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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운전 왜 위험할까

배경 똑같아 시각정보 왜곡돼

회사원 김모씨(45)는 최근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터널을 통과하다가 큰 사고를 낼 뻔했다. 무심코 선글라스를 쓴 채로 터널에 진입했는데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진 것이다. 앞뒤와 주위 자동차가 잘 보이지 않았고, 계기판도 어두컴컴했다. 당황한 김씨는 재빨리 선글라스를 벗어 사고를 면했지만 놀란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최근 서울 홍지문 터널에서 버스가 전복되는 등 터널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일반 도로보다 터널이 더 위험하다. 터널 안에 들어서면 교통 조건이나 운전자의 감각이 갑자기 변해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또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나면 탈출구가 부족하다는 터널의 특성 때문에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교통 전문가들은 터널 운전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가 시각 정보가 왜곡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운전할 때 필요한 정보를 85-90% 가량 눈으로 얻는다. 즉 자신의 차와 주위 차의 움직임, 주위 건물, 신호등, 사람, 계기판 등을 눈으로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밤 운전이 낮 운전보다 위험한 것도 시각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서도 시각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또 눈으로 얻은 시각 정보가 실제 정보와 달리 왜곡되기 일쑤여서 더 위험하다.

선글라스 끼면 위험한 이유


터널 안은 빛도 약하고 똑같은 벽이 계속 이어져 속도감과 거리 감이 떨어진다.


자동차를 타고 터널 안에 들어서면 차가 얼마나 빠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 즉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차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되면 속도를 늦춰 사고를 예방하지만 터널 안에서는 계기판을 보지 않는 한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과속을 하고 있는데도 보통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또 터널 안에서는 앞뒤나 옆에 있는 차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즉 차간거리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교통과학연구원 황상호 수석연구원은 “터널 안에서는 특히 앞차보다도 옆차선을 달리는 차와의 거리를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터널 안에서 추월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터널 안에서 속도감이나 거리감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것은 똑같은 배경 때문이다.

외부 도로에서는 운전자가 다양한 주위 환경과 비교해 속도나 차간 거리를 측정한다. 그러나 터널 안에서는 등불이 켜진 똑같은 벽이 계속 이어질 뿐이어서 속도나 차간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더구나 터널 안은 밤처럼 어두워 시각 정보를 얻기가 더욱 어렵다. 차간 거리를 측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닥 차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이 터널에 적응하는 속도가 늦은 것도 운전에 어려움을 준다. 눈에 있는 동공은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어두울 때는 많이 열리고 밝을 때는 적게 열린다. 문제는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다.

방에 있는 불을 갑자기 꺼버리면 주위가 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동공이 활짝 열리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방에 가만히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터널 안에서는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 사람의 동공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진입할 때 필요한 적응시간이 반대의 경우보다 5배나 오래 걸린다. 즉 터널에 진입할 때가 터널에서 나올 때보다 동공 적응 시간이 길고 운전도 더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글라스를 끼거나 진하게 선팅을 한 차를 몰고 터널에 진입하면 주위나 계기판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당황하다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교통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터널 안에서는 벽을 타고 등불이 쭉 이어져 있다. 터널 안을 밝히기 위한 중요한 등불이지만 때로는 이 등불이 운전을 방해할 수 있다. 경원전문대 박형주 교수(소방시스템과)는 “터널 안에 설치된 조명을 계속 보다보면 눈이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차를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쉬워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터널 안에서 들리는 독특한 소리도 운전에 위험하다. 터널을 지날 때 ‘웅’하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터널 안에서는 소리의 공명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약간 멍해지면서 주의 집중이 잘 안되고 기분이 다소 들뜬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 된다.

터널 안은 일종의 폐쇄 공간이다. 폐쇄된 공간을 무서워하는 정신병을 폐쇄 공포증이라고 한다. 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폐쇄된 공간을 싫어하는 심리가 있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터널 안에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폐쇄 공간을 빠져나오려는 심리가 생겨 속도를 더 내게 된다.

불길 역류 부르는 교통풍

터널 안은 일반 도로와 비교해 물리적 상태도 달라진다.

겨울이 되면 강원도 같은 추운 지방에 있는 터널 입구에서는 얇은 얼음막이 생기기도 한다. 눈이 녹거나 터널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물방울이 맺히기 때문이다. 터널 안이 온도가 높고 터널 바깥은 온도가 낮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자동차는 얼음 위를 지나가면 마찰 계수가 크게 떨어져 브레이크를 잡아도 한참 미끄러진다. 이 때문에 영동고속도로 같은 일부 터널 입구 바닥에는 열선이 깔려 있어 눈과 얼음을 녹이기도 한다.

더 위험한 상황이 터널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바로 안개다. 알프스 등 세계의 추운 지방에 있는 긴 터널은 안개가 수시로 낀다.

터널 전문가인 유신코퍼레이션 문상조 전무는 “국내 일부 터널에서도 계절에 따라 안개가 낀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런 곳은 자칫 잘못하면 충돌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고 말했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은 고마운 바람이지만 터널 안에서 부는 바람인 ‘교통풍’은 매우 위험한 바람으로 돌변할 수 있다.

공기가 좁은 통로로 지나가면 빠른 속도로 바람이 불게 마련이다. 더욱이 터널은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지나가면서 초속 6-7m의 바람이 늘 분다. 시속으로 하면 20km나 된다. 교통 현상 때문에 부는 바람을 교통풍이라고 하는데, 터널 안이 교통풍이 부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자동차를 타고 터널 중간에 잠시 내려보면 강한 바람이 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바람은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함께 분다. 1백m 달리기 선수가 신기록을 세워도 기록을 공인받지 못하는 때가 있다. 뒷바람이 규정 이상으로 불 때다. 그만큼 달릴 때 뒤에서 바람이 불면 속도가 더 많이 나온다.

터널 안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터널에서 조금만 가속해도 일반 도로보다 더 빨리 속도가 붙는데 교통풍이 차를 밀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평소 가속페달을 밟는 것보다 더 과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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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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