란 장애가 되었으며, 극복하는데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친한 친구나 선배, 후배도 많이 있고 어느 정도 고민은 해결되었다.
흔히 대학시절의 친구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사귈뿐 진정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대하느냐, 즉 얼마나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친구에 우열을 매긴다는 건 우습이지만 오히려 대학친구가 그 이전의 친구보다 더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등학교를 우물이라 한다면 대학은 강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생활해본다면 이런 비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나의 고등학교, 대학생활과 우리 과에 대한 일반적인 것들을 소개 형식으로 써 보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글이 여러분에게 대학을 바로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동안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나의 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할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라. 그 결과는 상관없다'라는 말씀을 후배들에게 옮긴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번은 경험해 볼 곳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한사람이라도 우리 과에 들어온다면 술 한잔 사줄 용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