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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소두증, 지카바이러스 단독범행일까



작년부터 남미를 중심으로 무섭게 퍼지고 있는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왜, 어떻게 소두증을 일으키는 걸까.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진 않았지만, 지카바이러스와 소두증 사이의 인과관계는 강하게 의심된다.”

지난 2월 1일, 세계보건기구는 국제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작년 10월부터 브라질 북동부에서 소두증에 걸린 신생아 출산이 급격히 증가해 아기를 가진 전세계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소두증은 태아의 뇌 발달에 문제가 생겨 머리 크기가 작아지는 병이다. 아기의 성장과 발달을 지연시키고 인지능력 장애, 균형감각 상실, 청력 저하, 시각장애, 경련이나 발작 등을 일으킨다. 정상
적인 신생아의 머리둘레는 34~37cm인데, 소두증에 걸린 신생아는 32cm 이하인 경우가 많다.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의 원인인가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여기엔 지카의 신출귀몰한 특성이 한몫 했다. 지카에 감염된 사람 중 80%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머지 20%도 감기몸살 수준으로 열이 나고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상이 있어도 지카의 RNA는 일주일이면 사라져 검출하기가 어렵다. 몸에 남아있는 항체를 조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중남미에 널리 퍼져있는 뎅기바이러스의 항체가 지카의 항체와 매우 닮아 구분하기 힘든 탓이다. 이 때문에 소두증과 지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기초적인 진단에서부터 오류가 생겼다.

지카를 너무 섣불리 ‘용의자’로 단정 지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1월 28일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라틴아메리카 선천성 기형연구연합(ECLAMC)의 호르헤 로페즈-카멜로와 이에다 마리아 오리올리 연구원은 소두증이 증가한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두증이 큰 이슈가 되면서 출생결함조사가 강화됐고, 정상과 비정상을 명확히 판정할 기준이 없던 탓에 소두증 오진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2월 중순부터 부인할 수 없는 ‘정황 증거’들이 쏟아졌다. 소두증에 걸린 태아의 뇌와 척수액에서 지카바이러스가 검출됐고, 산모의 양수와 태반에서도 바이러스가 나왔다. 현재 브라질에선 소두증 태아를 가진 산모와 정상 산모를 추적비교 하는 대규모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제 아래 질문들을 던
질 차례다. 지카는 왜, 무슨 이유로 소두증을 일으키는 걸까.



바이러스는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우리 몸에 피해를 입힌다. 노로바이러스가 설사를 일으키거나, 에볼라바이러스가 온몸에서 출혈을 일으키는 건 전염을 위해서다. 불필요한 데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지카가 소두증을 일으키는 게 맞다면, 무슨 이익이 있어서일까.

지카가 동물 뇌에서 증식하는 모습을 관찰한 논문이 딱 하나 있다. 1971년 영국 뉴캐슬대 분자당뇨의학과 마크 워커 교수가 쥐의 뇌에 지카를 감염시켜 실험한 논문이다. 지카는 뉴런과 별아교세포(성상교세포)에서 활발히 증식했다. 뇌세포를 숙주로 삼기도 한다는 사실이 이때 처음 밝혀졌다.



지카는 숙주세포를 독특한 방식으로 망가뜨린다. 스페인 마드리드자치대 바이러스미생물학과 마틴 아세베스 교수팀은 2014년, 지카를 비롯한 플라비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침입해 자가소화작용을 일으키도록 유도한다는 리뷰논문을 발표했다(doi:10.3389/fmicb.2014.00266). 자가소화작용은 세포소기관이 고장 났을 때 세포가 이를 분해해 재활용하는 대사과정이다. 외부에서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도 세포는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세포소기관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특정 단백질을 가지고 있는 병원체를 동시에 소탕할 수 있어서다. 집안 살림을 축내는 바퀴벌레와 쥐가 옆 곳간까지 침범하기 전에 곳간을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셈이다.

그런데 일부 영악한 바이러스들은 곳간이 무너지는 걸 환영한다. 아직 그 과정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플라비바이러스는 세포의 자가소화작용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남을 뿐 아니라 숙주의 골지체나 소포체 등 구조물을 재조직해 자신의 단백질 생산 장소로 적극 활용한다. 자가소화작용을 일부러 유도해 번식에 이용하기까지 한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일으킨 자가소화작용 때문에 숙주는 선천면역(1차면역)의 효능이 떨어져 바이러스를 더 막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2015년, 지카가 사람 세포에서도 자가소화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프랑스 연구개발기관(IRD) 전염병벡터연구실의 도로시 미스 박사팀이 사람의 피부세포에 침입한 지카가 자가소화작용을 유도해 세포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실험으로 관찰한 것이다(doi:10.1128/JVI.00354-15). 뇌세포 등 신경계에서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틴 아세베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정황상지카가 신경계에서도 자가소화작용을 일으킨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했다.

