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동지나해에서 북상하는 태풍의 위력을 안방에서 TV생중계처럼 볼 수 있게 된다. ‘전설의 섬’ 이어도가 첨단시설을 갖춘 4백평짜리 인공섬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6월 2일 해양경찰의 러시아제 구조 헬기를 타고 완공을 앞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찾았다. 제주공항에서 남서쪽으로 망망대해 위를 난지 한 시간. 동중국해 한복판에 이르자 성냥갑만한 기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막상 착륙하니 엄청난 규모와 첨단과학시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해상호텔이라고나 할까? 기지를 떠받치는 웅장한 철구조물은 40m가 바다에 잠겨있고 36m는 바다 위에 우뚝 솟아있다. 암초 위에 25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 놓은 꼴이다. 그 위에 힘차게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니 ‘아! 대한민국!’이 절로 나온다.
이어도는 어떤 섬인가
이어도는 섬이 아니다. 평균 수심은 50m, 남북과 동서 길이가 1천8백m, 1천4백m인 수중암초다. 암초의 정상도 해수면 4.6 m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때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도는 고려 때부터 중국과 탐라(제주)사이 바다 어디엔가 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섬이었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남편을 영영 바다로 보낸 제주 해녀의 애환을 담은 노동요 ‘이어도’ 가락에서나 들을 수 있는 상상의 섬이었다. 하지만 1900년 영국 상선이 암초에 부딪쳐 위치가 확인되면서 배의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로 명명됐다.
암초 주변은 돌돔, 조피볼락, 붉바리 같은 고급어종이 많은 황금어장이다. 그러나 다이빙하기에는 위험한 곳. 쿠로시오 해류 및 조류가 이곳을 지날 때는 수심이 얕아져 급물살로 변한다. 연구원들은 가끔 낚시를 한다. 해류가 세다보니 추를 2개 연결해야 겨우 바닥에 닿는다. 이곳은 해상교통의 요충지여서 1987년 이래 해운항만청이 6번이나 떠있는 등대를 설치했으나 매번 파도에 휩쓸려 유실됐다. 이번에는 암초에 60m 깊이로 8개의 파일을 박아 25m의 파고와 1분 평균풍속이 초속 60m의 태풍에도 견딜 수 있게 튼튼한 기지를 건설했다.
이어도는 누구 땅인가
해양기지를 세웠으니 이어도와 근처 바다가 우리 섬, 우리 영해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국제법상 암초나 바다의 인공구조물은 영해나 대륙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도 해역은 한·중·일 3개국의 2백 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분쟁 수역이어서 중국도 그동안 두 차례 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1백49km 거리. 중국과 일본의 가장 먼 무인도인 뚱따오(童島)와 도리시마(鳥島)에서는 각각 2백47km와 2백76km 떨어져 한국에 훨씬 가깝다. 따라서 앞으로 한·중·일 협상을 하면 이어도 일대는 우리가 석유자원 개발과 과학적 조사활동을 할 수 있는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 한국이 과학기지를 건설한 이상 주변국이 이곳을 자기 네 바다라고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과학기지에는 무엇이 있나
기지가 완성되기까지는 8년의 긴 세월이 걸렸다. 계획과 설계는 한국해양연구원이 했고, 해양수산부가 건설비 2백12억원을 지원했다. 해양구조물 제작과 시공은 현대중공업이 했다. 기지의 자랑거리는 파랑, 해류, 풍향, 풍속, 기온, 기압, 강우량, 수질, 염도 등을 측정하는 44종 1백8개의 최첨단 관측장비다. 컴퓨터실에 들어가 현재 가시거리를 보니 ‘1만1천7백40m’라는 수치가 정확히 측정돼 나온다. 이곳에서는 8명이 2주일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숙식할 수 있다. 인터넷과 이메일은 물론 스카이라이프로 위성방송도 즐길 수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 발전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기는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전지로 충당된다. 빗물 정화시설과 하수처리시설까지 있다.
한국해양연구원은 평상시 이 기지를 무인 운전하고 필요할 때만 헬기를 타고가 시설을 점검한다. 안산의 한국해양연구원 본부에서 기지 내의 모든 장비를 무궁화위성2호를 통해 원격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측기록과 영상은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소와 기상청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상주할 필요 없다. 도난 방지시설도 철저하다. 폐쇄회로 TV와 적외선 센서가 침입자를 감지하면 4개국 말로 경고방송을 하고 계단을 자동으로 들어올려 못 올라오게 한다.
이어도기지의 건설 효과
해양기지의 건설 효과는 막대하다. 기상예보, 해양예보, 어장예보가 정확해진다. 기지 건설의 제안자인 한국해양연구원 이동영 박사는 “한반도를 통과하는 태풍의 40%가 이곳을 지나 10시간 쯤 후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정확한 태풍의 진로 예측이 가능해진다. 강한 태풍이 수조원의 피해를 입히는 것과 비교하면 2백억원 남짓한 해양과학기지 건설비는 적은 액수다.
인공위성 원격탐사로 얻은 수온, 해류, 파랑, 바람 같은 해양관측자료가 실제 바다에서 측정한 데이터와 일치하는지 검증하는 것도 과학기지의 중요한 임무다. 바다에 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위성자료가 더욱 정확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지는 매년 이 근처를 지나는 25만척의 선박과 어선에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비상시 피난처 역할도 하게 된다.
기지건설책임자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
“악천후 속에서 암초에 깊이 60m의 기초 파일을 8개 박고 그 위에 해상크레인으로 높이 76m, 무게 3천4백t 짜리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 해양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연안공학)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건설의 산 증인이자 한국을 해양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심 박사는 얼마 전 국립해양조사원에 요청해 국내 해도에도 이곳을 암초가 아닌 ‘이어도’로 표기하도록 했다.
심 박사는 “해양과학기지가 해양, 기상 관측은 물론 환경 감시에도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2002년 강원도에 무려 8조원의 피해를 입힌 태풍 루사도 바로 이어도 해역을 통과했다”며 “만일 당시에 기지가 있었다면 태풍의 위력과 예상 강수량을 정확히 파악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중국이 양쯔강을 막아 건설 중인 세계 최대의산샤댐이 바다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파악하는 것도 쉬워진다. 또한 1초마
다 해수면을 측정하는 해수면 레벨측정기가 있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도 아주 정확하게 알 수있다고 한다. 심 박사는 2006년에는 서해,2010년에는 동해에도 해양과학기지를 세운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해양목장, 해양호텔, 해저도시를 만들어 해양 한국의 전통을이어갈 다음 세대와 함께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가는게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