소두증은 태아의 뇌세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생긴 증상이다. 지카바이러스가 뇌세포를 ‘자해’시켜 자신의 복제에 활용하는 통에 소두증이 생긴 걸까. 아세베스 교수는 “자가소화작용을 소두증의 원인으로 단정 짓긴 어렵다”고 했다. 열병을 일으키는 또 다른 플라비바이러스인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도 자가소화작용을 일으키긴 하지만 소두증은 일으키지 않는다. 자가소화작용 하나만으론 소두증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경세포에 지카바이러스를 직접 키워보는 것이다. 현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연방대 연구팀은 사람의 뇌줄기세포를 키워 실험용 미니 장기를 만든 뒤 지카를 감염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지카의 생존전략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지카에게 소두증을 일으킬만한 사연이 있었다고 해도 ‘왜 갑자기 지금?’이라는 의문이 남는다. 1952년 인체 감염이 처음 확인된 뒤로 60년 넘게 얌전히 지내던 지카가 2015년에 와서 갑자기 폭주한 이유가 뭘까. 혹시 지카를 돌변하게 만든 뭔가가 있을까.

지카를 부추겨 소두증을 일으키게 만든 ‘공범’이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최근 나왔다. 용의자는 지카와 유전자가 70%나 겹치는 뎅기바이러스다. 지카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의대의 마이클 다이아몬드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지카와 뎅기에 둘 다 감염된 사람의 몸에서 항체가 교차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항체 의존성 강화’라고 부른다.

항체 의존성 강화는 원래 뎅기바이러스의 네 가지 혈청형 사이에서 주로 일어나는 반응이다. 형제처럼 닮은 두 바이러스 A1과 A2가 있다고 하자. 먼저 A1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반응해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A1에 반응하는 기억B세포를 남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A2가 뒤이어 침입했을 때다. 면역계는 A1이 들어온 줄 착각하고 기억B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사고’를 친다. 여기서 생긴 면역세포들은 A2와 결합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 면역세포는 A2에 맞는 B세포를 생산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면역력은 떨어지고 질병이 기승을 부린다. 도둑이 들었는데 엉터리 경찰들이 나서서 도둑도 못 잡고, 능력 있는 경찰이 출동하지 못하게 막는 꼴이다.

마이클 박사는 “뎅기와의 교차반응으로 인해 지카의 독성이 커졌다는 가설은 아직 추정 수준”이라며 “뎅기 항체가 지카의 독성을 키웠는지, 거꾸로 지카 항체가 뎅기의 독성을 키웠는지 몇 개 연구팀에서 현재 조사 중”이라고 했다. 이 가설로는 아프리카에서 잠잠하던 지카가 중남미로 건너와 독성이 강해진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뎅기 감염률이 낮은 아프리카와 달리, 중남미는 전체 인구의 90%가 12세 전에 뎅기에 감염될 정도로 만연해 있다. 뎅기뿐 아니라 치쿤구니야, 웨스트나일 같은 플라비바이러스가 전반적으로 아프리카보다 중남미에 많다. 그만큼 항체가 교차반응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지카가 중남미에서 폭발적으로 퍼진 이유로 돌연변이를 꼽는 과학자도 있다. 작년 11월 25일,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지카가 뎅기의 유전자를 받아 감염력을 키웠다는 내용의 논문 한 편이 올라왔다(doi:10.1101/032839). 바이오아카이브는 생물학 논문을 학술지에 정식으로 출판하기 전 임시로 올리는 사이트다. 동료검증(peer review)을 거치지 않아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내용이 흥미로우므로 살펴본다.

브라질 상파울루대 생물의학과학연구소 파올로 자노토 교수팀이 쓴 이 논문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퍼진 지카의 유전자 차이를 분석했다. 지카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돼 아시아에서 일부 유전자 변이를 거친 뒤 중남미로 건너갔다. 따라서 중남미 지카는 아시아 혈통이다. 파올로 교수팀은 지카의 두 혈통 중 아시아 혈통만 대유행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아시아 혈통은 DNA를 번역하는 유전자 일부가 바뀌어 있었다. 뎅기에 있던 유전자가 지카로 건너와 사람과 모기의 세포에 더 잘 적응하도록 바뀐 것이다.

지카와 뎅기는 모두 이집트숲모기가 옮긴다. 모기 몸속에서 두 바이러스가 섞여 유전자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소두증뿐 아니라 길리안바레증후군도 유전자 변이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언급도 있다. 길리안바레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근육에 마비가 오는 질환이다. 2013년에서 2014년까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지카와 뎅기, 치쿤구니야 바이러스가 동시에 퍼졌는데, 이때 지카에 감염된 환자에게서 처음으로 길리안바레증후군이 나타났다. 파올로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지카와 다른 플라비바이러스 사이에 어떤 유전자가 오고갔는지, 소두증을 일으키는데 관여했을지 추가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윤인규 국제백신연구소(IVI) 뎅기사업단장은 돌연변이 외에도 지카 대유행의 원인에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돌연변이뿐 아니라 도시화, 세계화, 인구증가, 환경변화 등 여러 요인이 바이러스 대유행을 일으키는 데 기여합니다. 모기 같은 매개체가 널리 퍼지도록 하고요. 여러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해 지카가 대유행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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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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